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건설인의 삶, 봉사인생에 오롯이 담습니다”

[특별기획]대한민국 'ESG-강소기업' CEO열전⑩양공진 ㈜레오개발 회장 설동본 기자l승인2023.05.10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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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련 최고경영자과정 총동문회·레오건설 등 리더십 발휘 분주한 삶

건설 시공 원칙 고수 골조공사전문업체…경영인·산업 대상 등이 입증

한국NGO신문·시민사회신문 공동기획

세계는 지금 ESG(환경·사회·거버넌스) 시대다. 유엔이 UNPRI(책임투자원칙) 프로그램을 통해 ESG 실천을 강조하고 있고, 글로벌컴팩트(지구계약) 프로그램으로 인권·노동·환경·반부패 실천을 요구하고 있다. 이와 함께 작지만 강한기업 ‘글로벌 강소기업’이 대세다. 강소기업은 특별한 기술과 대기업 부럽지 않은 복리후생을 자랑한다.

한국NGO신문과 시민사회신문이 공동기획·취재하는 ‘ESG-강소기업 탐방’ 특별기획은 기업들이 시대 변화에 맞춰 기후·환경보호, 사회적가치추구. 사회책임경영 및 지속가능경영을 확산시켜 나가도록 하기 위한 기업성장 후원 프로젝트다.또 ‘ESG-강소기업’분야에서 모범 기업과 CEO을 찾아 청년세대 ‘인큐베이팅’ 역할과 ‘친환경·강한 기업’의 롤 모델 역할을 제시한다.

한국NGO신문·시민사회신문 특별기획-대한민국 'ESG-강소기업' CEO 열전, 오늘은 그 열번째로 전경련 최고경영자과정 총동문회 경영인상에 빛나는 ㈜레오개발 양공진 회장(70세)을 만나본다.

정부 청년층 지원금, 건설현장 젊은층에 지원하고 기능공 양성해야

‘순창’ 고향사랑·후배양성 등 나눔 실천…어르신 복지에 큰 관심

▲ 전경련 최고경영자과정 총동문회장과 레오개발·레오건설 등에서 발군의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양공진 회장은 건설시공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골조공사전문업체를 이끌면서 젊은층의 건설현장 유입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설동본 기자

검증된 인물이 모이는 전경련 최고경영자과정

- 건설인으로서 전경련 최고경영자과정 총동문회장으로서 가장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데 요즘 근황부터 듣고 싶다.

전경련 산하 최고경영자과정에 들어갔는데, 보통 이 과정에 입문하는 기업인들은 연배가 어느 정도 있는 사람들로서 여러모로 검증된 인물인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기수 중 내가 좀 나이가 많은 편에 속하는데 자꾸 회장을 하라고 해서 맡게 됐다. 모임에서 나를 거세게 추천하는데 안 하게 되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지 않나. 하든지 나가든지. 전경련 총동문회 78기로 기수 회장도 맡았었는데 그게 발단이 됐다. 그래서 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하고 총동문회 회장을 맡게 됐다. 전경련 국제경영원(IMI)의 최고경영자과정 수료생들의 모임으로 1980년 설립되었다. 지난해 말 85기까지 4천여 명의 기업인이 활동하고 있다. 이 활동과 더불어 레오개발과 레오건설에서 건설인으로서 매우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 전경련 최고경영자과정은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인가.

전경련 최고경영자과정은 전경련이 1980년에 경제계 최초로 개설해 43년째 이어오고 있는데,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경영자 교육 프로그램이다. 올해 86기 최고경영자과정은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를 덮친 인플레이션에 맞춰 기업들의 변화와 대응 그리고 위기관리 방안 중심으로 교육을 진행하는 것으로 안다. 특히 코로나 대유행 이전과는 다른 기업 경영환경의 변화, 국제질서의 변화, 디지털 트렌스포메이션의 도래, ESG경영 도입 등 다양한 경영트렌드를 중점적으로 알아보고 있다.

코로나 뉴노멀 시대를 맞아 급변하는 경영환경을 사전에 점검하고, 위기 이후의 성장을 준비할 기회가 될 것이다. 또 최고경영자과정은 중소·중견기업 경영자를 위한 정부 지원 및 보조금 등 실질적 도움이 되는 정보 제공은 물론 비즈니스 네트워크 강화를 위한 합숙 워크숍, 전경련 월례 경영자 조찬 참여 등 다양한 혜택이 제공된다.

-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동문의 경영정보교류 및 친교 목적인데 특별한 자격이 있는가.

전경련에 대기업도 많지만, 중소기업과 전문직도 있다. 계층별로 경제인이 아니더라도 건설·제조·대기업·법조인 등 이렇게 골고루 참여해 서로 자문과 조언을 주고받고 있다. 전경련 총동문회에 들어오기 위한 특별한 자격은 없다. 참여하고자 하는 CEO의 과정에 맞는지, 사업 규모가 전경련 총동문회에 적절한 일정 정도의 규모가 되는지 정도를 심사하고 진행한다.

▲ 지난 1월 5일 전경련 최고경영자과정 총동문회장에 취임하고 있는 레오개발 양공진 회장. 레오개발 제공

사회봉사 경영인 모임으로 이끌 것

- 올해 1월 5일 회장 취임사에서 85기에 달하는 기수별 동문회의 회장들과 정례적인 회장단 회의를 개최해 4천여 명의 동문회원들을 아우르는 진정한 사회봉사 경영인 모임으로 만들어 갈 것이라고 했는데 실천에 옮기고 있는가.

사실 쉽지 않다. 첫째로는 시간상으로 매우 바쁜 사람들이고 두 번째로는 개인적으로 거기 오는 사람들이면 어디든 후원하고 있다. 개인적인 걸 떠나서 단체로 한다는 게 쉽지는 않지만 노력 중이다. 대부분 단체에서 봉사활동을 진행한다. 그리고 못 오면 금전적으로 봉사활동을 대신한다. 그런데 나는 금전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노력 봉사를 함께 겸해야만 봉사가 된다고 생각한다. 막상 코로나가 해제되고 그에 맞춰 단체사회봉사를 준비하고 있는데 쉽지는 않은 게 사실이다. 예를 들어 하루 식사를 1800~2000명씩 급식하는 노인복지센터의 경우 급식 간격과 공간 등이 여전히 코로나19에 맞춰 세팅돼 있다. 이제 코로나를 벗어난 뉴노멀 시대에 맞게 우리가 나서서 조정할 필요가 있다.

- 노인복지 쪽에 유달리 관심이 많이 보이시는 것 같은데.

그렇다. 어르신 중 노후대책을 제대로 못 해놓고 사는 분들이 많다. 예전에 종로에서 어르신 급식 봉사를 잠깐 한 적이 있었는데 점심 급식에 밥을 많이 드렸는데도 자꾸 더 달라고 하신다. 그래서 다 드시고 가져오시면 더 드리겠다고 했더니 다른 사람들 다 퍼주고 없으면 더 못 먹지 않냐며 무조건 더 달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아침도 못 먹었고 저녁까지 먹어놔야 한다고 하신다. 노후대책은커녕 배고픔도 해결하지 못한 어르신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경험했다. 우리나라가 복지정책을 많이 하지만 그러함에도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 특히 수명이 길어지며 어르신들의 수가 더 증가하고 있지 않나. 만약 봉사할 기회가 생기면 여러 가지가 많겠지만 어르신을 대상으로 봉사하고 싶다.

- 기업인 모임이자 기업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이다 보니 자칫 시장이나 소비자들의 권익 보호는 간과할 여지가 있다는 비판적 목소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당연히 그럴 수 있다. 가끔 어쩔 수 없이 전경련이란 이름을 쓰고 행사할 때가 있는데 비판적 시각이 존재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골프대회를 하면 400명 정도가 모이는데 이 어려운 시기에 골프를 하냐며 안 좋게 본다. 사실 경제인들이라는 게 그런 행사를 통해 서로 교류도 하고 사회봉사나 이바지할 것도 찾고 하는데 모임을 하는 이유는 뒷전이고 그저 친목으로만 부각되기도 한다.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기업인들이 더욱 노력해야 하고, 더 깊이 소비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 양공진 회장이 지난해 전경련 최고경영자과정 총동문회 ‘경영인 대상’을 받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레오개발 제공

외국계기업 건설현장 근무 큰 경험

- 소비자·환경 등 기업사회책임을 말하는가.

아주 적절한 이야기다. 매월 전경련에서 하는 조찬 포럼이 있다. 각계각층의 기업인들이 모여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예전에는 경제인이라고 하면 돈 버는 일에만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기업인으로서 해야 할 일들과 나아가 경제활동을 함으로써 파생되는 환경문제와 사회책임이라는 부분을 함께 고민한다. 공장 내에서 혹은 회사 내에서 이뤄지는 것만 책임을 지면 됐는데 기업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까지 생각하는 경제인이 돼야 한다고 하는데 참 어려운 부분이다. 그러나 어렵지만 중요한 부분이다. 기업인의 모임이라 시장이 소비자들 권익 보호를 간과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을 제대로 경영한다는 것은 시장과 소비자들의 권익 보호와 그들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어야 하며 나아가 ESG 경영과 사회공헌까지 생각하는 모임이어야 한다.

- 레오개발과 레오건설은 2003년 설립 이래 현재까지 국내의 메이저 건설사들과 협력관계를 다지면서 성장한 골조공사전문업체로 알고 있다. 해외 외국계기업 건설현장 관리자로 근무하며 건설업에 발을 디뎠다고 들었는데 설립배경을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레오개발과 레오건설은 모두 주식회사다. 레오개발은 대기업에서 하청받아서 하는 외장 만드는 일, 즉 골조공사전문회사고 레오건설은 조달청에 입찰해 직접 수주받아서 하는 종합건설이다. 우리같이 조그만 건설회사는 사무실 직원은 별로 없다. 모두 현장에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 있는 레오개발은 15명, 안양에 있는 레오건설은 12명이다. 나는 사실 건설 전문가가 아니다. 1980년대 초에 우연히 리비아에 나가 일하게 됐다. 국내 회사에서 파견된 게 아니라 외국인 회사에서 근무했다. 건설 기술자인 선배가 리비아에 가게 됐다며 같이 가자고 했다. 나는 기술도 없는데 어떻게 가냐고 하니 현장에 기술자만 필요한 게 아니라며 설득해 리비아로 가서 일하게 된 거다.

- 리비아라고 하면 미국이 그 나라 왕정을 지원해주고 리비아는 미국에 석유를 수출하며 관계를 지속해오다 무아마르 카다피가 혁명을 일으키면서 왕정을 장악하게 되자 미국이 어정쩡한 상태로 물러났던 것 아닌가.

맞다. 1980년대만 해도 중동사람들이 의식도 없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리비아에는 좋은 자원의 석유를 이용해 화학, 비료 등 미국이 만들어 놓은 것들이 많았다. 미국 사람들은 자기들이 만든 시설인데 그냥 두기가 아까웠고 리비아도 만들어 놓은 시설들을 관리할 수 없어 미국과 리비아의 협의가 이뤄졌다. 리비아에서는 시설 개발 등의 사업은 계속 진행해도 미국 사람들은 리비아에 오지 말라고 했다.

미국에서는 그러면 돈을 조금 주고도 자기들 말을 제일 잘 듣고 일도 잘하는 사람을 찾았는데 그게 한국 사람이었다. 미국에서 공부한 한국 사람을 지사장으로 내보내고 한국 사람 300명 정도를 관리자로 파견시켰다. 그리고 노동력이 싼 동남아 인력 4천여 명을 자기들이 만들었던 낡은 시설 보수도 하고 신축도 하게 했다. 그 회사에서 6년 8개월 동안 일했다.

- 미국계 회사인 만큼 한국 기업과 달리 노동과 임금 체계가 많이 달랐을 것이라는 판단이 서는데.

미국의 노동법을 적용받아 국내 노동자들이 해외 나가서 받는 임금보다 3~4배를 더 받았다. 리비아는 지역적으로는 중동이 아니고 아프리카 쪽인데 문화적으로는 같은 중동권으로 본다. 거기는 이슬람국가라 금요일이 휴일이다. 목요일이 토요일 개념이니 목요일 오전 근무하고 금요일에 쉬고, 토요일과 일요일에 다시 근무한다.

그런데 내가 근무한 곳은 미국회사라 미국의 노동법을 따라가야 하니 평일에 놀고 토요일과 일요일 근무는 특근으로 분류됐다. 그 당시 미국은 대체 휴무일도 있었다. 그런 날도 특근을 적용받는다. 그러니 임금도 아주 많이 받았다. 국내인들이 해외 나가서 버는 돈의 3배를 버니 7년 가까이 오래 근무하게 됐다.

▲ ㈜레오건설이 시공중인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창조융합동 공사현장 모습이다. 레오개발 제공

특수건축물 공사에 전문성

- 리비아 근무시절 전해줄 만한 특별한 기억이 있는가.

리비아 지사장이 원래 미국에서 공부한 분이라 야구를 좋아한다. 리비아는 오락이고 뭐고 할 게 없는 나라였다. 그렇게 지사장 덕분에 한국인들끼리 야구를 즐겼다. 서로 안 지려고 야구로 경쟁하다 보니 자주 얘기하게 되고 친해졌다. 리비아에는 우리만 있는 게 아니라 동아건설, 대우건설도 있었다.

대우는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있었는데 그곳으로부터 야구 를 하자는 제안이 왔다. 대우건설은 한국인만 2천 명 정도였다. 거기는 어렸을 때 야구를 제대로 했던 선수 출신들도 있었고 우리와 실력 차이가 너무 났다. 그래서 나는 대우건설 구장 말고 우리 구장으로 불러서 시합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대우건설은 인원도 많고 구장도 좋았다.

그런데 우리 구장은 엉망이라 불규칙 바운드가 다반사였다. 우리 구장에서 훈련한 우리만 잘할 수 있는 그런 구장이다 보니 우리가 이겼다. 대우건설에서 지고 나서 계속 더 하자는 요청이 왔다. 두 번째는 대우 구장에서 하기로 했는데 대우건설 사람들하고 정상적인 게임을 하려면 우리 구장을 제대로 만들어 줘야 할 수 있다고 제안해 구장도 제대로 만들어 줬다. 새로 만들어진 구장 덕분에 졌어도 잘하고 졌다. 이렇게 야구를 하며 지사장과 아주 친해졌다.

- 깊은 사연으로 들리는데, 지사장과의 인연은 계속 이어오고 있는가.

리비아에서 일한 지 5년쯤 됐을 때 지사장이 한국으로 들어가야 할 거 같다고 했다. 한국에 아버님이 운영하는 중견기업이 있는데 지사장은 차남이라 가업 승계에서 밀려났었다고 한다. 그런데 형이 몸이 안 좋아 물려받을 입장이 안 돼 아버지가 자꾸 들어오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나도 같이 가자고 했다. 5~6개월 후 지사장이 먼저 한국에 들어갔고 7~8개월째에 나에게 들어오라고 연락이 왔다.

그런데 국내에 가면 월급이 적어질 거 같아 고민하고 있는데 걱정하는 게 뭔지 안다며 걱정말고 오라고 하더라. 나는 어차피 내 사업을 할 생각이니 3년만 같이 하겠다 하고 들어갔다. 그러다 6년 동안 지사장과 함께 일했고 7년 차 됐을 때 독립했다. 그런데 내 사업 시작한 지 1년 차에 IMF가 왔다. 중동에서 벌고 회사에서 월급 받아 모은 돈 다 날리고 밥 먹기 위해 시작한 게 레오개발이다.

- 그동안 회사에서 내로라하는 대표적인 공사 업적은 무엇인가?

종합건설사로 꾸준한 성장을 이뤄왔다. 레오건설은 정부에서 발주하는 관급 공사 위주로 도로, 항만, 학교, 군부대 시설 등의 특수건축물 공사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 또 주로 공공공사를 도맡아왔다. 공공공사도 여러 가지가 있다. 우리 같은 곳은 보통 100억 남짓 짜리 공사를 한다. 대형회사들이 할 수 있는 공사가 있고 중소기업이 할 수 있는 공사가 따로 있다. 우리는 100억 이내 걸로 몇 건씩 하고 있다.

- 건설인으로 회장님만이 견지하는 원칙이 있는가.

노하우를 갖춘 기능공을 공사에 투입해 기술시공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현장 상황에 맞는 유동적인 적기시공 및 전천후 시공, 고객과 협력사의 니즈에 맞는 철저하고 하자 없는 품질 시공을 실천해오면서 신뢰를 쌓았다. 동종업계에서 35년간 쌓아온 경험으로 수주, 시공, 조직, 안전관리 등을 직접 컨트롤하고 있다. 우선 매 순간 행복하게 최선을 다해 일하는 게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가 모든 분야에서 발전을 많이 했는데 가장 뒤떨어진 게 건설이다. 중동지방에 나가 일할 때 감독관들은 영국과 프랑스, 중간관리자는 한국, 기능공은 동남아 사람이었다. 그런데 생활하다 보니 영국과 프랑스 관리자들이 한 달 정도 일하고 나면 안 보였다 다시 나타나곤 했다. 휴가를 갔다 온 것이다.

영국, 프랑스 사람들은 한 달 일하고 한 달 휴가를 간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상상이 안 간다. 나중에 알고 보니 민주주의가 발전된 유럽에서는 부부가 한 달 이상을 따로 떨어져 살면 이혼 사유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한 달 일하고 한 달 휴가를 가며 교대로 일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폴란드, 체코 사람들이 일하는데 그 사람들은 6개월마다 한 달씩 휴가를 간다. 한국 사람은 기본적으로 1년 반이 지나 휴가를 간다.

물론 나는 결혼도 안 했고 한국에 가봐야 돈만 쓰게 되니 7년 동안 한 번도 한국에 안 들어왔다. 그 나라 법이 한 번을 연장을 해줘서 1년 6개월(18개월)이 지나면 출국했다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출국 기록을 위해 옆 나라 그리스로 갔다 오기도 했다.

▲ 양공진 회장이 지난 2020년 5월 20일 대한민국 산업대상 시상식에서 수상자 대표로 학생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레오개발 제공

건설현장시스템 변화 절실

- 건설회사가 이직율이 가장 많은 것으로 안다. 건설 현장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타 업계는 한 번 들어가면 평생직장으로 삼으려는 생각들이 있는데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동률이 높다. 그 부분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다. 어떻게 하면 이 사람들이 오랫동안 우리 회사에서 일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잠못이루는 밤이 한두 번 아니다. 우리나라는 갑작스러운 경제발전으로 건설 현장이 시스템을 따라가지 못했다. 잘사는 선진국은 건설 근로자들을 채용하는 방법이 우리와 다르다.

- 선진국과 우리나라가 다르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나.

예를 들어 서울 서초구에 현장이 생기면 관할 구청 인력 담당 부서에 가서 인력 배정을 신청한다. 서초구 어디에 어떤 건물을 지을지 공사 기간은 몇 년인지 필요 인력이 월 단위로 총 몇 명인지를 보고한다. 또 노동자들은 소속된 관할 구청에 일자리 신청을 해놓는다. 구청은 업체에서 공사 보고가 들어오면 언제부터 어떤 일이 있다고 공지하고 노동자들에게 지원을 받는다.

그러면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현장에 투입되니 집에서 걸어 다닐 수도 있고 일하기에도 편리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런 시스템이 전혀 안 돼 있다. 우리나라는 서울 사람이 부산에 가서 일해야 하면 부산으로 간다. 주말 되면 집에 가야 하니 기름값, 숙박비 등 부대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힘들다. 인력을 지역에서 확보해 연결할 수 있는 선진국 시스템이 필요하다.

-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정부 정책의 변화도 필요하다는 의견을 개진하는 것으로 아는데.

요즘은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생활 수준이 높아지다 보니 힘든 일을 안 한다. 힘든 일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한다. 한국 사람들은 아주 편한 일만 하려 한다. 더군다나 노조에 소속되면 더 안 한다. 어차피 내국인을 건설 현장을 못 끌어가면 외국인을 고용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외국인의 소리에 귀 기울여 그 들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

- 그런데 정부는 외국인 고용이 많으면 내국인 일자리가 없어진다며 외국인 노동자의 일자리를 제한하고 있지 않은가.

사람을 구해야 하는 건설 현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외국인을 고용해야 하는데 외국인 고용을 제한하니 결과적으로 국내 근로자보다 외국인 근로자가 돈을 더 많이 벌어간다. 외국인들을 개방 안 하려고 막다 보니 사람이 부족하고 외국인 아니면 일을 안 하니 외국인들은 자기들 몸값을 올려 원하는 만큼의 돈을 안 주면 일을 안한다.

우리 정부 스스로가 이 구조를 만든 거다. 외국인 쿼터제,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임금 가이드라인을 정해 놓으면 되는데 안타깝다. 직접적으로 고용도 하고 외국인 근로자들을 대하는 입장에서 정부의 이 정책이 아쉬운 게 많다. 심각한 문제다. 국토교통부나 기획재정부 사람들과 간담회를 통해 수없이 얘기해 보지만 위에 올라가지도 않는다. 올려봐야 보지도 않는다고 한다. 정부는 고용지표만 보지 이런 내용은 안 본다고 한다. 이런 부분이 너무 아쉽다.

- 건설업 현장에서 잔뼈가 굵었는데 지금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

20년 전만 해도 대한민국 근로자는 어느 나라 사람보다 능률을 배로 내고 일도 많이 하며 부지런했다. 그래서 대한민국 경제도 빠른 속도로 발전했고 해외에서도 힘든 일을 마다치 않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런 성향이 통하니 해외 수주도 많이 했다. 그러다 1990년대 들어서며 너무 갑작스레 생활 수준이 높아지고 모든 부분에 자유도 많아지다 보니 사람들의 성향도 변했다. 힘든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지금 건설 현장에서 50대는 굉장히 젊은 사람들이다. 거의 기능공들은 60대다. 물론 관리직은 젊은 사람도 있긴 하다. 사실 나이 60세가 넘으면 현장에 가서 노동을 안 해도 몸이 쑤시고 아플 나이지만 월요일만 되면 환자들이 그렇게 많이 나온다. 현장에서 멀쩡하게 퇴근한 사람들이 주말에 여가활동 하다 삐끗하거나 다치면 현장에 나올 때까지 조용히 있다가 나와서 나 여기 다쳤으니 산재 처리해달라고 한다. 이런 부분이 어렵다. 젊은 층들이 건설기능공으로 일을 안 하니 어쩔 수 없다.

- 건설현장도 고령화 현상이 짙다는데, 젊은층을 끌어들이는 묘책은 없겠는가.

지금 정부에서 청년수당 등 청년들을 위한 지원을 많이 한다. 나는 건설 현장에서 일자리가 있어도 젊은 사람들이 오지 않는 사정을 피부로 겪으니 차라리 놀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저런 수당을 주지 말고 현장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을 고민하는 정책이 먼저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힘든 일을 하기 싫어 놀고 있는데 수당 주면 그 돈 가지고 쓰고, 현장에 나오면 한 400만 원 벌 수 있는데 아르바이트 가서 100~150만 원 벌면서 거기에 만족해한다. 이러면 안 되지 않을까 싶다. 중요한 건 현장의 기능공들을 양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젊은 층을 현장으로 유입해야 한다.

- 건설이 3D업종이라고 해서 기피현상이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지자체와 정부가 그냥 맹목적으로 지원하지 말고 젊은 친구들이 안 오는 3D업종에 오게끔 정책을 세우면 된다, 나와서 일한 만큼 월급도 받고 정부 지원금을 다시 이런 3D업종에 일하는 젊은 사람들한테 주면 돈도 벌고 지원금도 받게 되니 일거양득 아닌가 싶다. 더 일하고 싶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양성해야 하지 않겠나. 특별히 제도화를 시켜주고 젊은이들이 일을 할 수 있게끔 현장에 들어올 수 있게끔 해야 한다.

- 리비아에서 오랜 세월, 그 이후 한국에서의 건설인으로 삶을 살고 있는데 국내외 근로자들을 평가해준다면.

유럽사람들이 일하는 걸 보면 아침을 먹고 현장에 일하러 갈 때 간식을 가지고 나간다. 간식 시간이 되면 싸 온 음식을 먹고 바로 일한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옹기종기 모여앉아 얘기하며 간식을 먹는다. 유럽 근로자는 일하는 시간만큼은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고 열심히 일만 한다. 대신 정해진 시간이 끝나면 조금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퇴근한다. 반대로 한국 사람들은 이래저래 까먹는 시간이 많다. 일하는 중간에 담배도 한 대 피워야 하고 옆 사람과 수다도 떨어야 하고 그러다 퇴근 시간이 되면 정리할 것도 있고 마무리 못 한 일도 돌아보며 시간을 초과한다. 물론 어느 게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모두 장단점이 있다.

▲ 양공진 회장은 산악인으로서도 유명세를 타고 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초등학교를 오가면서 매일 14Km를 왕복한 유년시절 기억을 떠올리며 오늘의 자신이 존재함을 회고했다. 사진은 지난 2014년 5월 15일 회갑기념 산행지인 히말라야 임자체(6189미터)에 오른 모습이다. 레오개발 제공

‘현장 운영권·자율성’ 소신 변함없어

- 레오개발이 동종업계 경쟁력에서 비교적 우위에 있는 가장 핵심적인 강점은 무엇인가.

시공능력평가액에서 철근콘크리트업종 상위 0.3% 안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는 점이 비교 위위에 있다고 본다. 회사만의 독특한 전문성이 동종업계 성장에도 함께 기여한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다. 회사가 지속가능성이 있으려면 더불어 함께 해야 한다. 최근 3년간 매출이 꾸준히 유지 및 증가해왔다. 이익 잉여금도 계속 증가하는 가운데 무차입 경영 원칙도 지켜나가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이라면 현장에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점이다. 자율성을 바탕으로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해줄 것을 직원들에게 당부해왔기 때문에 종합건설업에 있어서도 폭넓게 업무를 진행할 수 있었다. 현장이 운영권을 가져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자율성을 지켜줬기 때문에 현장 중심의 빠른 의사결정 등 안정된 조직문화가 구축될 수 있었다. 종합건설업에 있어서 앞으로도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 국내외 시장, 특히 건설업에서 ESG경영(환경사회투명경영)은 가장 중요한 핵심중 하나다. 산업현장에서의 안전불감증은 어떤가.

우리나라 건설업계는 체계화되지 않은 상태로 발전되다 지금 조금씩 체계화되어가는 길목이다. 작년에 산업재해가 자주 발생했는데 옛날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부분이다. 예전에는 건설 현장에서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벌점을 줬기 때문에 벌점을 안 받기 위해 산재를 은폐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러다 그게 없어졌다. 이제는 정상적으로 산재보험료를 내고 누구에게나 선재 처리를 해줘도 벌점이 없다.

또 예전에는 업체에서 안전사고,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담당 현장 소장이나 부서 책임자들이 금전적 벌금 혹은 형사적 처벌 등을 받았는데 지금은 대표이사에게로 옮겨졌다. 이런 부분이 안전을 더 신경 쓰게 되고 제도화되는 시발점이 된 것 같다. 우리나라가 가장 발전 못 한 부분이 안전에 대한 불감증, 책임 전가 등 이런 안전 부분이었다. 지금은 대표이사 구속뿐 아니라 실질적인 최대 주주까지 책임지게끔 처벌한다. 아주 잘한 일이다. 근로자 문제나 노조 문제들이 정례화되면 대한민국도 전망이 밝다. 기술력은 우리나라가 이미 최고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것만 지킨다면 미래는 밝다고 본다.

- ESG경영에서 필수적으로 등장하는 게 중대재해처벌이다. 근로자들을 산업재해로부터 보호하는 것과 기업 최고경영자를 압박한다는 상반된 의견이 존재하는데.

사실 우리처럼 작은 회사들은 생각은 하고 있어도 현실로 옮길 수 없는 부분들이 많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매우 동의한다. 내년부터 50인 이하 사업장도 처벌 대상이 된다. 어떤 것을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지 우리도 대비하고 있다. 안전 문제는 모든 것의 사작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나온 처음에는 어떻게 하면 이걸 피해 나갈까를 모든 업체가 고민했다. 지금도 어떤 곳은 직접적인 책임을 안 지려고 안전 CEO를 영입해서 안전 쪽만 담당하게 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최대 주주를 제재하는 답을 찾은 거다.

옛날에는 안전모를 쓰라고 하면 머리 아파 못쓰겠다고 한 적도 있다. 그러다 안전 장비를 100% 갖추지 않으면 일을 안 시키는 시대가 왔다. 근로자들이 내가 안 다치고 일해야 가족도, 현장도 문제없다 생각하고 일해야 하는데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나야 뭐 노동자인데 어떻게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게 문제다.

나는 사용자뿐 아니라 근로자에게도 처벌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위험하거나 어렵다고 생각되는 일이 있으면 일을 멈추고 담당자를 불러 조처를 한 후 일을 하라고 매일 설명하는데도 근로자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근로자들도 잘 따라줘야 한다. 사용자와 근로자 둘 다 안전을 위해 같이 가야 한다.

- 전경련 최고경영자과정 총동문회장으로서 말씀한 사회봉사 경영인 모임으로 만들어 갈 것이라는 포부는 어떻게 보면 회장님 삶의 투영이라고 본다. 바로 기부문화를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봉사철학 내지 생각을 말씀해 달라.

나는 실천도 제대로 못 하고 있다. 우리 초등학교 때 학생 수가 53명이었는데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싸 온 사람이 20명 남짓밖에 안 됐다. 그 20명 중에서도 밥을 싸 온 사람은 10명밖에 안 되고 여름에는 감자, 가을 겨울은 고구마 등을 싸 왔다. 그러면 나머지 도시락을 못 가져온 사람은 그냥 수돗물을 마시거나 돌아다니고 했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왔다. 배고픔을 우리는 자라면서부터 많이 겪었다. 사흘 굶어 도둑질 아니 할 놈 없다는 속담도 있듯이 먹는 게 가장 우선인 게 사람이다. 이런 것을 끊임없이 생각하며 봉사하려고 노력중이다.

▲ 양공진 회장이 아들 대현군과 부인 조정혜씨(사진 오른쪽부터)와 함께 한라산에 올라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레오개발 제공

아너소사이어티 인생은 계속된다

- 지난 2018년 1억 원을 기부하면서 전북 46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인 것으로 알고 있다. 고향 순창 사랑과 후배 양성에 남다른 열정을 보이고 있는데.

친구 초청으로 서울에서 열린 행사장을 한 번 갔는데 아너소사이어티에 관계된 행사였다. 거기서 우연히 책자를 하나 봤다. 후원을 보니 서울 경기도에는 후원을 많이 하는데 전북지역은 후원이 하나도 없었다. 그 책자를 보며 한참 생각했다. 몰랐을 때는 모르지만 후원이라는 게 알고 나니 참 좋은 뜻인 것 같았다. 그러면 서울 중앙보다는 내 고향에 하지 싶었다. 대신 조건부로 줬다. 50%는 전북에 쓰고 50%는 순창에 써야 한다고 했다. 내 고향을 위해 후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 어렸을 때는 주로 초등학교 졸업하면 서울로 올라왔다. 그 당시만 해도 중학교가 의무교육이 아니니 중학교 갈 형편도 안되고 해서 서울로 올라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도 사실 구림초등학교 졸업하고 서울로 와서 야간학교 다니며 생활했다. 순창옥천인재숙(순창옥천장학회)을 알게 돼서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하게 됐다.

- 국내 뿐만 아니라 유엔난민기구와 유니세프를 통한 해외결식아동 구호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더불어 세계인의 참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관심 갖고 있는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준다면.

내가 오지 여행을 많이 다닌다. 내가 자란 환경이 등산을 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7Km를 왕복하니 하루 14Km를 다닌 셈이다. 옛날엔 개울에 징검다리가 있었다. 겨울에는 꽁꽁 얼어 상관없었는데 2~3월 초가 개울을 건너기가 가장 힘들었다. 산에서 얼음이 녹아서 찬물이 흐른다. 아침에 학교 갈 때 고무신 신고 가다 보면 얼마나 차가운지 고무신을 세 번씩 빠트리고 갔다. 그럼 양말은 다 젖어버렸다. 이런 환경 속에서 14Km를 매일 같이 다녔다. 

그런데 네팔 히말라야, 티벳, 인도 등 해외에 나가면 우리 어렸을 때 사는 것보다 환경이 더 열악하다. 그 환경을 직접 눈으로 보다 보니 각종 구호단체에 기부하게 됐다. 일반인들은 5만 원을 매월 기부하면 그 5만 원 중 오롯이 현지에 배달되는 금액은 얼마일까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해외를 가게 되면 짐을 일부러 몇 개를 꾸려서 간다.

현지에 가면 대우받는 게 붙이는 파스다. 맨 처음에는 그걸 모르고 두통약, 소화제를 사서 갔는데 반응이 시큰둥했다. 그들은 먹고살기 바빠 제대로 못 먹어 소화제가 필요 없었다. 또 고산지대다 보니 두통약도 필요 없었다. 파스가 최고였다. 지나가면서 하나씩 건네주면 파스 하나 더 얻으려고 안 가고 내 주변을 맴돌고 서 있었다. 그러면서 우리 아버지는 여기가 아프고 엄마는 어디가 아프다며 계속 떠든다. 하나 더 주면 매우 좋아하며 간다. 양말이나 티셔츠도 하나씩 가져다주면 그들에게는 엄청난 선물이다. 

설동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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