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를 아십니까

사이비종교와 사이비정치 강경석 문학평론가l승인2023.04.09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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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다보면 얼굴이 참 맑으십니다, 하며 옷깃을 붙드는 사람들을 간혹 마주치게 된다. 대개는 사기꾼이나 사이비종교인이겠거니 하고 뿌리치지만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나 들어본 경우도 더러 있을 것이다.

그들은 십중팔구 자신들을 진리 공부하는 사람 또는 도(道) 닦는 사람들이라 소개한다. 집집마다 하나씩은 있을 크고 작은 근심이나 우환을 두고 그게 다 조상대에서부터 내려오는 업(業) 때문이니 함께 도를 닦아 업장(業障)에서 헤어나자는 얘기가 골자일 것이다.

초발심(初發心)이야 어떠했든 이들이 결국 포덕(布德)이라는 미명하에 다단계 영업방식으로 조직을 확대하며 지속적으로 돈을 요구한다는 사실쯤은 이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잘못된 믿음에 빠져드는 사람들은 왜 사라지지 않는 걸까.

이러한 궁금증은 넷플릭스 다큐시리즈 「나는 신이다」(2023) 논란을 보면서 일정 부분 해소되는 측면이 있었다. ‘도를 아십니까’가 동학 창도 이래의 한반도 신종교에서 세계관이나 논리를 견강부회(牽强附會)하는 데 비해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사이비교주들은 모두 기독교에 대한 자의적 해석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다단계식 조직 확장과 돈 문제에서 보이는 행태는 크게 다를 바가 없고, 처음엔 피해자로 출발하지만 높은 자리에 오르고 나면 누구보다 적극적인 가해자가 되기도 하는 관리자 또는 ‘충성그룹’에 의해 교단이 지탱된다는 점도 비슷하다.

세상과 완전히 분리된 자신들만의 세계를 건설해놓은 것처럼 보이면서도 실은 특권적 지위에 대한 선망, 기득권 집착, 무자비한 착취, 성과주의 경쟁이 교단 존속의 중심원리라는 점에서 어쩌면 그것은 바깥세상의 더욱 노골적인 복제나 다름없기도 하다. 다만 「나는 신이다」의 구성방식이 은연중 조장하는 바와 같이 교주를 비롯한 교단 최상층의 엽기적 비행들에 사람들의 눈길이 쏠리면서 그러한 재생산 메커니즘이 종종 감춰질 뿐이다.

그것이 우승열패의 경쟁사회를 먹이로 삼는 한 이러한 사이비교리들은 머리를 잘라도 다시 살아나는 신화 속 히드라(Hydra)처럼 쉼 없이 번성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현대사회 최대의 보편종교는 사람이면 마땅히 추구해야 할 도나 진리 따위는 애초에 있지도 않고 엄연한 것은 욕망뿐이라는 자본주의 맹신일 테니 유독 한국사회에서만 일어나는 현상도 아닐 것이다.

따라서 과학주의니 실증주의니 하는 자본주의 세상의 척도들도 당장 무시해서는 곤란하지만 근본적 대안이 되기는 어렵다. 기술과학과 자본주의가 더없이 고도화된 이즈음에 상대주의적 냉소나 탈진실 문제가 부각되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가령 노자(老子)의 예에서 보듯 ‘도를 도라고 말하면 늘 그러한 도가 아니(道可道非常道)’라고 할 때의 ‘도’, 그러니까 불변의 고정된 실체는 아니지만 그것 없이는 그 힘의 발현으로서의 덕(德)이나 제도로서의 정치, 사회운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하방저지선으로서의 법 또한 원만하게 작동하기가 어려워지는 진정한 의미의 도나 진리에 대한 추구가 외면당하는 사이, 두려움과 불안에 빠진 사람들은 자본주의사회 현실정치와 세속법의 비좁은 악다구니 속에서 혹은 사실상 그와 다를 바 없는 초월적 힘에 대한 환각 속에서 스스로를 기만하며 자족하게 되는 것이다.

대통령실의 용산이전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혐의로 논란을 빚고 있을 뿐 아니라 10‧29참사, 대일 굴욕외교에 대한 견해에서 윤석열정부의 그것과 높은 싱크로율을 보이거나 그것을 선반영함으로써 비선실세 국정농단의 트라우마를 자극하곤 하는 이른바 천공(天公)도 도인(道人)을 자처하는 사람이고 여당 신임대표가 선지자 이사야(Isaiah)로 추켜올렸다는 극우파 전광훈 목사도 종교지도자를 자처한다.

참된 도나 기독교적 진리에서 그들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는 재론의 여지가 없을 테지만 현실권력의 실세들조차 그들을 떨쳐내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것을 보면 현 정부와 여당의 불안이 어느정도 짐작되는 바 있다. 그것은 그들 손에 쥐어진 권력이 어디서 온 것이며 어디로 가게 될지 알 수 없어 느끼는 무의식적 불안이거나, 그 권력이 자신들의 역량과 노력, ‘실적’에 따른 마땅한 보상이기에 반대자들에게만큼은 절대 빼앗길 수 없다는 식의 망상적 초조감일 것이다.

도를 닦거나 말씀의 진리를 공부하는 시늉을 하다 말고 자대(自大) 미망에 들려 혹세무민하며 잇속을 챙기려는 자들에겐 가장 알맞은 먹잇감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들 집권세력과 사이비종교 사이의 위계는 고정되어 있기보다 조건에 따라 상대적이고, 일방적이기보다는 ‘호혜적’ 공모관계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고 보면 현 여권이 야권에 비해 그나마 역동적이라는 일각의 평가도 재고해볼 여지가 있다. 젊은 보수정치인들이 잇따른 선거에서 두각을 드러내거나 정치 신인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등의 현상은 그들 내부에서 솟아오른 역동성 때문이라기보다 촛불혁명으로 거덜나버린 폐허에서 아무나 주인을 자처하는 혼란상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 모두가 촛불연합이 회의에 빠져 그 진전을 멈추고 이완되는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거니와 폐허의 혼란상이 전사회적으로 더 번져나가기 전에 서둘러야 할 여러 과업 중 한가지는 바로 그 연합의 복원이자 재정비이다. 사람이면 마땅히 추구해야 할 도나 진리가 있다면, 그것은 저 멀리 어딘가에 따로 찾을 게 아니라 각자가 놓인 자리에서 저마다 두려움 없이 촛불을 켜는 그 마음으로 돌아가는 데서부터 드러나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강경석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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