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페미니즘의 두가지 딜레마

이현재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l승인2023.06.03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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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를 위해 혜화역에 모인 여성들, 그들을 휘감고 있었던 것은 공포였다. 혜화역 시위에서 삭발식에 참여한 한 여성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상의 모든 여성이 길을 걸을 때, 화장실을 갈 때 두려움이 없어지길 바랍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8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여성은 남성에 비해 전반적인 사회안전에 대해 더 많은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으며, 특히 범죄 발생에 있어 불안하다고 답한 여성의 비율은 73.3%로 남성과의 차이(12.7%)가 가장 컸다

디지털 성폭력과 자아상실의 공포

왜 여성들은 남성보다 더 많은 공포를 느끼게 되었을까?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며 디지털 성폭력과 같은 신종범죄가 나타난 것도 한 이유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과 한국갤럽의 ‘2019년 성폭력 안전실태조사’에 따르면 신체접촉을 수반한 성폭력 피해는 2016년(11%)보다 2019년(9.6%)에 소폭 줄었지만, 불법촬영 및 불법촬영물 유포와 관련된 피해는 2016년 0.1%에서 2019년 0.4%로 세배 이상 상승했다.

어떤 이들은 아직도 의아해하면서 “디지털 성폭력이 신체적인 폭력도 아닌데 왜 그렇게 두려워하는가?”를 묻곤 하지만 디지털 매체의 특징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이에 대한 답은 쉽게 얻어진다. 오늘날 불법촬영물은 디지털 매체를 통해 다양한 경로로 순식간에 불특정 다수에게 퍼진다. 언제 어디서 찍힐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한몫한다. 선글라스나 펜에 장착되어 쉽게 알아차리기 힘든 소형 카메라처럼 발전된 기술은 내가 인지하기도 전에 내 몸의 이미지를 훔쳐갈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디지털 시대에 여성들이 자신의 ‘몸’과 ‘몸 이미지’를 동일시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여성들은 신체에 대한 물리적 침범이 아니라 신체 이미지에 대한 시선의 침범일지라도 그 행위가 동의 없이 일어나는 경우 신체 자아가 훼손되었다고 느낀다. 이미지로 가득 찬 온라인 세계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디지털 네이티브’들에게는 신체 이미지 역시 자아의 일부이다. 따라서 강간과 마찬가지로 동의 없이 이루어지는 신체 이미지의 촬영, 시청, 유포가 신체적 자아상실의 공포로 이어지는 것이다.

최상의 이슈가 된 안전

디지털 시대, 공포에 사로잡힌 여성들은 ‘안전’을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페미니즘 이슈로 부상시켰다. 국가는 전국 공공화장실의 불법카메라 설치 여부를 주기적으로 점검하기 시작했으며, 국회는 불법동영상의 촬영이나 유포뿐 아니라 소지까지도 범죄로 처벌하는 강력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서울시는 여성안심 택배서비스 정책을 실시했으며, 도시 곳곳에 CCTV를 설치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역시 2019년 양성평등주간 행사에서 혼자 사는 여성들의 ‘평등한 안전권’을 캐치프레이즈로 삼았다. 이렇게 디지털 시대의 페미니즘은 자유와 평등에서 안전으로 그 이슈를 옮겨갔다.

사실 안전은 가부장제가 여성을 가정이라는 영역에 묶어두기 위해 사용했던 주요한 전략이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밤거리는 ‘위험’하고 여성들은 ‘나약’하므로 안전을 위해 일찍 집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논리 안에서 공공장소 및 길거리는 여성에게 위험한 곳이자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곳이며 가정은 남성의 보호가 있는 안전한 곳으로 간주되었다.

이는 딸에게만 엄격한 통금 시각을 적용하는 등 일상적인 문화와 관념 속에서 광범위하게 작동해왔으며, ‘네가 먼저 조심해야 했다’는 식의 피해자 비난이나 ‘여성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는 식의 굴레가 되기도 했다. 이에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에게 족쇄를 채우는 안전과 보호의 논리에 저항하면서 남성과 동등하게 밤거리를 탐험할 권리, 자유롭게 길거리를 활보할 권리 등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디지털 시대에 안전은 여성 스스로 외치는 가장 중요한 이슈로 떠오른 것이다.

‘안전한’ 페미니즘의 두가지 딜레마

안전을 중시하는 이같은 페미니즘의 흐름은 과연 여성들을 해방시킬 것인가? 필자는 한단계 더 도약하는 페미니즘의 흐름을 준비하기 위해 ‘안전한’ 페미니즘이 마주하게 되는 다음의 두가지 딜레마를 충분히 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선, 안전을 외치는 페미니즘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폐쇄된 공간에 가두는 딜레마에 처한다. 가령 혜화역 시위는 시위현장의 출입을 철저하게 관리하는 가운데 참가자들이 화장실을 갈 때도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여러명이 함께 움직였다가 돌아오는 매뉴얼을 제시했다.

부산대 여학생 기숙사에서 성폭력 시도 사건이 발생한 이후 학교와 학생들은 경비인력을 보충하고 출입문이 빨리 닫혀 외부인이 쉽게 출입할 수 없는 ‘스피드게이트’를 설치했다. 숙명여대에 트랜스젠더가 입학하는 것을 반대하는 시위는 ‘소수자성’을 앞세워 여성만을 위한 안전한 공간이 허물어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했다.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고는 하나, 궁극적으로 이는 여성이 스스로를 가두는 결과를 낳는다. 잠재적인 위험성을 최소화하고 타자를 배제하는 폐쇄적 공간 만들기가 결국 자기 자신이 밖으로 나가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지 물어볼 필요가 있다. 여성들이 안전한 내부 공간에 머무는 것이야말로 가부장제가 원했던 방식이 아닌가? 여성들이 안전을 모색할 때 폐쇄적 공간 몇개를 사수하는 방식이 아닌 다른 길은 없는가? 안전에 대한 외침은 우리 모두가 이용하는 공간을 더 안전하게 만드는 일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내가 감지하는 또 다른 딜레마는 디지털 페미니즘이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상상의 정체성’에 집착할 때, 가부장제가 만들어놓은 여성과 남성의 이분법적 구분을 더욱 고착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혜화역 시위는 안전을 명목으로 시위참여 조건을 ‘생물학적 여성’으로 제한했다.

그러나 이러한 이분법적 신체의 구분이야말로 여성을 재생산성, 수동성, 보호의 대상으로 한정시키는 가부장제의 전략이 아니었던가 돌아보아야 한다. 생물학적 남성으로부터 여성이 안전한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페미니즘의 전략이 오히려 여성을 보호라는 명목하에 종속시키고자 했던 가부장제의 이분법적 논리와 같은 궤에 있지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이분법이 지속되는 한 남성은 공포의 대상으로, 즉 여성은 공포에 떨어야 하는 존재로 남게 되는 것은 아닌가?

이현재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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