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앞에서 무정차 말라

“시민여러분, 장애인도 시민으로 함께 살게 해주십시오” 이재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l승인2023.01.21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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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지자체와 가진 면담 중 담당 공무원의 발언이 머리에 계속 맴돈다. “1년에 7~8곳 (턱을) 제거하는 사업을 진행중이다. 그런 곳을 찾아서 가면 되지 않겠나.”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에 따르면 접근, 즉 이동할 권리는 기본권이다.

장애인이 자립하기 위해, 사회의 모든 영역에 참여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권리로, 각 국가들이 재량에 따라 보장 범위와 단계를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협약에 서명한 즉시 발효되어야 하는 권리라는 뜻이다.

이에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별도의 조항을 마련하고 구체적 실현 방안을 설명하기 위한 논평까지 냈는데, 협약에 가입한 대한민국에서 이를 이행할 책임을 가진 공무원이 막말에 가까운 무책임한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한 것이다.

이를 공무원 한 사람의 일탈이라고 치부할 수 없다. 가게 앞에서, 대중교통 앞에서, 근린시설 앞에서 대한민국의 누군가는 늘 돌아서야 한다. 배리어프리와 유니버설 디자인을 트렌드처 흔히 접할 수 있지만 장애인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이러한 용어들이 무색하기만 하다.

이동권, 누구의 권리가 아닌 모두의 권리로 만들어온 투쟁

장애인의 이동권 투쟁은 2001년 오이도역에서 장애인 노부부가 리프트에서 떨어져 한명은 사망하고 한명은 중상을 입은 참사로 촉발되었다. 휠체어 리프트는 1988년 서울올림픽과 패럴림픽을 준비하던 정부가 관광지가 몰려 있는 종로, 주경기장이 있는 잠실 등 몇곳에 설치하기 시작했고 이후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도입 당시에도 이동권 보장보다 국제사회에 보여주기 위한 체면치레, 장애인에게 관광 정도의 서비스를 제공하면 만족하겠지라는 시혜와 동정의 산물이었다. 투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01년 정부가 실시한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당시 전체 장애인 중 20%만이 외출을 할 수 있었다. 이처럼 장애인에게 이동은 당연히 불가능한 것이었고 대부분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었다.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이하 이동권연대)가 철도청과 시내버스를 관장하는 국토교통부(당시 건설교통부)에 보낸 공문의 회신 내용을 보아도 이동권이 권리가 아닌 복지서비스로 인식되고 있었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국토교통부의 답변에는 “장애인 이동권 확보와 관련해서는 장애인 복지법령을 관장하고 있는 보건복지부가 정부예산을 확보하는 등으로 장애인들이 보다 노선버스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추진하여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쓰여 있다.

그래서 이동권연대는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막아 세웠다. 시민들에게, 정부에 장애인 역시 누구든지, 언제나, 어디서나, 어디로든 이동할 권리가 있음을 선언하고 시혜와 동정의 서비스가 아니라 장애인 역시 헌법이 보장한 국민으로서, 국가가 이에 대한 책임을 질 것을 사회에 외치기 시작했다.

비장애인 중심의 대중교통 체계에 문제를 제기하며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투쟁했다.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총 41차례의 버스타기투쟁, 3번의 선로점거투쟁(서울역, 광화문역, 시청역), 무기한 서울시청 천막농성, 39일간의 인권위 단식 농성이 이어졌다.

그 결과 2005년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이 마련되었고 제3조에 이동권이 명시되었다. “교통약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교통약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또한 이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책무 역시 제4조에 기재되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교통약자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교통수단과 여객시설의 이용편의 및 보행환경 개선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시행하여야 한다.”

여전히 보장되지 않은 권리, 왜 계속 투쟁이 필요한가?

그러나 으레 그렇듯 법에 한줄 적혀 있다고 현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법은 늘 중립적인 척하지만 결국 권력에서 배태된 글귀에 불과한지라 효율과 합리성을 운운하며 한 글자 한 글자가 자본과 힘 앞에 무기력하다.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만들어진 법 조항들도 그러했다.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을 통해 저상버스와 특별교통수단의 도입 근거가 마련되었음에도 한참이 지난 지금 장애인의 이동권은 완전히 보장되지 않고 있다.

심지어 특별교통수단의 경우, 법적으로 보장해야 할 대수가 시행규칙에 명시되어 있지만 2021년 기준 충족률은 86%에 불과하다. 저상버스 역시 5년 간격으로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을 수립하고 목표를 제시하지만 단 한번도 충족된 적이 없다.

정부는 2021년까지의 저상버스 도입률 목표치를 전체의 반절에도 미달한 42%로 제시했으나 실제 전국 도입률은 30%에 불과하다. 혹자는 2021년 12월 31일,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개정으로 대·폐차 시 저상버스 의무도입, 특별교통수단의 운영비 지원 근거가 법적으로 마련되었기 때문에 정부의 실제 이행 여부를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법에 적시된다고 해서 현실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특별교통수단 확보가 법에 보장되어 있으나 현실은 여전히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처럼, 예산 확보 등 구체적인 노력이 들어가지 않으니 사회의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더 이상 장애인 앞에서 무정차하지 않을 수는 없는가?

새해에도 계속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을 장애인의 권리를 고민하는 정의로운 사회라고 명명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돈다. 아직까지도 장애인은 비장애인이 당연하게 이용하는 노선버스 탑승에서 배제당하고 있다. 특별교통수단의 보급률은 형편없이 낮고 운영방식은 제한적이라 시내·외 할 것 없이 장소와 장소를 연결하지 못한다.

정시도착은커녕 밤에는 출발하지도 못한다. 이동이 현대사회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시민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하는 기본권임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은 여전히 이동의 모든 영역에서 소외당하고 차별당하고 있다. 이 권리는 누가 보장해줄 수 있는가? 누가 결정해야 하는가? 결정은 필요한가? 결정이 필요없을 정도로 당연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무고한 시민’에 대한 의문도 계속 남는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자신이 일상적으로 누리는 당연한 것들을 독점적 지위라고 인식하지 못한다. 비장애인은 그들을 중심으로 맞춰진 교통체계 안에서 버스를 타고, 택시를 타고, 지하철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권력임을 인식해야 한다.

신도시에 지하철이 없거나 광역버스가 다니지 않아 이슈가 되면 적어도 1년 안에 대안이 만들어지는 사례를 우리는 숱하게 보았다. 22년 동안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장애인들이 완전히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는 현실에서 정치적·일상적 권력을 가진 이들은 한번이라도 이 현실을 함께 문제화한 적 있는가? 애초에 인식조차 못하지는 않았나?

지하철에서, 차도 위에서 장애인들이 차별과 혐오가 담긴 경적소리와 모욕을 들으며 함께 살자,라고 외칠 때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오늘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장애인 앞에서 무정차하는 대한민국을 바로 보며 외친다. “시민여러분, 장애인도 시민으로 살아가게 해주십시오!” “무정차하지 말고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태워주십시오!” 

이재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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