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라다 혹은 그리스

색깔있는역사스케치[54] 정창수l승인2008.12.22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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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이름은 무엇인가? 대한민국이다. 그러나 세계인은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잘 모르며 코리아라고 알고 있을 것이다. 중국을 진나라의 이름을 따 ‘차이나’라 부른 것과 유사하게 고려를 따 코리아라 부른데서 기원한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어식 ‘KOREA’를 초기의 유럽식으로 ‘COREA’로 부르자는 운동은 본래의 역사로 접근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니혼'과 '니뽄'의 차이

이처럼 나라마다 부르는 이름과 사용하는 이름이 다른 경우가 많다. 일본은 ‘재팬’이지만 스스로는 일본(日本)이라는 ‘니혼’ 혹은 ‘니뽄’이라고 부른다. 우익적일수록 더 강하게 ‘니뽄’이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일본의 국가대표 선수들의 옷에 니뽄(NIPPON)이라고 쓰여 있는것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본에 해당되는 Japan이라고 하는 영어의 유래에 관해서는 중국의 당나라 시대에 일본에 대해 ‘짓폰’이라고 발음했던 것을 마르코폴로가 여행기 중에서 ‘지팡구’라고 소개했기 때문에 온 세계에 ‘Zippangu’ 혹은 ‘Jipangu’로 되었다는 설이 있다. 아무튼 대체적으로 나라들은 그들이 국내에서 쓰는 국명과 세계적으로 통칭되는 국명을 별 무리없이 혼용해서 쓰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나라 이름자체를 싫어하는 나라들도 있다. 대표적인 나라가 그리스이다. 그리스의 정식국명은 엘리니키 디모크라티아(Elliniki Dimokratia)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엘라다(hellada)라고 부른다. 우리로 보면 ‘한국’이라고 부르는 셈이다. 그리스인 이라는 말도 그리크(Greek) 대신 엘리네스(Hellines, 엘라다에 사는 사람)로 부른다.

고대 그리스인이 그리스를 자칭하는 경우의 이름이 엘라스(Hellas)였는데 이는 그들의 나라가 전설적인 영웅 엘렌(Hellen)이 만든 것이며, 그들은 모두 엘렌의 자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로 치면 단군 정도가 될 것이다. 고대 그리스는 헬라라고 불리웠는데 그래서 그리스문화를 영어발음으로 헬레니즘이라고 한다.

그리스? 그들은 '엘라다'로 부른다

그리스 사람들은 원래 아카이아인이라고 불렀다. 그리스라는 말은 로마인들이 만든 것이다. 로마인들이 식민통치를 하면서 노예라는 의미를 담아 ‘그리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후 터키의 식민통치시절에는 경멸의 의미로 ‘그레코스’라고 불렀다. 전 세계가 그리스라고 부르니 어쩔수 없이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그리스사람으로서는 당연히 거부감이 있다.

그리스는 여러모로 한국과 비슷하다. 같은 반도국인 데다가 오랜 식민지의 경험도 있다. 그래서 식민통치를 한 터키와는 독립 후 수차례 전쟁을 하며 아직도 적대적이다. 굴곡 많은 20세기를 보냈다는 점도 그렇다. 좌파가 중심이 되어 독일에 대항하여 독립운동을 벌였고, 이후에는 우파정권을 옹립하려는 미국에 저항하여 내란이 일어났고 그 와중에 16만명이 학살당하고 수만명이 망명하는 슬픔을 겪었다. 2차대전 후 좌우파의 전쟁 속에서 미국이 지켜낸 두 나라가 그리스와 한국정도이다.

그리고 똑같이 군부정권을 수 십년간 경험하게 된다. 그리스의 대표적인 영화감독으로 꼽히는 코스타 가브라스의 69년작 ‘제트(Z)’는 해외 망명생활을 접고 고국으로 돌아온 제트가 핵미사일의 설치를 반대하는 평화시위 도중 백주 테러로 살해당하는 사건을 그린 작품으로, 국내 영화광들 사이에서 70~80년대 군부독재 치하의 한국 상황을 그리스를 통해 비춰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필수 관람작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리스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한때 정부에 의해 극심한 탄압을 받았던 점도 우리의 과거사와 비슷하다. ‘희랍인 조르바’, ‘페드라’등의 영화음악으로 유명한 작곡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와 20세기 현대음악의 거인인 크세나키스 등 숱한 지식인들이 군부독재에 저항하는 투쟁의 선봉에 섰다가 수차례 투옥과 국외추방, 망명 등을 겪었고, 이들의 작품은 그리스 땅에서 금지당해야만 했다.

2차 대전 이후 한국과 비슷한 궤적

개발경제정책에 의한 난개발과 환경오염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에는 수천년 세월을 이겨내고 당당히 서있는 고대 그리스 문명유적이 매혹적이지만, 아테네 시내 곳곳은 난개발로 파괴되어 흉물스러운 회색빛 건물들과 교통지옥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강력한 기득권층의 존재도 같다. 차이가 있다면 지주냐 아니냐 정도다. 그리스 북부 농촌에는 투르크 지배시대에 기원하는 대토지 소유제가 남아 있으며, 외국자본과 결합한 산업자본가와 선주(船主) 등 소수에게 자본이 집중되어 반실업 또는 잠재실업자의 수가 많다. 따라서 이와 같은 사회적 불안정을 반영하여 정국도 불안정하다는 점이다.

최근 그리스에서 양극화 등 사회문제로 인한 갈등이 크게 일고 있다. 오랜 군부독재기간을 지나고 사회당이 집권했으나 실망을 주고, 신자유주의의 물결에 휩쓸리면서 양극화가 심해졌다.

아는 만큼 느끼는 법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현재의 그리스에 대한 책조차 제대로 된 것이 없다. 고대 그리스에 대한 역사책들만이 즐비할 뿐이다. 그래서 그리스인들이 현실에서 겪는 문제에는 관심이 없고, 오히려 그들의 과거에서 그들보다 더 큰 향수를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다. 그리고 남같지 않은 그리스의 문제가 우리문제가 아닌지도 마찬가지이다.


정창수 역사기고가

정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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