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J 그리고 ‘미디어 악법’

[편집인 레터] 김주언l승인2008.12.18 13:04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에이든 화이트는 백발이 성성하다. 22년째 IFJ(국제기자연맹)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권력의 언론탄압에 맞서 싸우는 세계 곳곳의 현장을 누빈다. 세계 100여국 45만명의 언론인이 가입한 IFJ를 이끌며 기자들의 권익을 대변한다.

영국의 진보적 성향의 일간지 ‘가디언’에서 20여년간 언론인으로 일했다. 나이도 56세에 이르렀지만, 아직도 청년처럼 확고한 신념을 지니고 있다. 그는 ‘YTN 사태’에 대한 예비실사를 마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사태 해결을 위해 해고자 전원 복직과 편집권 독립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이든 화이트의 지적

“노조가 노동조건이 아닌 민주적 언론구조와 절차에 대해 주장하는 것은 이례적이지만, 사측은 노조의 동기를 존중해야지 징계한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가 언론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는 점을 염려한다고도 했다.

IFJ가 이명박 정부의 언론장악 기도에 우려를 나타낸 데 대해 부끄러워해야 한다. 자칫 ‘언론 탄압국’이라는 오명으로 국제적인 웃음거리로 전락할 수도 있다. 1975년 동아일보 기자 대량해직 때 IFJ는 한국의 언론탄압을 비판하는 전문을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냈다.

박 정권은 분노했다. 중앙정보부를 시켜 한국기자협회 회장단 3명을 연행해 조사했다. 지금은 없어진 국가모독죄를 적용하여 구속하겠다고 위협했다. 회장단은 사퇴했다. 철권통치로 인권탄압에 앞장섰던 박정희 정권이었지만, 국제적인 조롱은 참지 못했다.

그러나 33년이 지난 오늘 이명박 정부는 화이트 총장의 제안에 한마디 대꾸도 없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근대화의 아버지’로 추앙하고 있지만, 국제적인 비난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투다. 그만큼 맷집이 좋다는 뜻인가.

이명박 정부의 맷집

아마도 이명박 정부는 앞으로 추진할 ‘7개 미디어법’이 통과된 이후의 국제적 비난에 대한 전초전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 화이트 총장도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7개 미디어법에 우려를 표명했다. 언론자유를 훼손하는 법안이 긴다면, 국제적인 연대활동을 벌이겠다고 다짐했다.

기자회견 전날 언론계 인사들과의 만찬자리에서 화이트 총장은 국가적인 토론을 제안했다. 국민의 기본권인 언론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규제에 대해서는 사회적인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몰아붙인다면 권력에도 불행한 사태를 가져올 뿐이다.

한나라당은 연내에 신문법 및 방송법 개정난 등 7개 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들 법안은 신문과 지상파 방송의 겸영 및 재벌의 지상파 방송 진출을 허용하고 사이버 모욕죄를 신설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자신에 우호적인 ‘조중동 방송’과 ‘재벌방송’을 만들고 인터넷 공간의 비판여론을 잠재우겠다는 것이다.

언론단체와 야권은 언론장악 공동전선을 구축해 ‘몸을 던져서라도 막겠다’고 다짐했다. 언론노조는 ‘미디어 악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즉각 총파업에 들어갔다고 선언했다. 방송협회도 ‘방송의 공영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내용의 입장을 한나라당에 전달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전쟁 모드’를 선언하고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려 한다. ‘미디어 악법’만 통과되면 장기집권은 ‘떼놓은 당상’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

세계 각국은 미디어 정책을 추진할 경우 사전에 국민토론을 거친다. 프랑스는 현재 신문관련법 제정을 앞두고 국민 대토론을 벌이고 있다. 미국도 신문과 방송의 겸영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몇 년이 걸리더라도 여론수렴 절차를 거쳤다.

국제적 조롱 자처할 것인가

미국 FCC(연방통신위원회)는 2003년 1월 신문과 방송의 겸영을 허용하는 ‘오너십 룰’을 공포했다. 시민단체들은 여론다양성을 훼손하는 법안이라며 연방법원에 제소했고 연방 항소법원은 같은 해 이를 무효화시켰다. 설득력있는 논리 없이 법을 개정했기 때문이다.

상원은 이 법안이 시행되면 이를 무효화하는 법안을 만들겠다고 의결했다. 당시 상원의원이었던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도 찬성했다. 하원도 뒤따랐다. 이에 따라 FCC는 수십건의 언론사 소유구조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고 5번이나 전국을 순회하며 청문회를 가졌다. FCC는 5년이 지난 2008년 새로운 법안을 내놓았다. 사회적 합의를 위한 엄청난 노력을 진행한 것이다.

언론정책은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이다. 사회적 합의 절차를 거친 뒤에 신중하게 집행해야 한다. 헌법에 보장돼 있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규제는 위헌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한나라당이 추진하는 미디어 악법은 국회통과 직후 헌법재판소의 위헌심판대로 직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절차도 없이 밀실에서 미디어법을 통과시키려 한다. 언론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수많은 학자와 시민단체의 반박은 귓전으로 흘린다. 그리고 국민과 ‘전쟁’하겠다고 협박한다. ‘MB 미디어 악법’을 통과시켜 ‘YTN 사태’와 같은 국제적 조롱을 자초할 것인가.


김주언 편집인

김주언  

<저작권자 © 시민사회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주언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여백
시민사회신문 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8288 서울특별시 구로구 새말로 93, 신도림태영타운상가2동 B105  |  대표전화 : 02-3143-4161  |  팩스 : 02-6737-1115  |   ingopress@ingopress.com
등록번호 : 서울 다 10706  |  등록일자 : 2013년 8월 26일  |  회장·논설주간 : 강상헌  |  발행·편집인 : 설동본  |  편집국장 : 양병철
후원계좌 : 국민은행 7788-01-04-375819 (시민사회신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설동본
Copyright © 2007 시민사회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