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 한 장 잡곤 했다

일상의 쉼표, 이철수 <나뭇잎 편지> 연작 백운광l승인2008.10.28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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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 그릇의 행복 물 한 그릇의 기쁨, 삼인, 2004.
가만가만 사랑해야지 이 작은 것들, 삼인, 2005.
자고 깨어나면 늘 아침, 삼인, 2006.


툭…. 뜰 앞 후박나무 잎이 떨어지는 소리다.

때늦은 더위는 여전히 반팔 옷을 입게 하고, 이 때문인지 모기도 늦게까지 극성이다. 연일 계속해서 쏟아지는 위기, 패닉이란 말들.

빠듯한 서민살림에 더욱 가슴을 옥죄게 만든다. 편한 적이 없었다던 출판계 사정. 거기에 어려운 경제사정까지 겹치니…, 심상찮다.

내 얼굴을 가리고도 남을 후박나무 잎 떨어지는 소리가 아니었으면 가을이 지나가고 있음을 채 깨닫지도 못했을 것 같다. 그렇게 올해 가을은 ‘잊혀진 계절’로 남을 뻔 했다.

잊혀진 계절을 맞다

가을은, 굳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이’ 아니라도 오래된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오랫동안 소식을 전하지 못한 사람, 그리움도 아스라한 별인別人, 그리고 어린 시절의 나. 이제는 오래된 장면이지만 그런 순간에 엽서 한 장을 잡고는 했다.


지금처럼 이메일과 문자전송이 없던 시절, 엽서는 가슴 절절한 청취자들의 사연을 담아 라디오 방송에 실려 자주 전해졌다.

엽서葉書. 가을을 나타내는 물건을 하나 고르라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나뭇잎 편지란 말이다. 이 말을 알게 된 것은 전적으로 이철수 작가 덕분이다.

이철수 작가를 처음 만난 것은 최루가스로 인한 눈물을 닦아주던 손수건에서이다. 80년대 시위 현장에서 접한 걸개그림과 선전물, 그리고 손수건, 티셔츠 등 많은 소품들을 그의 판화작품들이 가꿔주었다.

거리에서 만났던 화백

목판화의 굵은 선과 간결함은 노동자, 농민의 강인한 팔뚝을 느끼게 하고 민중의 억센 의지를 그대로 전달해 주었다.

90년대. 등 돌린 아내의 가녀린 어깨를 담은 한 장의 판화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그리고 나를 보았다. 한동안 달력을 통해, 엽서를 통해 만난 그의 판화작품은, 때로는 일상의 관성을 끊고 삶의 소중함에 침잠케 하는 계기였으며 때로는 지친 하루를 위로해 주었다.

그런 그의 작품을 한데 묶어 또 다시 만난 곳은 <자고 깨어나면 늘 아침-이철수의 나뭇잎 편지>이란 책이다.

맞아! 엽서는 나뭇잎 편지이지! 그런데 이철수 작가가 전하는 나뭇잎 편지가 벌써 세 번째란다. 그래서 그 이전 편지까지 찾아갔다. 이제는 늘 옆에 놓고 수시로 펴드는 나만의 잠언집, 묵상집이 되었다.

이제는 나만의 잠언집

할 말이 없어서 말하지 않을 수 있다. 말을 못하게 해서 말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적절한 말이 존재하지 않아 말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내게 이철수 작가의 <나뭇잎 편지> 연작은 그렇다. 그의 작품 하나만 소개한다. 나처럼 곁에 두고 언제든 손에 잡으시든지, 그의 집(www.mokpan.com)에 방문해 보시길 권한다.

세상이 시끄러워 아무리 우리 정신을 빼어놓더라도, 하루하루의 불안감이 심장을 가빠지게 하더라도 가을의 서정을 놓치는 건 억울하다.

더 늦기 전에 억지를 부려서라도 잡아보자. 그리고 작은 나뭇잎 편지 하나 적어보자. 굳이 보내지 않더라도, 가슴에라도….



백운광 두리미디어 주간

백운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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