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을 거머쥔 자서전’ 해석법

[강상헌 칼럼] 강상헌l승인2008.12.09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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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당선자 버락 오바마는 그동안 “꿈 앞에는 장애물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고 자주 말해왔다.

그는 2권의 자서전 <담대한 희망>(The audacity of hope, 2006)과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Dreams from my father, 1995)에서도 ‘꿈’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서글서글한 소년 같은 인상의 이 정치인은 마침내 꿈을 이뤘다.

그는 당선이 확정된 뒤 시카고 그랜드파크를 가득 메운 청중들을 향해 “현실이 된 이 꿈은 내 꿈이기도 하지만 바로 여러분들의 꿈이며, 여러분들의 성공”이라고 연설해 청중을 기쁘게 했다. 미국의 여러 언론은 오바마의 이 꿈을 흔히 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명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와 연결하곤 한다.

킹 목사의 꿈은 ‘모든 인간이 평등하고,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의해 판단되는 나라’였다. 오바마는 대통령 도전을 결심하기 전에 ‘과연 흑인이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인가’라고 스스로 의심했다. 미국의 인종차별과 흑인에 대한 편견은 ‘허물지 못하는 벽’이었던 것이다. 그의 승리에 세계도 놀라는 이유 중 하나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세계의 서점가를 강타하고 있는 오바마 신드롬의 핵은 역시 이 2권의 자서전이다. 또 이 자서전들은 그가 승기를 잡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선거 전에 이미 이 자서전들은 오바마를 ‘비중 있는 정치인’의 이미지로 업그레이드했다.

자서전의 저자 서명행사(사인회)에서 그는 주소와 이메일을 알려주는 지지자에게는 책값을 받지 않았다. 이런 지지자들이 ‘인터넷 열풍’의 토대가 된 것으로 평가된다. 뉴미디어인 인터넷과 올드미디어인 책을 결합하는 성공적인 결과가 된 것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와 같이 그는 미국의 첫 인터넷 대통령으로 불린다. 조지워싱턴대학 정치연구소의 줄리 저머니 소장은 “오바마가 인터넷 덕분에 당선됐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이 없었다면 그는 승리할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인터넷에 관련된 여러 지표들은 그와 경쟁자의 차이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이 차이는 투표 이전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오바마의 당선을 예측하게 했다.

<담대한 희망>은 지난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그가 당시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으로서 중앙 무대에 데뷔한 첫 번째 연설의 제목이기도 하다. 자서전 <담대한 희망>에서 그는 자신의 정치철학과 함께 ‘희망의 정치’에 관해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국경 너머의 세계’편에서는 인도네시아에서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인도네시아와 아시아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은 오바마가 정치인으로 나서기 전에 쓴 자서전이다. 마치 소설처럼 오바마의 역정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그의 문장력뿐 아니라 이야기를 전개하는 구성력은 소설가를 뺨치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 책에서 케냐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가 겪은 정체성 혼란과 그 극복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는 이 책에서 “아버지는 숯처럼 새까맣고, 어머니는 우유처럼 새하얗다는 사실은 내 마음에 조금도 아프게 혹은 불편하게 새겨지지 않았다”고 썼다. 인종차별과 파란만장한 가족사에서 14년간 그를 지켜준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이야기도 오늘의 오바마를 만든 중요한 요인으로 묘사된다.

인도네시아 시절, 국제학교에 보낼 경제력이 없었던 어머니가 새벽에 아들을 깨워 영어공부를 시킨 후 등교시킨 얘기도 있다. 오바마는 "어머니는 나를 더 많은 삶의 기회를 누릴 수 있는 미국인으로 키우기로 결심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그를 기억하는 인도네시아의 많은 사람들이 표현하는 기쁨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인으로서는 드물게 아시아에 관해 큰 호감과 관심,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인물임도 주목해야 한다.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한 뒤 고액 연봉을 마다하고 시카고의 흑인거주지역에서 공동체 운동을 펼치며 체득한 신념을 그는 “변화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잘 조직된 풀뿌리(grass-roots)에서 나온다”고 썼다. 오바마의 정치적인 취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우리 정치인이나 경제인들이 주목해야 할 대목일 것이다.

베스트셀러 자서전으로 자신을 알리는데 성공한 그의 대통령 당선으로 자서전에 대한 관심이 불붙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오바마의 꿈’을 사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연다. 자서전의 ‘효능’과 ‘가치’에 관한 진지한 숙고가 여러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다. 자서전이라는 장르가 바야흐로 활짝 피어나려고 하는 시점이다.


강상헌 논설위원

강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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