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운동연합은 “고유가 대책으로 유류세 인하 말고 친환경 대중교통을 늘려야 한다”고 8일 밝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전 세계가 심각한 에너지 위기를 맞았다. 기후 붕괴를 막기 위한 마지막 ‘골든 타임’이 불과 몇 년 남지 않았다는 엄중한 상황도 우리 눈앞에 있다. 현재 각국의 위기 대응을 보면,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에너지 공급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 (사진=환경운동연합)

현실은 정반대이다. 각국 정부는 ‘골드 러시’라고 부를 만큼 천연가스 쟁탈전에 뛰어드는 형국이다. 가스 연료 확보를 위한 신규 탐사와 개발, 파이프라인과 설비 확대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는 추세이다. 가스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늘어날수록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을 1.5°C 이내로 억제하자는 기후변화 파리협정의 목표 달성 가능성은 더욱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다.

얼마 전, 기후 정책 연구 기관인 ‘기후행동트래커(Climate Action Tracker)’는 글로벌 에너지 위기에 대한 각국의 긍정적·부정적 대응 정책을 평가해 공개한 바 있다. 부정적 대응 정책으로 꼽힌 대표적인 예는 유류세 인하이다. 지난 2년 동안 세계 유류와 가스 가격은 크게 올랐다. 현재 상황을 유가가 급등했던 1973년 ‘석유 파동’에 비견하기도 한다.

고유가는 휘발유, 경유 자동차에서 전기차와 같은 대안 교통수단으로의 전환을 촉진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정부는 에너지 가격 앙등의 충격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세금 인하 조치를 펴 왔다. 한국도 고유가 때마다 단골처럼 유류세 인하 카드를 빼들었다. 국제 유가 상승으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자 정부는 지난해 11월 유류세 20% 인하를 결정했다. LNG 할당 관세도 0%를 적용하기로 했다.

▲ 정부가 유류세 인하폭을 37%로 확대한 6월 19일 서울의 한 주유소 유가정보판에 휘발유가 2290원, 경유가 2280원을 나타내고 있다. (사진=대한민국정책브리핑)

이어 올해 5월부터 정부는 유류세 인하 폭을 20%에서 30%로 더 확대했다. 그래도 고유가가 잡히지 않자 정부는 7월부터 유류세 인하 폭을 최대 법적 한도인 37%로 조정해 적용하기로 했다. 종료 예정이었던 승용차에 대한 개별소비세 인하도 6개월 연장해 연말까지 시행한다.

이걸로도 모자라, 아예 법을 개정해 유류세 인하 한도를 더 확대하는 법안도 국회에 제출됐다. 현행 30%인 유류세 탄력세율 범위를 아예 100%로 확대하는 내용의 교통·에너지·환경세법 개정안과 개별소비세법 개정안을 여야가 각각 앞 다투듯 발의했다. 하지만 유류세 인하로 인한 부정적 효과가 부메랑처럼 되돌아올 수 있다. 유류세 인하는 자연스러운 유류의 수요 감소와 저탄소 교통수단으로의 전환을 방해한다. 정부 재정 부담도 증가된다.

일괄적 유류세 인하가 아니라 취약계층에 대한 보호 대책에만 한정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도 이와 관련해 “정책입안자들은 높은 국제 가격이 그대로 국내 경제에 반영되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는 권고를 하기도 했다. 우선, 정부의 정책 여력이 위축된다는 거다. 유류세 인하로 인한 세수 손실은 수조 원에 달한다. 안 그래도 코로나 대응으로 인해 정부 재정이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유류세 인하로 인해 다른 공공 서비스 지출을 희생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당장 7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정부 예산을 내년부터 ‘긴축 재정’으로 전환하기로 발표했다. 아울러 “소비 분포가 소득에 따라 늘어나는 상품에 대한 보편적 가격 인하는 바람직한 정책이 아니다”는 지적도 주요한 이유이다. 비싼 가격이면 소비가 줄어들텐데, 정부가 인위적으로 가격을 낮춰 석유 소비를 늘리게 유인한다. 무엇보다 대중교통보다 승용차를 이용하는 사람, 경차보다 대형차를 이용하는 사람과 같이 더 부유한 계층이 더 소비할 수 있는 정책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거다.

▲ (사진=환경운동연합)

심지어 정부의 유류세 인하로 인해 가장 큰 혜택이 소비자가 아닌 정유사에 돌아가 ‘초과 이익’을 거둔다는 비판도 제기되어 왔다. 유류세를 인하하더라도 실제 많은 소비자들이 이를 체감할 수 없다고 호소한다. ‘기후행동트래커’ 역시 “보조금은 높은 (에너지) 가격을 부담하기 어려운 사회경제적 취약 계층에 대한 지원으로 한정하는 편이 보다 효과적“이라고 지적한다.

아울러, 유가가 다시 내려갈 경우 정부가 화석연료 보조금을 축소하고 탄소 가격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덴마크의 경우, 러시아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고 기후위기 대응을 가속화하기 위해 저탄소 교통에 대한 탄소세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기후·에너지 활동가는 “따라서 보편적 유류세 인하가 아니라 취약 가구에 대한 맞춤형 재정 지원을 하고 대중교통 요금 인하 및 무상 지원과 같은 조치에 재정을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활동가는 “장기화될 수 있는 고유가 상황을 교통 부문의 탈탄소 전환 기회로 삼고 친환경 공공교통 시스템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병철 기자  bcyang20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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