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현행 ‘근현대사’ 고교 교과서는 한나라당의 김영삼 정권 말기에 국정교과서 제도가 세계적 추세에 맞지 않는다는 중론을 수용하여 검인정 교과서제도로 바뀌었다. 6종이 발간되어 교사들이 자유롭게 선택해 왔다. 이들 6종의 ‘근현대사 교과서’들은 국사편찬위원회의 엄격한 집필지침을 교육부가 수용하여 집필지침을 출판사측에 시달했고 엄격한 심사에 합격한 교과서만 검인정을 통과하여 발간되었다. 이런 합법적 교과서를 ‘잃어버린 10년’의 한을 풀기 위해 교과부의 입맛에 맞는 방향으로 바꾸도록 각 출판사에 시달했다.
현행 ‘근현대사’ 고교 교과서가 좌편향이라면 그 교과서를 검인정 해 준 김영삼 정부 역시 좌편향으로 되고, 그 후신인 한나라당 역시 좌편향으로 된다. 민주주의와 민족주의를 신봉하는 제도정치권은 모조리 좌편향으로 규정되어야 하는 웃기는 일이 진행되고 있다. 교과부의 ‘근현대사’ 고교 교과서 수정지시가 군사정권 시기로 되돌리려고 하는 시대착오적 행위라고 비판받는 검정 당시의 위와 같은 경위에 비추어 충분한 근거가 있다.
그러나 보다 심각한 문제는 교과부의 이번 일을 부추긴 것은 이명박 대통령 자신이라는 점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번 재향군인회 등 수구세력들과의 청와대 회식에서 교과서를 바로 잡을 의지를 드러내면서 그의 국정철학이 ‘뉴라이트’의 그것과 동일하다는 점을 내비쳤다. 이명박 정부가 ‘뉴라이트’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고 해도 되는 이유다.
그러나 지난번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한 유권자들은 이런 이념논쟁이나 하라고 표를 몰아 준 것은 아니었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공약으로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 후 7개월여만에 지난번 IMF 국치 이후 김대중 노무현 양 정권이 쌓아올린 대외신인도마저 거의 까먹은 결과 미국의 구원을 요청하는 지경이 되었다.
세계자본주의 본국인 미국에서 발생한 ‘쓰나미’를 뒤집어 쓴 결과라고 변명하지만 자신들의 무능을 자탄하면서 난국극복을 위해 국민의 모든 역량과 지혜를 모아야 할 판국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지난번 국회 시정연설에서 국난 극복을 위한 국민의 협조를 당부했다. 그러나 실제 시책은 이것과는 정반대다.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정평은 벌써 오랫동안 그를 따라다니고 있다. 나라가 어려울수록 지도자는 국민에게 믿음을 주어야 한다. 국론 통합이 절실한 지금, 매카시적 색깔시비의 칼을 휘두르는 것이 경제살리기에 도움이 된다고 강변할 수 있겠는가?
색깔시비나 하면서 ‘고소영’만을 챙기는 정책으로 밀고 나가면, 이명박 대통령의 묻지마 지지세력인 10-15%의 ‘집토끼’들은 박수를 칠 것이다. 그러나 미증유의 경제난으로 신음하는 보다 많은 ‘산토끼’들은 촛불로 항거할 것이다. 이런 불행한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려면 치졸한 역사전쟁은 집어치우고 경제살리기에 온 국민의 지혜와 힘을 결집해야 한다.
시민사회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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