“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 직관 없는 개념은 공허”

철학여행까페[50]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l승인2008.10.20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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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철학의 혁명을 알리는 첫 번째 신호탄은 <순수이성비판>이었다. 칸트는 57세에 <순수이성비판>을 내 놓아 세상을 놀라게 했다. <순수이성비판>은 라틴어가 아니라 독일어로 쓰여 졌다. 당시에는 대개 라틴어로 저술을 했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을 통해 인식의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을 불러 왔다.

“인식이 대상을 향해 있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인식을 향해 있다.”

이동희
칸트의 흉상
대상이 인식의 조건


우리는 보통 대상에 따라 인식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칸트는 우리가 대상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우리의 인식의 조건에 따라 인식된다고 주장한다.

칸트는 우선 우리가 세계를 지각할 때 함께 하는 ‘인식의 조건’에 시간과 공간을 포함시킨다. 상식적으로 시간과 공간은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칸트는 시간과 공간은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관적’이라 생각한다.

시간과 공간은 우리가 사물들을 바라 볼 때 수반하게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칸트는 인식과정에 있어 대상의 파악은 인식 주관에 달려 있다고 본다. 우리가 지닌 인식의 안경이 파랗다면 비록 대상이 수많은 색을 지니고 있어도 우리에게는 파란 색을 지닌 대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만약 파란색 이외의 색을 우리 눈이 볼 수 없다면 그 대상이 아무리 수많은 다른 색을 지니고 있다 해도 우리는 그 많은 다른 색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칸트의 이러한 주장은 당시 사람들에게 충격이었다. 시인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Heinrich von Kleist)는 1801년 3월에 쓴 편지에서 전통적 진리관이 허물어지는 느낌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모든 인간이 눈 대신에 파란 안경을 가졌다면 그들은 그들이 그러한 파란 안경을 통해 바라 볼 수밖에 없는 대상을 파랗게 존재한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눈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고 있는지 아니면 사물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 눈이 가지고 있는 어떤 것을 사물들에게 부가했는지 결코 결정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진리라고 부르는 것이 정말로 진리인지, 아니면 그것이 우리에게만 그렇게 보이는 것인지 결정할 수 없다. 후자라고 한다면 우리가 여기서 축적하는 진리는 죽음 이후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결국 무덤으로 귀결되는 재산을 얻으려고 하는 모든 노력은 헛된 것이다… 나의 유일한 최상의 목적은 꺾여 버리고 말았다. 나는 더 이상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동희
칸트의 실루엣
어떤 것이 진리인가


칸트는 인과 관계도 우리의 인식과 떨어져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법칙이 아니라고 본다. 칸트는 법칙이 필연성을 지니려면 그것은 후천적인 경험에서 얻어 질 수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경험에서 얻어지는 원리는 개연적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미 흄은 경험론의 입장에서 인과 법칙에 대한 회의를 나타낸 적이 있다.

흄은 인과 법칙의 필연성을 회의하고, 그것은 별개의 사건을 서로 연결시키려는 일종의 연상 습관이라 보았다. 흄은 감각 자료 사이에 어떠한 인과관계도 직접 관찰할 수 없으며, 오직 두 사건이 자주 일정하게 연접할 뿐이라고 지적한다.

이 연접의 관찰을 통해 마음속에는 한 사건의 인상 또는 관념에서 다른 사건의 관념으로 이행하려는 연상 습관이 자리 잡는다. 칸트는 흄과 같이 필연성은 경험에서 찾을 수 없다고 보았다. 필연성이 없다면 우리는 법칙이나 원리를 이야기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필연성과 보편성을 내세우는 학문은 존재할 수 없다.

칸트는 법칙의 필연성은 경험이 아니라 우리의 선천적 인식에 근거한다고 봤다. 칸트는 선천적 종합판단은 가능한가라는 문제를 통해 법칙의 필연성이 우리의 선천적 인식에 속한다는 것을 규명했다.

칸트 인식이론의 핵심은 ‘세계’가 우리의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여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식이 적극적으로 관여해 생긴 것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식의 세계는 우리가 외부세계에서 받아들이는 인상들이라는 측면과 인간이 자신의 인식도구의 도움을 받아 이러한 인상들에 부여하는 질서라고 하는 다른 측면이 합쳐지는 과정이다. 이러한 두 측면 중 어떤 한 측면만으로 인식이 산출될 수 없다. 그래서 칸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이고, 직관 없는 개념은 공허하다.”

이러한 두 가지 측면의 합주 속에서만 우리의 인식의 세계가 생겨난다. 우리는 이러한 인식에 대해 확신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세계 자체의 산출에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을 쓰게 된 동기는 원래 우리의 인식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 하는 것을 규명하고자 하는 문제에서 출발했다. 칸트는 형이상학자들이 인간이 어디까지 인식할 수 있는지 묻지도 않고, 인간의 인식을 넘어 선 대상인 ‘신’, ‘영혼불멸’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비판의 메스를 대었다. 누군가가 우리의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에 대해 언급한다면 그것은 넌센스이거나 사기일 것이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 의하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현상계일 수밖에 없다. 폰 클라이스트가 탄식했듯이 우리의 눈이 파란 안경이라면 사물 그 자체가 어떤 색을 가졌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우리의 안경을 통해 들어오는 사물의 색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사물 자체의 세계는 알 수가 없다.

칸트에 의하면 인간은 현상 세계 너머의 물 자체의 세계를 인식할 수 없다. 그렇다면 현상의 배후에 있는 ‘신’이나 ‘영혼 불멸’를 우리는 인식할 수 없는 것인가? 칸트는 이러한 문제를 <실천 이성 비판>을 통해 규명하고자 했다. 칸트는 ‘신’, ‘영혼불멸’ 등의 문제는 인식할 수 없지만 사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신, 영혼불멸, 더 나아가 자유와 같은 이념들은 인식의 대상들로서 보다 우리의 도덕적 행위를 규제하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이념으로 요청한다. 특히 신은 <순수이성비판>에서 인식불가능한 대상이었으나 <실천이성비판>에서 도덕의 근거로 요청된다.

이러한 칸트에 대해 하이네는 이렇게 풍자했다.

“칸트는 문 앞에서 신을 쫓아내고, 다시 뒷문으로 신을 불러 들였다.”

칸트는 <도덕형이상학의 정초>와 <실천이성비판>에서 인간은 자연 현상계의 법칙뿐만 아니라 도덕적 세계의 법칙에 속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무생물부터 동물, 인간까지 모두 현상계의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그런 점에서 동물과 인간의 차이는 없다. 그러나 인간이 다른 존재와 다른 것은 도덕적 세계에 속한다는 점이다. 동물은 현상계의 법칙에 따라 행동하지만 인간의 자신이 만든 이성 법칙에 따라 행위한다. 이 이성법칙에 따라 행위하는 동안 인간은 자유하다. 왜냐하면 자신이 만든 법을 따르는 것이니까. 칸트는 이 이성 법칙을 우리가 무조건 지켜야 하는 명령인 정언명령으로 제시하였다.

“네가 그에 따라서 행할 수 있는 의지의 준칙이 동시에 마치 보편적 법칙이 되는 것처럼 그렇게 행위 하라.”

이동희
칸트의 묘비
칸트의 정언명령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는 ‘자연’의 문제를, <실천이성비판>에서는 ‘자유’의 문제를, 그리고 <판단력 비판>에서는 이 양자의 매개 문제를 가지고 고민했다. 칸트의 묘비명에서도 우리는 그러한 그의 노력을 발견할 수 있다. 칸트의 묘비명에는 이러한 말이 새겨져 있다.

“내 머리 위에는 별이 빛나는 하늘, 내 안에는 도덕 법칙.”

칸트는 1804년에 2월 12일에 죽었다. 칸트가 죽기 전에 그의 철학과 성품에 대해 보여 주는 일화가 있다. 그는 이미 기력이 소진해 병상에 누워 있었다. 의사가 들어서자 그는 병상에서 힘겹게 일어나 그를 맞이했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도 여전히 서 있었다. 의사는 그에게 앉도록 권했다. 칸트는 당황해서 불안해하며 머뭇거렸다. 의사는 왜 칸트가 남은 기력을 모두 소진할 정도로 힘이 들게 서 있는가를 잘 몰랐다.

칸트를 돌보던 친구 바지안스키가 의사에게 먼저 자리에 앉으라고 권했다. 바지안스키는 의사에게 내방객인 그가 먼저 자리에 앉으면 칸트가 곧 뒤따라 앉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의사는 이 설명을 곧이들으려 하지 않았다. 이내 칸트가 온 힘을 모아 힘겹게 의사에게 말했다.

“나로 하여금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게 해주십시오.”

의사는 칸트의 이 말을 듣자 바지안스키가 한 말이 진실임을 깨닫고 눈물을 글썽였다.

칸트는 이 일이 있은 후 4일 후에 주었다. 칸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이것이었다.

“좋다!”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구스타프 슈바브 그리스로마신화\' 역자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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