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갈망, 지나친 낙관

[이지상의 사람이사는마을] 이지상l승인2009.01.02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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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과 집착이라는 말은 사전적 정의와는 다소 다르게 “무언가를 바란다”는 의미를 통해서 보면 동종(同種)의 언어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말의 쓰임새 혹은 그것을 품은 사람들의 양태는 전혀 다르지요. 이를테면 새해 이맘때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말이 희망인 반면 한해를 반추해 보는 연말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말이 집착입니다. “희망을 품은 사람이 되세요” 라는 말을 들으면 무척 기분이 좋지만 “당신은 집착이 많군요”라는 말을 들으면 뺨때리고 싶어지구요.

“당신은 집착이 많군요”

일상에서 희망과 집착을 구분해서 살기는 쉽지 않습니다. 분명히 구분점이 있을텐데 그 선이 명확한 사람은 짐작컨대 아무도 없을 겁니다. 말할 수 없이 많았지요. 그들에게 희망인 것이 나에게는 절망이었던 일 말입니다

세액을 감면해서 경기부양 하겠다거나, 국제중, 자립형 사립고 설립해서 교육의 질을 높이겠다는 뻔한 거짓말을 듣는 것도 절망이었지만 굽이굽이 아름다운 강줄기를 시멘트 처발라서 더 아름답게 만들겠다고 하는 일이나 돈 없어 쇠고기 못 먹는 국민들을 불쌍히 여긴다고 값싸고 질 좋은(?) 광우병 쇠고기를 지들 맘대로 수입한 대목에서는 “신이시여! 저들을 벌해 주소서”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지난 1년을 살았습니다.

희망이란 말에는 반드시 공동체의 염원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 합니다. 공동체의 운영방식은 나눔이 될 터이고 그 안의 사람들을 평가하는 잣대는 진정성이 될 것이며 “무엇을 이루었는가 보다는 얼마나 노력 했는가”가 더 중요한 가치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집착이란 말에는 다 자기 혼자 소유해야 할 것들 밖에는 없습니다. 집착의 운영방식은 독점이고 평가 잣대는 효율입니다. 당연히 과정은 무시되고 오직 결과만이 중요한 덕목입니다.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박 터지는 경쟁만이 살길이 되지요.

“사랑도 지나치면 사랑이 아닌 것을 그대 향한 그리움이 집착인줄 모르고…”(이지상 곡 무지개 중)라는 가사를 가진 노래도 있습니다만 집착의 사회를 사는 이들은 치열한 경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몇 푼의 돈을 위해 닭 벼슬 시들어가는 양계장의 닭처럼 죽어라 하고 살지요. 자신의 인생을 성공이라는 허울 좋은 말로 포장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야말로 “돈과 사람의 목숨을 바꾸는 미련한 세상”속에 미련 없이 몸뚱이를 내 던집니다.

언젠간 비도 그칠겁니다

지난 한해 그칠 줄 몰랐던 ‘이엠비’는 올해도 쉽게 그치지는 않을 겁니다. 이 흔치않은 독성비는 온 국민의 식탁을 뒤흔들어 놓았고(미국산 쇠고기 수입) 유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강물에도 뿌려졌으며(4대강 유역 정비사업) 때론 낙하산으로 변신해 공공기관과 공영방송사도 점령했습니다.

수업분위기 좋았던 초등학교 교실을 흔들어놓더니(7인의 교사 해직 파면) 급기야 전 국토의 자본 쟁탈화를 질풍노도처럼 선언해 버렸습니다. 한때 촛불우산을 들고 100만이 이 비 멈추길 기다렸지만 그조차도 간단한 속임수의 언사로 넘겨 버리고 말았지요.

그러나 명장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조감독 출신인 코이즈미 타카시의 영화 ‘비 그치다’(1999)에는 이런 멋진 대사가 나옵니다. “언젠가는 이 비도 그칠겁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비는 그쳤으니까요.”

한 사람을 5년 정도 미워해 본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만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지고 원망이 가득했지요. 아예 인연도 발길도 끊었지만 미워하는 마음이 덜하지는 않았습니다. 술잔을 들이키는 횟수도 많아졌고 그를 비난하는 혼잣말도 스스럼없이 중얼거리게 되었습니다. 나의 감성이 많이 망가져 있다는 사실을 안건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나를 상하게 했던 그의 방식 그대로 나는 그를 미워했던 것입니다.

논어의 <이인>(里仁)편 첫머리에 <이인위미>(里仁爲美)란 유명한 말이 나옵니다. 어짐(仁)에 거하면 아름다워진다는 뜻입니다. 어짐의 개념이 무엇인지는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희망이라는 사실은 뚜렷합니다. 나눔이고 진정성이며 삶의 과정의 소중함입니다. 올 한해도 집착의 방식으로 가는 수많은 도전을 받게 될 것입니다. 같은 방식으로 방어를 하게 된다면 승리하기 어렵겠지요. 설령 승리를 한다 해도 시대의 흐름을 바꾸는 새로운 가치는 만들어내지 못할 겁니다.

별이 많이 뜨는 마을

“사람들이 착하게 사는지 별들이 많이 떴다”라는 도종환 시인의 시 <어떤 마을>에 나오는 구절 하나가 마음을 울립니다. 희망의 방식으로 싸워야겠지요. 그러기 위해서 아름다워지는 투쟁이 필요합니다. 공동체의 가치를 보호하기 위한 두터운 방호벽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으면서도 서로의 소통을 가로막는 집착의 벽을 우리 스스로 허무는 희망의 싸움 말입니다. 요즘과 같은 절망의 시기에 이런 말을 드리면 욕하시겠지요? “적당한 갈망, 지나친 낙관”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 한해 그랬던 것처럼 올 한해의 전망도 그리 밝지는 않습니다. 한나라당이 야심차게 밀어붙이는 미디어 관련 7개 법안을 포함해서 당장 국회에서 처리해야 한다는 80여개의 소위 개혁 법안들이 희망의 덕목과는 너무 멀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지상은=
인종과 신분, 그리고 성과 직업의 차별을 넘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이 절실한 2009년이다. 지난한 세월을 뒤로하고 지금 우리는 성장의 의미와 평화감수성, 그리고 사회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선을 얘기할 때다. 고단한 사람들의 일상에 희망의 언어를 들려주는 뮤지션 이지상 씨가 시대상을 반영한 보편적 진보 의제들을 노래와 함께 <시민사회신문>에 ‘사람이 사는 마을’로 월 2회 세상을 따뜻하게 밝힌다.

이지상 씨는 청년문예운동의 시기를 거쳐 노래마을의 음악감독과 민족음악인 협회 연주분과장을 지냈고 다수의 드라마, 연극, 독립영화 음악을 만들었다. 98년 1집 ‘사람이 사는 마을’ 2000년 2집 ‘내 상한 마음의 무지개’ 2002년 3집 ‘위로하다. 위로받다’ 2006년 4집 ‘기억과 상상’ 등의 앨범을 발표했다. 현재 시노래 운동 ‘나팔꽃’의 동인으로 깊이 있는 메시지를 통해 삶의 좌표를 만들어가는 음악을 지향하고 있으며 성공회대학교에서 ‘노래로 보는 한국사회’를 강의하고 있다. /편집자

이지상 가수·성공회대 외래교수

이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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