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길, 희망에 대해 묻다

“대안적인 삶의 모습 제시가 시민운동의 미래” 이버들l승인2008.11.03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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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바심 도시생활 떠나 만난 지리산의 너른 품

요즘 하루가 멀다하고 경기부양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정부 정책을 열심히 모니터링하는 편이지만 매일 쏟아져 나오는 대책들을 파악하기에도 역부족이다.

특히 부동산 규제를 푸는 경기부양책들이 자주 눈에 띄곤 한다. 대통령이 건설업계 출신이라서 그런지 건설기업들의 애로점 해결에 집중되어 보인다. ‘저탄소 녹색성장’을 하겠다면서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거나, 미래 사회를 대비하기 위한 신동력을 창출하겠다면서 건설업 부양에 많은 힘을 쏟고 있다.

또한 서민들을 위한다더니 다주택자에게도 양도세를 완화해줄 예정이란다. 쏟아져 나오는 많은 말들과 쏟아져 나오는 정책들이 서로 상반된 길을 가고 있으니, 어느 장단에 발을 맞춰야할지 모를 정도다.

경기는 안 좋고, 물가는 오르고, 취업은 안 되니 많은 이들이 3중고에 처해있다. 끝을 모르는 불황과 불안한 고용 상황이 이들을 더욱 구석으로 내몰고 있다.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쌓여 점점 길을 잃어가는 것 같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읽은 말귀가 마음에 남았다. 지리산에서 10여년째 머물고 있는 이원규 시인의 언급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낮은 목소리, 사랑의 귓속말이 세상을 바꿉니다. 크고 빠르고 높은 목소리는 일시적인 긴장과 공포를 유발할 뿐 마음 깊숙한 곳까지 도달하지 못합니다.’

느리게 살자고 주장하면서 나만 조바심내고 안달해하며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갑작스레 들었다. 생각해보니 서울을 벗어난 것도 수개월이 되어 간다. 이원규 시인의 말을 생각해보다가 서울에서 답답하고 찌들어가는 마음을 다독이고자 훌쩍 떠나왔다. 지리산으로 향한 것이다. 마침 지리산 문화제가 열려 즐거운 행사들도 함께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아침부터 부랴부랴 짐을 챙겨 출발했다.

지리산에는 내 친구 회은이 살고 있다. 그녀는 나와 함께 녹색연합에 활동하던 활동가였고, 지금은 지리산으로 내려가서 사단법인 ‘숲길’에서 활동하고 있다. 늘 쾌활하면서도 즐겁게 생활하는 녀석이다.

이버들
지리산 풍경
그녀가 좋은 점은 가벼우면서도 진중함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귀농을 꿈꿨고, 차근차근 준비해온 결과 지금은 절반 정도 그 꿈을 이루었다. 지리산 인근에서 살면서 집에서 닭도 키우고, 고구마도 키우는 시골 처자가 되어있었다.

그녀가 활동하는 사단법인 ‘숲길’은 지리산에서 활동하는 민간단체인 ‘지리산생명연대’ 산하 법인으로, 잊혀져간 지리산의 옛 길을 복원하는 활동을 한다. 장거리 도보 순례자를 돕고, 마을과 지리산을 이어주는 복원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지리산 옛길 복원

국내에는 지난 2006년 스페인의 ‘카미노 데 산티아고’(유럽 3대 성지로 꼽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순례)가 소개되면서 장거리 도보 순례가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제주도 올레를 시작으로 지리산 도보 순례길인 ‘지리산길’이 새롭게 꾸며지기 시작했다. 2012년까지 지리산을 둘러싼 전남, 전북, 경남 3개도와 구례 등 5개 시군, 100여개 마을을 도보길로 잇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다. 지난달 22일에는 사단법인 ‘숲길’의 도법 이사장과 산림청, 지리산권 5개 시군 단체장들이 지리산길의 조성과 지속가능한 관리 및 운영을 위한 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지리산길은 3개도와 100여개 마을의 끊어져있는 옛길, 고갯길, 숲길, 강변길, 마을길 등 지리산을 둘러싼 300km 길이의 옛길을 연결하는 것이다. 이 길은 지리산을 수직으로 오르지 않고, 지리산 국립공원 둘레를 수평으로 걷는 국내 최초의 장거리 도보길이다.

지리산길 복원에는 천왕봉이나 노고단 등 지리산 정상으로 집중된 여행 인원을 분산시키면서 마을과 지리산을 연결해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살아간다는 본래의 취지를 살리고자 하는 숨은 노력이 깃들여 있다.

길은 소통의 공간이자 생과 생을 이어주는 삶의 공간이다. 여백과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했던 우리가 언제부터인가 서양처럼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있다. 수 백만원을 호가하는 등산장비를 갖추고 오늘도 정상을 향하는 사람들에게 지리산길은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한 포옹의 팔을 벌리고 있다.

회은을 찾아 내려간 지리산에는 내가 아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이 살고 있었다.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지리산으로 내려온 경숙 내외나 새만금 지키기에 많은 노력을 했던 박인영 간사님도 만날 수 있었다.

모두들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라 더욱 반가운 마음이 넘쳤다. 추수가 다 끝난 논밭에서 지푸라기 뭉치를 의자 삼아 앉아 조잘조잘 수다를 떠들어댔다. 그들의 넘치는 여유와 웃음이 마치 딴 세상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 도시라는 마약에 이렇게 빠져 살았던가. 새삼 서울에 사는 내가 진짜인지, 지리산에 와 있는 내가 진짜인지 장자의 나비처럼 정신이 멍해졌다.

지리산길은 2구간까지 있는데, 1구간의 경우 매화꽃을 닮았다는 매동 마을에서 출발하여 묵논을 거쳐 상황마을을 지나 등구재를 거쳐 창원 금계마을까지 이르는 길이다. 가장 높은 등구재도 해발 700m가 안 되니 비교적 평탄한 길이여서, 아이들도 함께 참여할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이 나무하러 다니던 길을 따라서 세월의 이끼가 가득 차 있는 묵논은 이제는 소나무와 참나무가 높게 자란 숲이 되었다. 자연 그대로를 살리기 위한 옛 길 복원은 이 같은 섬세한 배려와 마을의 향취가 넘쳐나고 있다.

2구간은 의탄교를 지나 의중마을, 벽송사, 빨치산길을 따라 송대마을, 세동마을로 가는 길이다. 고도가 1구간보다는 높으나, 하늘로 향해 쭉쭉 뻗은 대나무숲이나 큰 나무가 만들어주는 숲 그늘이 기분 좋은 벽송사를 만날 수 있어, 맨발로 걷고 싶을 만큼 여유로움이 가득 차 있다.

우드펠렛보일러

나는 1구간을 선택했는데, 지리산 안내센터에서 나누어준 지도상에 없는 길로 잘못 들어갔다. 친절한 안내센터의 도움으로 도로 잘 나왔으나, 백련사로 가는 길에서 체력을 너무 많이 소진했다. 기진맥진 장항마을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커다랗게 붙여놓은 플랜카드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고유가 시대를 대비할 수 있는 나무 펠렛 보일러’에 대한 광고였다. 예전에는 산에 나무를 많이 해서 땔감으로 썼지만, 최근에는 나무 땔감 구하는 일보다 인건비가 더 비싸 숲마다 산림조성 후 생겨난 폐나무와 잔나무 가지들이 지천에 널려있다.

잔나무 가지들은 폭우나 홍수 때 떠밀려 내려와 마을을 덮치기도 하고, 산사태를 유발하는 문제로 발전하기도 한다. 유럽 등에서는 농가를 대상으로 일찍부터 나무 펠렛을 이용하는 보일러와 기름 보일러를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다기능 복합 보일러를 개발해서 사용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04년에 내가 방문했던 독일의 한 농가에서도 나무 펠렛 보일러와 기름보일러를 함께 사용하기도 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통나무를 그대로 사용하는 화목을 이용했으나, 산림보호로 인해 통나무를 그대로 얻는 것은 쉽지 않아 나무에 대한 이용은 해마다 줄어왔다. 그러나 최근 고유가 바람을 타고 왕겨나 잔나무 조각을 이용하는 나무 펠렛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펠렛은 잔나무 조각 같은 목재를 톱밥보다 미세하게 분쇄해서 고강도로 압축한 나무 조각이다. 어른 새끼손톱 크기의 원기둥 모양으로 압축되며, 화력조절이 힘든 기존 나무보일러에 비해 기름이나 가스처럼 분사량 조절도 가능하다. 1kg당 4816kal의 열량을 내며, 연기와 타르가 적게 나오기 때문에 가정에서 이용하기 편리해졌다.

이버들
지리산길 풍경
또한 연소율이 95%에 달해 잔해가 거의 없고, 남은 재도 100%로 비료로 사용가능하기 때문에 효용성이 높다. 농어촌에서는 미사원 산림자원의 재활용 촉진 및 임업분야서도 목재연료 시장을 개척하는 차원에서 펠렛보일러에 대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한편 나무는 타거나 썩을 때 자라면서 자연에서 흡수한 이산화탄소량만큼만 배출하기 때문에 자연 순회하는 무공해 에너지원이기도 하다. 다만 펠렛보일러를 과도하게 설치할 경우, 국가적으로 산림자원이 훼손되는 등의 문제가 생겨날 수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또한 다른 에너지원도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기술 개발을 하는 것도 필요하겠다.

최근에는 나무 뿐만 아니라 왕겨나 톱밥도 사용하며 폐목재나 벌목재를 활용하기도 하며, 연료비도 연탄보일러의 1/2, 면세유의 1/5정도에 불과해 고유가로 어려움을 겪는 농가에 도움을 주는 대체에너지원으로 관심을 받고 있다.

최근 뉴질랜드 한 연구팀에 의하면, 가정 내 난방장치만 개선해도 어린이 천식 환자의 건강상태가 현저하게 개선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비효율적인 난방기구를 깨끗하고 열효율이 높은 난방기구로 대체하자 천식을 앓고 있는 대부분 어린이들의 건강상태가 놀라울 정도로 호전되었다는 것이다.

조사 대상이 된 가구는 6세부터 12세까지 어린이 천식 환자를 둔 412세대로, 해당 가정은 실험 전에는 전기 히터나 연통이 없는 가스 히터를 사용하고 있었다. 환기가 잘 되지 않는 방에서 전기나 가스 난방이 호흡 곤란과 기침을 가속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연구팀이 제안한 난방기구는 바로 나무 펠렛 보일러다. 나무가 내뿜는 연기는 다른 연료에 비해 유해하지 않으며, 이산화탄소 발생량도 적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연과 인간이 함께 숨 쉬며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방안을 찾다보면, 적게 훼손하면서도 높은 효용을 올릴 수 있는 방안들을 찾을 수 있다.

지리산햇빛발전소

지리산 실상사를 중심으로 대안적인 삶의 문화가 나타나고 있다. 지리산생명문화교육원과 실상사 작은학교, 귀농학교가 있어 많은 귀농인들이 살고 있으며, 토박이와 귀농인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길목 마을이다.

생명을 중시하고 느리게 살기 위한 여러 가지 삶의 방안이 실험되고 있다. 대안학교인 실상사 작은학교는 불교의 연기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설립된 중등 학교다. 생명평화를 실현하는 교육 철학을 바탕으로 소박하고 자유로운 삶을 꿈꾸고 실천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기존의 경쟁위주 교육에 지친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건강하고 밝게 자라나기 위해 귀농을 택한 그들의 선택이 값져 보였다.

최근 인드라망생명공동체는 지라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수련원인 지리산생명문화교육원 지붕에 10kw규모의 태양광발전소를 설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태양광발전사업을 통해 생산된 전기는 전량 한국전력에 판매해 약 9년 정도 지나면 설치비용을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인드라망은 내다보고 있다. 태양광발전 건설에는 약 8천만원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보이며, 이는 연간 효율 감소 0.25%와 연간 관리비 및 세금을 감안해 계산한 금액이다.

이제는 패러다임이나 이데올로기, 사상으로 시민들을 설득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 누구나 주체적으로 시민운동을 할 수 있으며, 동호회나 모임 구성을 통해 더욱 활발한 단체 활동을 펼칠 수 있다. 시민을 계도하거나 지식을 알려주는 차원의 시민운동은 지양되어야 한다. 말보다는 지리산 마을들이 보여주고 있는, 실천하고 몸소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대안적인 삶의 모습을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미래성 있는 진정한 시민운동이다.


이버들 에너지시민연대 정책차장

이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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