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사직과 시끄러운 해고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l승인2023.02.11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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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을 거치면서 달라진 일터의 풍경을 목격한다. 특히 기술이 빠르게 확산되고 얼리어답터를 자처하는 이들이 주로 일하는 IT업계의 모습은 시대의 흐름을 살필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되기도 하는데, 두가지 상황이 이런 변화를 가능하게 했다. 먼저 기술적 가능성이 열렸다.

‘줌’(ZOOM)으로 대표되는 비대면회의 및 다양한 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한 업무 도구들이 늘어났다. 둘째로 인력난으로 IT업계가 노동자 우위의 시장이 되다보니 적극적으로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서도 다양한 형태의 유연근무를 시도했다.

국내 IT업계는 팬데믹 동안 비대면근무와 원격근무를 제도적으로 구축했다. 주 3일 원격근무를 의무화하거나 아예 주 5일 원격근무제를 채택했던 기업들도 적지 않았다. 집중근로시간제같이 근무시간에 대해 유연성을 발휘하는 제도 역시 정착되었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 등 정부 측에서도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을 제안하기도 했다.

코로나19가 풍토병으로 정착되는 엔데믹 상황에 들어서자, 일터의 풍경을 어떠한 방식으로 만들어낼지에 대한 다양한 이들의 해석이 충돌하면서 갈등 또한 빚어지는 중이다. 미디어는 MZ세대 노동자들의 ‘조용한 사직’이 확산되고 있다고 전한다. 조용한 사직은 사표를 내는 직접적인 사직 행위가 아니라, 근무시간을 준수하고 근무시간 외에는 업무 관련 연락을 받지 않겠다는 ‘조용한 의사표현’에 가깝다.

좀더 적극적으로 해석해보자면 IT업계의 오랜 시간 몰입하여 ‘승부를 보는’ 문화인 ‘허슬(hustle) 문화’ 혹은 ‘해커톤(hackathon, 해킹과 마라톤의 합성어) 문화’에서 벗어나겠다는 움직임이라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IT업계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스타트업」(2020)에서 매일 피자나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때우고 잠을 쫓기 위해 에너지드링크를 마시며 사람을 ‘갈아내는’ 과정을 통해 벤처 투자를 이끌어내는 모습을 ‘허슬 문화’의 예시로 들 수 있다. 이제 MZ세대 노동자들이 허슬 문화에서 벗어나려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 IT업계에서 ‘시끄러운 해고’가 이어지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를 필두로 페이스북(메타), 아마존, 테슬라 등 이른바 ‘빅 테크’ 기업들이 만명 단위의 노동자들을 해고했다는 소식이다. 한국의 경우 1998년 현대자동차나 2009년 쌍용자동차의 사례와 같이 정리해고는 노사관계 외에도 중앙정부, 지방정부 모두가 그 과정에 개입해 중재하고 교섭할 사안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경영상의 어려움’을 입증하는 과정이나 해고가 복잡하지 않기 때문에 손쉽게 해고를 할 수 있다.

조용한 사직은 사실 이번에 처음 주목받은 것이 아니다. 10년 전부터 유행하던 ‘월급 루팡’이라는 단어를 떠올려보자. 월급 루팡은 ‘주어진 일만 간신히 해내거나 그마저도 지지부진한데, 근무시간에 딴짓을 하고 이따금은 일을 미루기도 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내용적으로 볼 때 조용한 사직과 월급 루팡은 큰 차이가 없다.

관리자 관점에서 보자면 조용한 사직을 실천하는 노동자는 조직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응하지도 않고, 급하고 중요한 일의 마감보다는 퇴근시간을 중요시하며, 조직에 필요한 일을 하는지 노동자 본인을 위한 일을 하는지가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월급 루팡과 다르지 않다. 월급 루팡에 비해 조용한 사직이란 말은 노동자 스스로의 주체성을 좀더 내포한 개념이다.

시끄러운 해고는 조직관리 관점에서 조용한 사직에 대한 반작용으로서의 해고와는 차이가 있다. 빅 테크 기업의 해고는 조용한 사직과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빅 테크 기업들은 금리 인상 국면에서 당장 이자율보다 높은 성장률을 보여줄 수 없는 형편 때문에 시끄러운 정리해고를 단행하고 있다.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많은 사람들이 ‘신자유주의의 죽음’을 이야기했지만, 미국 기업들은 여전히 ‘긴축’을 통한 실적개선을 보여줘야 한다는 자본시장의 논리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될 따름이다.

조용한 사직과 시끄러운 해고는 언뜻 MZ세대론을 매개로 조립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대론으로는 이 현상들을 이해하기 어렵다. 조용한 사직 현상은 선진국 자본주의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던 시대가 끝나고 느려진 발전 속도 속에서, 노동윤리의 관점으로 노동자들의 소진(burnt-out)과 자기배려 행위에 대한 다층적인 접근이 필요함을 드러낸다.

또한 시끄러운 해고는 AI, 딥러닝, 자율주행 자동차 등 최근 빅 테크 기업과 기술에 대한 신화 역시 원가절감과 이윤형성이라는 자본주의 기업의 운영원리와 주주자본주의적 평가체제 안에 긴밀하게 결박되어 있음을 우리에게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가장 ‘첨단’의 업계에서 떠도는 조용한 사직, 시끄러운 해고 담론 바깥에 위치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 팬데믹이 막 시작되던 당시 경제학자 로버트 라이시는 4계급론(원격근무 가능 노동자, 필수 노동자, 무급 노동자, 잊혀진 노동자)을 통해 코로나 시대 새롭게 등장한 계급구조를 설명했다.

라이시에 따르면 조용한 사직을 하거나, 시끄러운 해고를 당하는 IT엔지니어 등의 화이트칼라들은 그중 첫번째 계급으로 ‘위기를 잘 건널 수 있는 계급’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약간의 휴식을 쟁취하기 위해 ‘시끄러운 투쟁’을 해야 하고, 문자메시지로 ‘은밀한 해고’가 이뤄지는 계층에 대한 고민은 늘 미디어의 ‘버즈 워드’(buzz word) 속에서 사라지기 일쑤다. 같은 세대의 문제라 할지라도 미디어나 사회가 주목하는 정도가 다른 것이다. 플랫폼 노동자, 특수고용 노동자, 돌봄노동자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나라 빅 테크 업계에는 마치 수십년 전 ‘인형에 눈 붙이기’ 하듯, 시간당 최저임금도 받지 못한 채 딥러닝 알고리즘의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한 학습 데이터를 처리하는 노동자들이 100만명이 넘는다. 사소해 보이지만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불안정 노동자들의 권익 보장은커녕 불황 속 일자리 전망조차 어떻게 될지 우리 사회는 묻지 않는다. 세대론으로 ‘트렌디’한 담론을 만들기에 앞서, 지금도 ‘시끄러운 투쟁’을 결단하도록 몰리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찾아내 제대로 된 정치의 서사에 편입시켜야 하지 않을까.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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