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 가득 다홍빛 꿈을 담다

남효선l승인2008.12.02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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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겨울, 감 따는 아이들
남효선
한 시간 남짓 아이들은 제 키보다 열 배는 더 큰 대나무 장대를 들고 감을 땄습니다. 아이들은 하늘에 걸린 다홍빛 꿈을 대나무 장대로 끌어당겨 가슴에, 머리에, 손끝에 차곡차곡 담았습니다.

농촌마을 초등학교에 다니는 지훈이와 은혜는 뛸 듯이 기분 좋은 하루를 보냈습니다.

오래 전부터 별러온 ‘감 따기’를 신나게 했기 때문입니다.
도시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낸 뒤 아빠의 직장을 따라 바다가 있는 시골마을로 온 아이들에게 '감 따기'니 '밤 줍기' 따위는 어떤 놀이보다도 신나는 일일터입니다.

며칠 전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온 뒤라 제법 바람이 쌀쌀했지만, 이들의 신나는 감 따기 앞에서는 그저 나뭇가지를 흔드는 바람일 뿐입니다.

아이들의 감 따기에는 남매의 아빠도 함께 했습니다. 아이들의 아빠도 바쁜 일정을 쪼개 어렵게 시간을 냈을 터입니다. 마침 오늘은 아이들 학교 개교기념일입니다. 학교안가는, 신나는 날이지요. 그렇다고 학원마저 쉬는 날은 아닙니다.

감나무가 있는 곳은 아이들 집으로부터 20분 남짓한, 산 속에 자리한 산중마을입니다. 아이들은 아빠의 차를 타고 감나무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면서 내내 즐거운 표정입니다.

차 안에서 오빠인 지훈이가 학원시간 이야기를 불쑥 끄집어냈습니다. 오랫동안 벼르던 감따기에 마음이 설레면서도 마음 한 편에는 학원가는 일이 영 켕기는 모양입니다. 동생인 은혜는 여전히 즐거운 표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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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홍빛 발간 장작불을 매 단 듯 감나무는 제 홀로 우뚝 서서 날이 파랗게 선 겨울을 녹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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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는 산중에 홀로 다홍빛 열매를 달고 서 있습니다. 이웃한 나무들은 오래 전에 잎사귀를 다 떨군 듯 겨울바람에 온 몸을 내맡긴 채 가끔씩 부르르 몸을 떱니다.

모두들 벌거숭이로 바람과 맞서있는데, 다홍빛 감을 가지가 휘도록 매달은 감나무는 홀로 바람을 물리치는 위풍당당한 장군 같았습니다.

다홍빛 발간 장작불을 매 단 듯 감나무는 제 홀로 우뚝 서서 날이 파랗게 선 겨울을 녹이고 있었습니다. 차운 바람은 바알간 감 주변만 맴돌 뿐입니다.

감나무가 서 있는 밭은 오랫동안 가꾸지 않은 듯, 아이들 키보다 한 뼘이나 더 큰 쑥부쟁이와 개망초, 도깨비풀 따위가 마구 엉켜있습니다. 갑자기 마른 쑥부쟁이 덤불이 바스락거리며 멧돼지 한 마리가 느릿느릿 지나갑니다.

갑자기 출몰한 멧돼지에 아이들이 ‘야 멧돼지다’며 함성을 질렀습니다. 멧돼지는 아이들의 함성에는 아랑곳없는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묵정 밭을 느릿느릿 걸어 산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금세 아이들 얼굴에 아쉬움이 가득 찹니다.멧돼지를 오랫동안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훈이는 이번이 두 번째 감 따기입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해인 2년 전에 아빠와 함께 감을 처음 따 보았습니다. 동생인 은혜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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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홍빛 꿈은 제 홀로 익어 홍시가 되어 있었습니다. 은혜는 제 스스로 익은 홍시를 벌써 세 개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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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아빠는 “어렸을 적 도시에 살은 탓에 감을 따거나, 무를 캐거나, 밤을 줍는 경험을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다”며 “아이들에게 자연의 넉넉한 품세를 익히고 맛보게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의 기억 속에는 도시의 가파른 골목길에서 언 손을 호호 불며 종일 매달리던 ‘설탕 소다과자 뽑기’ 만 가득 남아있다”고 말했습니다. 아이들 아빠의 말끝에 우울함이 묻어나왔습니다.

한 시간 남짓 아이들은 제 키보다 열 배는 더 큰 대나무 장대를 들고 감을 땄습니다. 감은 하늘을 인 채로 바람과 서리를 맞으며 얼었다가 녹으며 제 스스로 감나무 가지에 매달려 농익은 홍시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하늘에 걸린 다홍빛 꿈을 대나무 장대로 끌어당겨 가슴에, 머리에, 손끝에 차곡차곡 담았습니다. 다홍빛 꿈은 제 홀로 익어 홍시가 되어 있었습니다. 은혜는 제 스스로 익은 홍시를 벌써 세 개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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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는 온 일년동안 애써 키운 제 살점을 오롯이 자연에 되돌려주고, 다시 새봄이면 연두빛 감잎을 틔우고 다홍빛 감을 주렁주렁 매달것입니다.

잘 익은 감한자루를 어깨에 메고 척척 앞질러 가던 지훈이가 "다른 데 사는 까치도 와서 실컨 먹겠네"라며여전히 다홍빛 맑은, 한 점 불씨처럼 하늘을 이고 있는 감 홍시를 처다봅니다.
감나무는 온 일년동안 애써 키운 제 살점을 오롯이 자연에 되돌려주고, 다시 새봄이면 연두빛 감잎을 틔우고, 우윳빛 감꽃을 피워다홍빛 감을 주렁주렁 매달것입니다.

바알간 감을 한 자루 싣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들 얼굴이 다홍빛 매끈한 홍시를 닮았습니다. 하늘을 떠받치고 있던 다홍빛 꿈도 아이들과 함께 따라왔습니다.

남효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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