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없는 근현대사교과서 논란

지난 10일 서울시교육청은 교육과학부의 지원을 받아 관내 고교 교장과 학교운영위원장을 대상으로 ‘특별한 연수’를 했다. 연수주제는 ‘역사교과서선정과 학교선택권확대’였으나 학교선택권문제는 들러리선 주제일 따름이고 최근 논란이 된 한국근현대사교과서에 대해 교육과학부와 서울시교육청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홍보하고 교과서 재선정 압력을 행사하기 위한 자리였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서울시교육청의 월권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현재 각급학교학생들이 사용하는 교과서는 국어와 국사의 경우 국정교과서로 단일한 체계와 구성을 갖고 있고 나머지 교과서는 검인정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검인정제도란 국가가 정한 교육과정내용을 중심으로 여러 개 출판사가 다양한 필자를 구성해 제작하고 교육과학부가 검인정절차를 거쳐 발행하는 것이다.

역사교육 왜곡 의심

그러나 불행히도 한국교육의 대입종속으로 인해 교과서는 거의 천편일률적이다. 외국처럼 교과서가 하나의 참고자료로써 교과서에서 다룬 내용을 확장시키고 심화시켜 지식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은 입시교육과 내신부담 때문에 학생들이 거의 교과서만 배우고 교과서를 달달 외우는 상황이라 교과서들이 거의 비슷비슷한 때문이다. 이번에 논란이 된 한국근현대사는 전국 2000여개 고등학교 중 1600여개 고등학교 34만명이 선택해 배우고 있고 이중 과반수가 넘는 18만명이 이번에 문제가 된 교과서를 배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적 논란이 될 만큼 다양한 해석과 관점을 바탕으로 집필된 교과서가 있다는 것 자체가 거의 드문 경우로써 이는 획일적 한국 교과서 풍토에서 차라리 권장해야할 사항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서울시 교육청은 교육의 다양성을 위해 국제중학교를 설립하고 고교선택제를 추진한다면서도 교과내용의 다양성을 존중하기는커녕 획일화, 색깔논쟁에 골몰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번 연수회에서 논란이 된 253건 수정 요구사항 중 일부를 예시하며 ‘문제가 된 특정 교과서는 반미 친북교과서인데다가 국가 정통성을 부정하고 한국의 성공적인 경제 발전을 부정하고 북한에 온정적이므로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니 올바른 역사관를 가진 교과서를 재선정하라’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알다시피 교과서선정은 단위학교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단위학교에서는 일차적으로 해당과목교사가 교과서를 선정한 후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심의하고 최종적으로 교장이 추인하는 방법으로 교과서를 선정하고 있다. 내가 속한 고등학교 학교운영위원회에서도 지난 여름 영어 수학 교과서를 선정했다. 2009년 3월 새학기에 맞춰 학생들이 사용하려면 교과서 발주를 늦춰서는 안된다고 학교측에서 서둘렀던 것이다. 특정 근현대사교과서를 배제하기 위해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재선정할 수 있도록 교과서 발주를 11월말로 연장해준다는 서울시교육청의 간섭은 현재 교육과학부와 해당 교과서 집필진사이에 수정논란에 대한 갈등이 첨예하고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지나친 월권이며 역사교육을 왜곡시키려한다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치적 의도는 없는가

이는 그간 어렵사리 이루어온 교육의 중립성과 단위학교 자율성을 해치고 교육의 중립성을 침해하는 것이어서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잘못된 것이다. 물론 교과서에 역사적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거나 검증되지 않은 주관적인 평가, 10대 감수성이 예민한 학생들이 소화하기에 부적절한 표현이 있으면 당연히 이를 보완하거나 순화시키는 작업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 모두 전문가들의 판단과 평가를 통해 소통을 통한 생산적 과정을 거쳐 이뤄져야지 정치적인 의도에 따라 함부로 낙인을 찍거나 불필요한 논란을 통해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다면 어렵사리 이루어놓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과 자율성 확대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것이다. 만에 하나 이번일이 전례가 되어 정부가 바뀔 때마다 이런 일이 되풀이된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한국이 지난 수십년간 이룬 성공-눈부신 산업화와 민주화의 이면에는 8.15 해방, 정부수립, 한국전쟁, 산업화, 분단국가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해석과 관점이 존재한다. 오래지나지않은 역사적 사건에는 반드시 피해자와 가해자가 있기 마련이어서 일부사람들에게는 생살에 소금을 뿌리듯 아직도 아픈 상처이기도 하고 일부 정권에게는 외면하고 싶은 과거이기도하다. 역대 정권중 일부는 자신들의 정통성과 관련시켜 근현대사를 왜곡시키거나 금기시했고 이로인해 지금의 기성세대는 한국근현대사를 제대로 배울 기회조차 갖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객관성과 균형성이다

오랜 노력을 통해 그 부분의 금기가 서서히 풀려가는 마당에 정부가 앞장서서 이념논쟁과 색깔논쟁을 벌이는 것은 그간 그 교과서로 근현대사를 배운 학생들을 혼란스럽게 할뿐 아니라 후쇼사교과서 등 역사왜곡이 일본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도 서서히 일어날 수 있다는 신호탄이기도 한 것이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이 다양할수록 각각의 해석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균형잡힌 자료가 중요하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서울시교육청과 교육과학부는 학생들이 이념에 편향되지 않고 균형잡힌 시각으로 역사적 사실에 접근할 수 있도록 객관성과 균형성을 갖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