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오바마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경제 영역, 나아가 정치·군사 영역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미국이 처한 위기는 시민사회의 위기이자, 사회자본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21세기를 시작하면서 미국은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커다란 타격을 입었다. 바로 알카에다의 무장세력에 의해 미국의 심장부가 공격을 당한 것이다. 사실 알카에다는 뉴욕의 무역센터와 워싱턴의 국방부 건물을 공격하여 미국에 심각한 타격을 가하겠다는 낭만적인 생각을 가졌다. 그런데 아이니컬하게도 그 낭만이 목표를 달성하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역사상 처음 본토가 무력공격을 당하자 미국은 견고하게 지켜온 미국 민주주의를 훼손하면서 인권을 억압했다. 여기에 아프가니스탄뿐만 아니라 이라크까지 침략하는 강수를 두었다. 막강한 국가권력과 군사력 아래 강성(hard) 헤게모니가 힘을 발휘했지만, 그 이면에 연성(soft) 헤게모니가 붕괴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미국 민주주의의 허구성을 발견하고 지지를 철회했다. 미국은 신뢰라는 자산을 잃었고, 그것은 곧 모든 것을 잃게 되는 시발점이었다. 미국 문명의 쇠퇴에 대한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지만, 21세기에 들어서서 미국이 급격하게 쇠퇴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미국은 소중한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명분 없는 전쟁을 개시하며, 사회자본이라는 중요한 문화적 규범까지 상실하는 쪽으로 나아갔을까. 이것은 형해화된 미국 시민사회의 현실과 맞물려 있다.
우리는 흔히 미국이라는 나라가 경제대국에 민주주의의 교범까지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강한 시민사회를 가진 나라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미국 시민사회는 이미 오래 전에 비판정신을 상실하고 정치화의 동력을 잃고 있었다. 선거 참여율이 떨어지고, 이기주의가 만연하며, 공동체가 허물어진다고 호들갑을 떨 때에도 그들은 시민들이 더 많이 공공재를 생산하고 봉사활동을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브라이언 오코넬과 같은 일군의 학자들이 국가와 시장을 비판하고 추동하는 주창활동의 쇠퇴가 시민사회의 종속과 민주주의의 쇠퇴를 가져온다고 경고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소수의 목소리에 불과했다.
그래서 미국 의회가 대의권력을 포기하고 미국 행정부가 더러운 이라크침략전쟁을 감행할 때도 미국 시민사회는 견고한 비판세력을 형성하지 못했다. 그리고 언론이 공공연하게 전쟁을 부추기고 기독교 근본주의가 전쟁을 통한 평화를 제창할 때에도 이를 저지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또 전쟁이 악이라기보다는 자국에 많은 인명피해와 재정손실을 가져오는 수렁에 빠져들었다는 이유로 전쟁의 지지율이 70%에서 20%로 떨어질 때도 미국인의 기회주의적인 위선을 제대로 질타하지 못하였다.
미국과 같은 복지다원주의에서 시민사회의 공공서비스 생산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국가와 시장 권력을 비판하는 능력을 상실한 미국 시민사회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위험한 선을 넘어서고, 전쟁 상황이라는 명분하에 억압적인 통치로 회귀해도 제대로 견제할 수 없었다. 오바마는 정부 산하에 대규모 자원봉사단을 설립하고 자원봉사활동의 활성화를 위해 정책적인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의 재건은 그것만으로 되지 않는다. 국가와 시장을 견제할 수 있는 시민사회의 비판능력과 세계사회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사회자본을 형성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한국 시민사회는 쇠고기 수입반대를 위한 촛불집회에서 나타난 것처럼, 전국적인 연대를 통해 역동적인 시민운동을 전개하고 시민사회의 정치화를 추동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한국 시민사회의 힘이자, 한국 민주주의의 토대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시민사회의 본질을 왜곡하고 이를 억압하려고 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무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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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필 성공회대 NGO대학원 연구교수
박상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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