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국가’로 전락한 미국 재건 나서나

기획-오바마 시대, 무엇을 말하는가: (2)오바마와 미국 헌법, 그리고 민주주의 김민웅l승인2008.12.16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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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주의 청산위한 ‘비밀 해제국’ 설치 주목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자의 미국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패권의 미국에서 공존의 미국으로 갈 것인가란 기대와 전망부터 한반도 정세의 변화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까지, 특히 한국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시민사회신문>은 오바마 당선자의 취임식 전까지 ‘오바마 시대, 무엇을 말하는가’란 집중 기획을 연재한다. 뉴욕유니언신학대학원을 나와 미국 길벗교회 담임목사, 미주 동아일보 기자 등을 역임하며 ‘패권시대의 논리’ 등 미국사회에 대한 진보적 관점의 날카로운 비평을 내놓은 바 있는 국내 시민사회의 미국통 김민웅 편집주간(성공회대 교수)가 연재를 맡았다. /편집자
연재순서

1. 오바마 플랜
2. 오바마와 미 헌법, 미국 민주주의
3. 오바마와 미국 정치
4. 오바마와 경제
5. 오바마와 노동, 복지
6. 오바마와 신앙
7. 오바마와 미국의 세계적 역할
8. 오바마 그리고 미국 역사의 변화
9. 오바마와 우리의 관계
10. 오바마 모델과 진보세력의 미래

대통령이 새로 취임하게 되면 인기 연예인들의 스캔들이나 스타일처럼 대중들의 화제가 되는 것들이 몇 가지 생긴다. 대통령 부인의 머리 모양, 옷차림은 당연하고 대통령 자녀들의 모습도 여러 가지로 흥미로운 이야기 거리가 되는 것이다. 이에 더해 백악관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개’도 단연 화제집중이다.

개, 그러니까 대통령과 그의 가족들의 애완견은 미국 국민들과 대통령의 인간적 관계를 매우 친밀한 것으로 만든다.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개를 사랑하고 아끼는 모습에서 국민들은 동질감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어떤 개를 데리고 가게 되는 것일까? 답은 ‘유기견’이다. 길에 버려져 주인 없이 다니다가 관계당국에 잡혀 언제 어떤 운명이 될 것인지 모를 그런 개를 선택한 것이다.

백악관의 유기견

‘백악관에서 길러지는 유기견’은 오바마의 철학과 비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버려지고 돌봄을 받지 못했던 존재들에게 펼쳐지는 손길, 그것이 오바마의 정치가 현실을 감당해나가는 태도라는 것이다. 그간 미국의 기존질서에서 배제된 사람들, 소외된 계급, 외면당한 인종, 그래서 미국의 사회적 안전망이나 국가적 배려와 보살핌의 대상이 되지 못했던 유기견과 같은 운명에 처해 있던 이들이 이제 정치의 중심에 서게 된다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건 과도한 상상력의 발동이나 지나친 해석이 아니다. 오바마의 출신배경, 그 살아온 세월, 그리고 그가 속한 흑인 공동체의 역사적 운명은 백인 위주의 워싱턴 중앙정치로부터 유기되어온 삶과 인생의 궤적 그 자체가 된다. 지난 반세기 이상의 민권투쟁의 역사는 바로 이 버려지고 배제되었던 이들의 삶이 가진 가치를 복원하고 민주주의적 권리를 누리도록 하려는 노력의 집약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부시 8년의 집권기간은 미국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시민적 권리가 유보 내지는 박탈되어온 경로를 보여준다. 거대한 독점자본의 이해를 충실하게 반영한 부시 정부가 부자와 강자들을 위한 정치를 해오면서 보통의 서민들은 유기된 존재가 되었으며, 이들의 헌법적 권리 즉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는 소수 특권층의 전유물이 되고 말았다.

가진 자 위주의 경제정책이 보여주는 계급적 편향성은 말 할 것도 없고,9.11 이후 시민들에 대한 각종 감시체제의 강화, 의회의 견제력 약화정책, 그리고 재판 없이 무기한으로 전쟁포로를 구금하는 관타나모 수용소에 이르기까지 미국 민주주의의 토대는 대단히 심각할 정도로 파괴되어온 것이다.

미국 민주주의의 전통은 유럽의 근대적 변화를 넘어서려는 지점에서 출발한다. 물론 여기에는 백인 위주의 정치적 한계, 노예제도의 인정 등의 문제가 지적되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 민주주의의 발전사는 이러한 한계와 제도적 장애를 끊임없이 극복하려는 실제적인 투쟁의 역사와 사상을 그 내면에 지니고 있다. 일체의 전제정치에 대한 거부와 누구도 범할 수 없는 하늘로부터 받은 인간의 기본권은 그 구체적인 내용이 민주주의 투쟁사의 전개과정을 통해 심화되어 왔다.

미국 헌법이 던지는 질문

미국 헌법은 그런 점에서 단연 주목거리다. 헌법의 수정조항들은 기존의 법적 한계를 상황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모시켜오면서 현실의 요구에 맞게 보다 실체가 분명한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한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비롯해서 인종차별과 인신구속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미국 헌법은 정치사회적 변화와 이에 대한 법철학적 토론과 성찰들을 담아내려는 노력들의 소산이다.

그래서 미국의 정치지도자는 반드시 이 헌법에 대한 숙독과 이해, 그리고 그에 기초한 사상적 발전과 성숙이 요구된다. 자유란 무엇인가? 권력의 독선은 어떻게 방지할 수 있는가? 미국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을 위반하는 실정법은 과연 어떤 것들이 있는가? 국민들의 주권적 권리를 대통령이라고 해서 침해하는 경우는 없는가? 현재 유지되고 있는 법질서가 혹여 미국 헌법이 본질적 기초로 삼고 있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깨뜨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질문들을 스스로 던지지 않으면 권력자가 되었을 때 그는 권력의 속성상 민주주의를 훼손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이나 기타 헌법적 기구로서 국민들의 기본적 권리와 요구를 실현해나갈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를 미국 헌법에 대한 거의 완벽한 숙독과 이해, 성찰로 이루어내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바마가 연방 상원의원이 되고 나서 가장 크게 깨우친 것 가운데 하나는 미국 헌법이 가지고 있는 가치의 중요성이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원칙 아래 이루어진 권력구조는 단지 각 헌법기관 사이의 줄다리기 싸움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독선을 막고 권력의 기능을 최대한 주권자인 국민의 권리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틀임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오바마가 다름 아닌 헌법학 교수 출신이라는 점도 이러한 새삼스런 각성과 관련을 갖는다.

오늘날 미국이 이토록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국민의 주권적 권리가 약화된 것, 그리고 세계적으로 그 위상이 존경에서 배척과 경멸로 전락해버린 것에는 미국 헌법정신에 충실한 민주주의를 제대로 구축하지 못한 채 권력의 욕망에 휘말려버린 탓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로 세계 최고의 민주주의 국가 미국이 아니라, 대테러 전쟁을 명분으로 사람들을 함부로 체포하고 비밀을 양산하며 관타나모 수용소의 잔혹한 인권유린을 저지르는 ‘불량국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오바마가 ‘변화’를 외쳤을 때, 그것은 단지 부시 8년의 한계를 극복하자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본래의 민주적 전통을 복구하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미국의 존경스러운 위상을 창출하자는 것에 그 목표가 겨냥되어 있는 것이다. 오바마의 자서전 ‘희망의 담대함’(Audacity of Hope)에서 그는 바로 이러한 미국의 민주주의가 겪고 있는 난관을 짚어내면서 무엇보다도 “관타나모 수용소의 즉각 철폐”를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정권 인수위를 구성한 이후 작성 발표한 ‘오바마-바이든 플랜’을 통해서 비밀주의를 청산하기 위한 ‘비밀 해제국’(Declassification Center)을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민주주의의 발전은 중요한 정보에 시민들이 차단당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는 결국 국가 공동체 전제의 공공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토대라고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공공성의 복원

그렇지 않아도 오바마는 미국의 시장체제가 공공성을 회복하지 못할 경우 매우 중대한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내다보았고 따라서 그의 집권 운영 프로그램의 중심에 이 공공성 확보와 심화를 중요한 정책 기조로 세우고 있다. 말하자면 미국의 민주주의는 권력과 자본이 공공적 가치를 가진 영역과 대상을 자기의 소유로 사유화(privatization)하고 시민들의 헌법적 권리를 제한하면서 위기를 맞이했다고 보고, 이를 역전시켜 민주주의의 정상적 가동과 공화국 헌법의 실체를 복원하겠다는 것이다.

과연 이대로 그가 해나갈 수 있을 것인지는 미지수이자 대단히 많은 구조적, 제도적 한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적어도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이러한 정치사상과 법철학적 사고를 할 수 있으며 실제적인 정책적 선택을 하려는 것은 중요한 노력이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이명박 정권에 의해 유린, 파괴되고 있는 현실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이라는 점에서도 우리에게 주목할 현실이다. 이제 우리는 미국의 민주주의가 어떤 진보적 변화를 보일 수 있게 될 것인지 예의주시하게 되는 시대와 마주하고 있다. 그것은 21세기 세계사의 변화와도 매우 밀접한 관련을 갖게 될 것이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 만큼 세계는 보다 평화로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시민사회신문 편집주간

김민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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