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가 꼼수를 써서야

[강상헌 칼럼] 강상헌l승인2008.12.16 12:16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선비론’이 최근 화제다. 이명박 대통령은 선비인가? 여당 간부들과의 모임에서 나왔다는 대통령의 다음 발언은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위기를 만나면 목숨을 던져야 하는 것이 도리’인 선비로 간주한다. 스스로를 선비로 생각하고 있다는 얘기다.

대통령은 "견위수명이라는 말이 있듯 나라가 위기를 만나면 목숨을 던지는 것이 선비의 도리"라며 공직자들의 비상한 각오를 주문했다.

몇몇 신문에서는 ‘선비’에 관한 얘기를 늘어놓기도 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을 뒷받침하여 ‘목숨을 던지는 자세로 모두 일로 매진해야…’ 하는 논리, ‘선비는 그래야지’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투였다.

과연 ‘선비’란 누구인가? 사전들은 ‘학식이 있고, 행동과 예절이 바르며, 의리와 원칙을 지키고, 관직과 재물을 탐내지 않는, 고결한 인품을 지닌 사람’이라고 푼다.

견위수명은 공자가 제시한 성인의 기준, 약속을 끝내 잊지 않는 것과 함께 견리사의(見利思義) 견위수명(見危授命)하여야 성인이라는 것이다. 재물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친다는 뜻, 안중근 의사의 글씨로도 알려진 문구다. 선비와 성인은 대동소이한 개념이겠다.

견문이 적은 탓이나 선비의 현대적 기준이 따로 제시된 바는 없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한국의 현대’에서 경영인으로 경력과 재산을 성공적으로 쌓아온 이 대통령을 선비라 칭할 수 없는 점은 당연하다. 그는 선비로 보다는 CEO 또는 노련한 정치인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를 따르는 정부 국회의 인사들에게도 잣대는 같아야 한다.

나라가 위태로우면 선비는 의당 그럴 것이지만 선비가 아닌 이도 목숨을 던질 수 있다. 그러나 ‘목숨을 던져야 할 위험’을 파악하고, 최전선에서 지휘봉을 들어야 할 장본인들이 살얼음판 같은 좌표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잘못 설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필자는 걱정한다.

스스로 선비라 칭하는 주제파악의 오류는 그 자체도 문제지만, 첫 단추 잘 못 채운 것 마냥 연쇄적으로 나라를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있다. 발 디딘 지점, 시선 닿는 지점이 실제 상황과 다르면 어떤 결정도 적확할 수 없다. 발상부터 잘못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그의 인격에 감화되어, 그 인격을 구현하라며 그에게 표를 준 것이 아니다.

스스로를 정신적 지도자로 포장하고 ‘나라를 위해’ 마냥 따르기만 하라는 반복 주문으로 국민을 중독 또는 마비시키고자 하는 의도라면 이는 더 나쁘다. 빈약한 명분을 덮고자 논의 자체를 봉쇄하는 후진적 전략과 어울리는 짝이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 명분 빈약한 정권들이 애용하던 ‘전략’이다. 미국산 쇠고기 사태로 모두 체득한 경험이다.

‘나라가 위기를 만나면’이란 말의 ‘동전의 뒷면’을 생각한다. 경제위기를 빌미로 청년실업 따위를 들먹이며, 폐기처분된 ‘대운하’를 다시 끄집어내려는 꼼수가 아닌가 의심하는 것이다. 이런 개념들이 ‘애국’ 이데올로기를 독점하려는 치졸한 독재의식의 발로가 아닌지. 혹은 ‘기왕 버린 몸’ 하는 자포자기의 심사인가?

소수의 부자만을 위한 정책이라는 큰 저항에도 불구하고 초지일관해 온 것처럼, 대운하도 끝내 ‘해버리겠다’는 심중을 내세우고자 ‘선비의 견위수명’까지 들먹였다면 이는 국민을 향한 협박과 다르지 않다. "4대강 치수면 어떻고, 운하면 어떠냐.”라는 발언은 비겁하기까지 하다.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며 유치하기 짝이 없는 논리와 국력을 앞세운 마케팅 장난으로 일본이 벌이는 ‘꼼수’를 그대로 응용하는 듯한 요즘 몇몇 관리 정치가들의 발언도 그렇다. 자신의 얼굴과 이름이 어떻게 역사에 새겨질까를 한번만이라도 생각한다면 이럴 수가 없다.

국토의 척추에 칼날을 박는 대운하는 우리 당대에도 치명상이지만, 원래 주인인 우리의 아들 딸 손자 손녀들의 건강한 자연을 주인 몰래 헐값에 토건업자들에게 팔아먹는 범죄행위다. 이런 퇴영적 울력 말고는 나라를 움직일 방안이 없는가? 이들의 상상력이 기껏 여기까지인가?

기후변화 식량위기 에너지고갈 등 전 지구적 재앙의 쓰나미는 이미 우리를 향해 저 모퉁이를 돌았다. 이 위급한 시기에 기껏 대운하 따위의 어리석은 미명과 또 싸워야 하나? 지친 이 국민이 안쓰럽다. 세상 바로 보는 선비는 어디에 있는가.


강상헌 논설위원

강상헌  @

<저작권자 © 시민사회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강상헌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여백
시민사회신문 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8288 서울특별시 구로구 새말로 93, 신도림태영타운상가2동 B105  |  대표전화 : 02-3143-4161  |  팩스 : 02-6737-1115  |   ingopress@ingopress.com
등록번호 : 서울 다 10706  |  등록일자 : 2013년 8월 26일  |  회장·논설주간 : 강상헌  |  발행·편집인 : 설동본  |  편집국장 : 양병철
후원계좌 : 국민은행 7788-01-04-375819 (시민사회신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설동본
Copyright © 2007 시민사회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