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값과 책값과 찻삯

책으로 보는 눈 [70] 최종규l승인2008.12.22 13:01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헌책방에서 <현대인의 정신 위생>(익냐스 렙 씀, 성바오로출판사 펴냄, 1970)이라는 조그마한 책을 2천원에 사서 읽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볼일을 마치고 옆지기 부모님이 사는 일산으로 전철을 타고 가는 먼길에서 1/5을 읽어냅니다.

“어린이의 정신적 평형을 보전하자면 육아가 어머니만의 독무대여서는 결코 안 된다. 아버지도 가능하면 처음부터 참여해야 한다. 육아는 남자가 할 일이 아니라 여자가 할 일이라는 좋은 핑계로 자기의 임무를 거부한다면 어머니 혼자서 자녀 교육을 도맡기는 거의 불가능하다”(39쪽)는 대목에 밑줄을 긋고 한참 동안 곱씹으면서, 서양이든 이웃 일본이든 중국이든 또 우리 옛살림이든,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이란 ‘어버이 두 쪽이 모두 힘쓰고 마음쓸’ 일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 않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알면서 몸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무척 드물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아이 키우기에서만 ‘알고도 안 할’까 싶어요.

정치꾼(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시장이든 군수이든 구청장이든 읍장이든)을 뽑을 때에도 참되고 올바른 사람을 뽑아야 하는 줄은 알지만, 막바로 먹고살기 팍팍하다면서 ‘돈 잘 벌게 해 주겠다’는 사람을 뽑고야 맙니다. 먹고살자면 옳든 그르든 가리지 않겠다는 뜻인지, 먹고살기만 할 수 있으면 착하든 나쁘든 아랑곳 않겠다는 넋인지 궁금합니다. 내 배가 고프니 우리 삶터를 더럽히는 1회용품을 마구 쓰더라도 괜찮고, 내 집이 따뜻해야 하니 우리 자연을 무너뜨리면서 끝없이 나무를 베고 석유를 뽑아내어 써도 괜찮다고 여기는 마음결이 되고 마는가 싶습니다. 빨리 가야 하니까 건널목 푸른불이 들어와도 자동차는 부릉부릉 빵빵빵 지나가며 사람들이 못 건너게 합니다. 댈 자리가 없으니까 사람들 걷는 길에 자동차를 올려놓고는 하루 내내 볼일을 봅니다.

곰곰이 따지자면, 삶이 삶답지 못합니다. 생각을 생각답게 키우지 못합니다. 몸을 몸대로 움직이지 못합니다. 말을 말대로 하지 못합니다. 이러는 우리들이라면 책을 책답게 바라보면서 읽을 수 있겠느냐 싶고, 도서관마다 그윽한 아름다움을 알아볼 눈이 없을 뿐 아니라 도서관 나들이를 즐기지 못하겠구나 싶습니다. 도서관을 즐길 줄 모르니, 책 하나 제 주머니를 털어서 장만하는 기쁨을 느끼지 못하겠구나 싶으며, 헌책방에서 조금 값싸게 사들이는 보람과 판이 끊어진 책을 뜻밖에 만나는 신남을 느끼지 못하겠구나 싶어요.

저는 고작 2천원만으로도 고달픈 전철길을 넉넉히 채워 줄 좋은 벗을 만났고, 전철에서 내려 옆지기 부모님 댁으로 가는 길에서도 마음이 푸근해졌습니다. 좋은 느낌은 앞으로도 오래오래 이어지면서 제 몸과 마음을 한결 낫게 감쌀 테지요.

대화역에서 전철을 내립니다. 바로 버스 갈아타고 갈까 하다가 빵집에 들릅니다. 뭐 하나 사들고 가려고 둘러보는데 값싼 작은 빵 하나도 1천원이 넘고, 웬만큼 부피가 되는 빵들은 오륙천 원을 하고, 롤빵은 1만2천원을 합니다. 맛보기 빵을 몇 점 집어먹으며 혀를 내두르다가 작은 마늘바게트와 스폰지빵을 골라 6천원. 인천에서 용산까지, 또 용산에서 일산까지 해서 전철삯 2천700원.


최종규 1인 잡지 <우리 말과 헌책방> 내는 사람

최종규  

<저작권자 © 시민사회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종규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여백
시민사회신문 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8288 서울특별시 구로구 새말로 93, 신도림태영타운상가2동 B105  |  대표전화 : 02-3143-4161  |  팩스 : 02-6737-1115  |   ingopress@ingopress.com
등록번호 : 서울 다 10706  |  등록일자 : 2013년 8월 26일  |  회장·논설주간 : 강상헌  |  발행·편집인 : 설동본  |  편집국장 : 양병철
후원계좌 : 국민은행 7788-01-04-375819 (시민사회신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설동본
Copyright © 2007 시민사회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