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글과 ‘절임배추’

[강상헌 칼럼] 강상헌l승인2008.10.31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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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싶은 말도 여러 사람이 쓰면 ‘혹 내가 틀린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요즘 인터넷이나 아파트 게시판 등을 보면 많은 분들이 ‘절인배추’라는 낱말 대신에 ‘절임배추’라고 표기한다. 신문 방송에서도 절임배추라고 쓰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김장철이 온 것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 없이 절임배추라고 쓰는 것을 보면 이 단어도 나름대로 지위를 확보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문법적으로 ‘절인배추’가 맞다. 굳이 절임이라는 단어를 쓰고자 한다면 앞 뒤 순서를 바꿔 ‘배추절임’이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결론을 내리기 전에 유권해석(?)을 받아보고자 필자는 국립 국어연구원에 다음과 같이 문의했다.

‘요즘 '절임배추'라고 표기하는 것을 많이 봅니다. 김치전용 냉장고가 크게 늘어나면서 20~30년 전처럼 각 가정에서 대량으로 김장을 하는 것을 흔히 봅니다. 그래서 이제 시골에서 배추 농사 하시는 분들이 몸소 절여 택배로 보내주는 사업이 많아 졌지요. 그런데 이 분들이나 이분들과 관계되는 분들이 아파트 벽보판 등에 써 붙이거나 인터넷 등에 올린 글을 보면 대부분 '절임배추'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상식으로 보면 '절인 배추'가 맞을 듯 합니다만 상당수가 '절임배추'라고 씁니다. 그래서 마치 절임배추가 맞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는 이들도 있습니다.'절인배추' '절임배추'? 어떤 표기가 맞는지요?’

이 질문에 국립국어원 이수연 선생이 명쾌한 답을 보내 주셨다. 뛰어가는 사람을 보고 ‘뜀 사람’이라 하지 않고 ‘뛰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처럼, ‘절인배추’가 ‘절임배추’보다 적절하다는 것이다. 다음은 답변 내용.

‘안녕하십니까? 바른 언어생활에 관심을 갖고 질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문의하신 경우는 ‘절인배추’라고 쓰는 것이 문법적으로 맞습니다. 물론 ‘절임’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절임’은 동사 ‘절이다’의 어간(語幹) ‘절이-’에 앞 말이 명사 구실을 하게 하는 어미 ‘-ㅁ’이 결합된 명사형으로 쓸 수 있는 형태인데, ‘배추를 소금에 절이는 일. 또는 소금에 절인 배추’를 ‘배추절임’으로 쓰기도 하는 것이 그 예입니다.

그러나 문의하신 경우는 ‘절이다’라는 동사 뒤에 ‘배추’라고 하는 수식(修飾)을 받는 체언(體言)이 있으므로 ‘절이다’의 어간 ‘절이-’에 앞말이 관형어 구실을 하게하고 현재의 상태를 나타내는 어미 ‘-ㄴ’이 결합한 ‘절인’을 써서 ‘절인배추’와 같이 쓰는 것이 적절합니다. 이것은 언어 표현에서 ‘뛰는 사람 / 입은 옷 / 깎은 사과’라고 표현하지, ‘뜀 사람 / 입음 옷 / 깎음 사과’라고 하지 않는 것과 통하는 것입니다.’

정확하고 아름다운 우리말글의 사용은 문화국가 시민으로서의 자랑스러움을 생활 속에서 누리는 것일 터다. 그러나 이렇듯 정확성이 심히 의심되는 말들을 우리 생활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몇몇 외국어의 경우, 특히 그렇다.

요즘 ‘아이러니(irony)하다’라는 말이 거센 유행을 타고 있다. 용례(用例)에도 딱 들어맞지 않을 뿐더러, 말하자면 어법적으로도 맞지 않는다. 제대로 외국어를 빌려 쓰자면 ‘아이러니컬(ironical)하다’라고 해야 맞겠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우리말로 평이하게 상황을 표현하는 것이다. ‘반어적이다’ ‘모순이다’ ‘역설적이다’ ‘이율배반(적)이다’ 따위다. 싫다면 ‘말이 안된다’로 하든지.

유행은 끝이 없다. 호사스럽다는 '럭셔리(luxury)하다', 다양하다는 ‘버라이어티(variety)하다’ 등이 그 아류(亞流)다. 각각 ‘럭셔리어스(luxurious)하다’ ‘베리어스(various)하다’라고 해야 뜻으로는 적확하다. 그러나 이런 외국어는 쓰지 않느니만 못하다. '무식 탄로'의 가장 쉬운 방법을 왜 스스로 택하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말처럼 쓰이고 있는 ‘오픈’이란 말의 뜻도 필자는 묻고 싶다.

국제화를 찾고, 언어생활의 융통성을 말하기도 한다. 다 인정한다 치자. 그래도 ‘언어의 국제화’는 정확한 뜻을 토대로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 말글 망가뜨리는 것이 어찌 융통성인가.

한글날 지나버린 다음의 이런 주제는 좀 김이 샌다. 그러나 김장철에도, 크리스마스 때도 ‘넥스트 이어 스프링 시즌’에도 우리는 우리 말글의 정확한 사용을 늘 염두(念頭)에 두어야 한다. 언론에서도 한글날 전후해서는 이런 문제를 다룬다. 물론 그 즈음에도 그들도 ‘정확하지 못한 말글’을 분별없이 쓴다. 모르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보인다. 참 아이러니하다. ‘절임배추’도 아이러니한가?


강상헌 논설위원

강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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