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불금, 2008년의 ‘불출론’과 ‘바보론’

[강상헌 칼럼] 강상헌l승인2008.10.20 15:11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서울의 지하철에서 들었던 전화 대화 두 토막을 적어본다.

“정말? 그 잘나가는 양반들이 농투사니들 돈 몇 푼 먹으려고 쌀직불금을 신청했다고? 그럼 그렇지, 나중에 양도소득세 안내려고 그랬다는 얘기지? 그럼 더 나쁜 것 아닌가? 세금을 안내려고 그랬다면 공무집행방해 아냐? 치사하기는 매일반일세. 국회의원이고 공무원이고 언론인이고 안 낀 사람이 없다며. 땅 주인이 먹어도 되는 것 아닌가? 게다가 땅 주인이 갑(甲)이고, 소작인은 을(乙)아니야?그래, 여기도 못 낀 사람은 또 ‘불출(不出)’이란 말 나겠네. 나도 불출이지만, 허어…”

“나는 몰랐는데 왜 농민들에게 농사짓는다고 나라에서 돈을 줘? 그건 세금 아니야? 직장인들은 국물도 없잖아? 농사지으면 좋겠네. 그런데도 농민들은 왜 데모를 하지? 국회의원 받았다는 것 보니까 백몇십만원은 되던데, 없는 것 보다는 도움이 되겠지? 요즘 세상에 백만원이 어디야! 그 절반이라도 황공하지, 그것도 나랏돈을, 솔직히 못 먹는 놈이 바보 아냐? 나도 바보지만.”

영탄조(詠歎調)가 끊이지 않는, 평범해 보이는 이 40대 두 남성의 전화통화는 상대의 말이 없어도 해독이 어렵지 않다. 다른 승객들도 비슷한 심정인지 특별한 내색이 없다. 당시 필자는 이들이 나름대로 이 사안의 핵심을 꿰뚫고 있다고 생각했다.

후자부터 본다. ‘농사짓는다고 나라가 돈을 준다’는 사실을 알고 의아한 심정을 숨기지 못하는 이 인사는 말은 부럽다고 하지만 불만이 많다. 농민이 농사지은 것 팔아먹고 살아야지, 왜 세금을 받느냐는 것이겠다. 게다가 ‘나랏돈’은 바보 아니면 어떤 식으로든 먹는 것이 똑똑한 사람의 ‘구실’이라는 토로(吐露)다.

전자는 현실론이다. ‘지주’(地主)가 갑이니 소작인이 대적이나 하겠느냐는 얘기다. 그리고 ‘돈 몇 푼’이 주된 목적이 아니라 훗날 양도소득세를 탈세하려는 ‘원대한 목적’이 있었다는 이치를 깨닫고는 수긍하는 눈치다. 두 사람 다 ‘결론’은 ‘불출’이고 ‘바보’다.

이 대화에서 필자는 ‘우리 농업’이 국민들에게 농업의 본성과 그 역할을 자상히 알려주는 일을 게을리 했구나 하는 생각을 피할 수 없었다. 언론인으로서의 자성(自省)이기도 했다. 농업이 공업이나 상업과 비교할 만큼의 이문(利文)을 생산하지 못하는 이유와, 식량공급 말고도 우리의 자연과 공동체의 건강하고 아름다운 전승(傳承)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이다.

할 일이 없으니 의당 농촌에서 농사나 짓고 산다고 생각하는가, 그런 생각 때문에 이미 대부분 시골 마을에는 어른 세대만이 남아 있다. 이 ‘어른 농심(農心)’이 모두 파업이라도 한다 치자, 우리나라에 어떤 상황이 올까?

식량자급률 27% 남짓, 자급 수준인 쌀 때문에 그나마 이만큼은 유지하지만 농심이 삐쳐 “별 이문도 나지 않는 쌀농사 이제 치울 거다”하고 거사(?)해 버린다면 자못 심각하다. 이제 국제시장에서 곡물(식량)은 나라의 주권(主權)으로 이해되는 치명적인 자원이다. 돈 주고도 못 사먹는 상황이 곧 올수도 있다는 것을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최근 여러 나라의 식량관련 폭동은 그 예고편이다.

모두가 공짜로 즐기는 황금들판의 경치는 어떻게 될 것 같은가? 논이 여름에 물을 보듬지 않으면 홍수가 우리 산하를 얼마나 어지럽힐까? 외국 쌀이 안전할까? 공기처럼 있을 때는 모르지만, 없어진다면 얼마나 황당할까?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어진 농심이 후손의 삶을 위해 좋은 선택을 해 주실 것을 믿고, 기대한다. 그러나 한계가 있을 것이다.

헌법 제121조가 규정하는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은 나라의 기틀을 유지하기 위한 큰 정신이다. 그런데 몇 해 사이에 개발우선론자들의 불도저에 상처투성이가 됐다. 사이비 농민들이 횡행(橫行)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한 일을 모른다. 정상모리배(政商謀利輩)들에게 있어 이런 원칙이나 정신은 휴지조각에 불과한 것이다.

미국 농업의 역사는 농민에 대한 세제혜택과 보조금(subsidy), 무역에서의 관세와 비관세장벽 같은 조치들 등 ‘농업부추김’의 역사다. ‘설마’ 할 분이 없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유럽 농업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유럽이 이런 농업부추김 정책으로 대결하는 양상이 GATT WTO 따위와 같은 국제적인 제도를 만들었고,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개발도상국의 고뇌를 빚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무역제도도 그 핵심은 미국농축산업의 보호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 사회가 어서 깨달아야 한다. 결과는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 진실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 후손의 후손을 위한 귀한 마음으로 그 불편을 극복해야 한다. 농업을 알고, 경제를 아는 이들은 이제 이 진리를 행동하라.


강상헌 논설위원

강상헌  

<저작권자 © 시민사회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강상헌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여백
시민사회신문 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8288 서울특별시 구로구 새말로 93, 신도림태영타운상가2동 B105  |  대표전화 : 02-3143-4161  |  팩스 : 02-6737-1115  |   ingopress@ingopress.com
등록번호 : 서울 다 10706  |  등록일자 : 2013년 8월 26일  |  회장·논설주간 : 강상헌  |  발행·편집인 : 설동본  |  편집국장 : 양병철
후원계좌 : 국민은행 7788-01-04-375819 (시민사회신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설동본
Copyright © 2007 시민사회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