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의 이념

[시민운동 2.0] 한상희l승인2008.12.16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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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후로 입법이란 헌법을 구체화하는 법 규범의 확대를 의미하였다. 국민주권의 원리를 바탕으로 헌법에 담겨 있는 인권보장과 권력분립, 민주주의 등을 향한 시대정신을 현실의 실천 방식으로 재가공하는 것이 바로 입법인 것이다.

하지만 2008년 현재 우리 국회를 바라보면 이런 입헌주의 이념은 이미 잊은 지 오래이며, 지난 20년간 우리 사회가 이루어왔던 민주화의 성과조차도 여지없이 부정하는, 반입헌주의와 반법치의 야만의 시대로 퇴행하는 기미조차 보인다. 문명사회 존립의 가장 기본적 요소인 법치를 왜곡하는 수준을 넘어 아예 그 실체까지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사법감시센터의 최근 이슈리포트의 주제인 이른바 ‘통과되자마자 헌법재판소로 직행할 수 밖에 없는 엉터리 법안 7건’(시민사회신문 78호 참조)은 바로 이런 점에 주목하였다. 선정된 법안들은 하나같이 인권보장과 권력분립, 법치주의, 민주주의 등 헌법이 가장 중심적으로 추구하는 이념들을 그 뿌리에서부터 부정하는 반헌법적, 반민주적(따라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우리 국가이념에 비추어보자면 ‘반국가적’인) 법안들이다.

이런 엉터리 법안들이 가지는 가장 큰 문제점은 반민주성이다. 민주시민의 당연한 권리이자 헌법상 최우선적 인권으로 인정되는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통제하고(집시법개정안, 집단소송법개정안), 결사의 자유를 왜곡하며(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 시민과 시민사이의 의사소통을 가로막고 나선다(사이버모욕죄관련법안). 심지어 여성이나 장애인등 ‘군미필자’의 공무담임권까지 침해하면서 그들의 시민권을 박탈한다(제대군인지원법개정안).

민주화 이래 우리 사회가 천신만고로 만들어 놓은 토론과 발언과 참여의 민주주의의 광장이 바로 공격의 타깃이자 규제의 대상인 것이며, 군사정권 이래 혹은 건국 이래부터 시민과 민중의 목소리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던 정부, 여당의 콤플렉스가 이제 본격적으로 폭력이 되어 시민들의 주권을 가로채고 있는 것이다.

법치란 무엇인가? ‘문명사회의 법치’란 춘추시대 상앙의 법가처럼 백성을 부국강병의 수단으로 쥐어짜는 수단으로서의 법도 아니며, 나치가 표방했던 ‘법률의 지배’처럼 권력의 일방통로로서의 법도 아니다. 칸트 이래 문명사회에 보편화된 법치의 이념은 입헌주의의 이념과 결부된다. 헌법으로 대표되는 근본법, 고차법에 모든 국가사회가 복종하는 것, 그것이 바로 법치주의이며 법치 국가란 국민의 법 혹은 시대의 법이 정규적으로 안정적으로 통용되는 국가, 또는 이러한 고차법이 국민의 대표에 의하여 법률로서 구체화되어 모든 국가권력은 이에 충실하게 복무하는 국가를 의미한다.

그런데 법안을 통해 구체적으로 발현된 현 정권이 그토록 강조하던 법치 혹은 법질서의 실체는 이런 법치의 기초상식까지도 외면해 버린다. 오로지 ‘질서’라는 추상적 이익만을 위해 우리 헌법과 인권보장이라는 시대이념이 최우선적으로 보호하고자 하는 표현의 자유, 집회시위의 자유, 결사의 자유를 그 밑바닥에서부터 흔들어 놓는다. 오로지 민중의 외침에 몸서리쳤던 지난날의 콤플렉스만이 이들의 내면을 장악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법치는 폭력에 다름 아니다.

이렇게 법의 이름으로 법을 능멸하는 처사가 주로 법률가라는 이름을 가진 정치인들에 의해 자행되고 있음은 분노에 앞서 연민의 감정까지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그것이 과거 군사정권 시절 권력 앞에서 무한한 순치를 다짐했던 관방(官方)법학, 고시(考試)법학의 산물임을 생각한다면 그리 놀랄 것은 없다. 문제는 민주화를 자랑하는 이 시점에서까지 과거의 권위주의적 법도구론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그들의 무감각, 무의식이다.

물론 이들은 질서라는 ‘또 다른’ 법익을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그 질서라는 주장의 심연에 존재하고 있는 정부 여당의 태생적 콤플렉스는 차치하고서라도, 그러한 법익이 그런 식으로 보호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오늘날의 법학은 물론 일반적인 법률가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법 이론이나 법 도그마들의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은 ‘합법적인 불법’을 언급할 필요도 없이, 태생에서부터 반민주, 반법치의 폭력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론 법을 이념과 가치가 실천되는 도관(導管)이 아니라 권력과 위세가 통용되는 수단으로만 파악하는 법률 만능주의적 사고에 익숙한 법률가라면 얼마든지 이런 반법치의 법안들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폭력을 법으로 포장했던 상앙이 진나라 효공에게 등용되기 위해 제왕의 도를 언급한 적이 있다. 이를 두고 사마천은 사기에서 “본래 천성이 각박한 사람이 마음에도 없는 헛소리를 지껄였을 뿐”라고 단언하였다. 만일 사마천이 관에서 나와 집시문화를 바로 잡고 사이버공간의 질서를 확립한다는 미사여구를 본다면 어떤 말을 할까?


한상희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 건국대 법대 교수

한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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