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의 패배주의를 넘어

[시론] 조대엽l승인2009.01.12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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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들어 이명박 정권의 일방주의가 국회로 자리를 옮겨 재현되고 있다. 이른바 ‘MB악법’이라고 불리는 주요쟁점법안을 지난 연말까지 일괄처리 하고자 했던 여당의 무리한 시도가 마침내 국회를 폭력과 파괴의 각축장으로 만들고 있다.

정치는 사회통합의 예술이다. 사회통합은 권력의 강제나 폭력을 통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지만 정치를 통한 통합은 훨씬 더 고차원적이다. 말하자면 정치는 행위자 간의 협상과 타협을 통해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사회통합에 이르는 가장 높은 차원의 사회적 행위양식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소통과 합의의 과정이 없는 정치는 더 이상 정치가 아니다. 이 점에서 이명박 정부는 지난 1년에 이어 새해벽두부터 정치의 소멸을 보다 분명히 보여준 셈이다.

우리사회에서 이 같은 정치의 소멸을 이끄는 한 축이 정부와 여당의 일방주의라면, 다른 한축에는 야당과 시민사회의 패배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야당도 문제이지만 오히려 심각한 것은 시민사회의 패배주의다. 특히 그간의 민주화와 정치경제개혁을 주도했던 시민단체들에서 느껴지는 최근의 무력감은 우리사회의 탈정치화를 방임하는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물론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시민사회단체들이 위축된 조건을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10년 간 시민단체들이 비교적 유사한 지향점을 가진 정부와 일종의 파트너십을 가지면서 제도영역의 다양한 후원구조를 가졌던 점을 돌이켜 본다면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맞는 이러한 구조적 단절은 새로운 도전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촛불집회 이후 전개되는 정부의 다각적인 통제는 시민사회단체 활동에 큰 장애가 아닐 수 없다. 나아가 이러한 통제과정에서 드러난 시민단체의 불합리한 운영관행은 시민들을 더욱 멀어지게 하기도 했다.

2008년 한 해 동안 한국의 시민단체는 혹독한 시련을 겪은 셈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시련이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특히 미국 발 세계경제위기는 시민단체를 중첩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시민단체는 훨씬 더 강력한 정치적 압박에 봉착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의 탈정치적 일방주의는 세계경제위기와 맞물려 경제위기 탈출을 명분으로 비정상적으로 강화될 여지가 있는 것이다. 또한 경제위기로 인한 재정적 압박이 이미 시민단체에 예고되어 있다.

정부와의 단절은 물론 그간에 구축되었던 기업의 후원구조 또한 크게 약화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새로운 사회변동이 가져온 욕구의 다양화는 탈조직화된 온라인 공론장을 확대시킴으로써 시민단체와 같은 조직운동의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점에서 시민단체들은 정치적, 재정적, 조직적 위기라는 삼중의 위기구조에 직면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구조가 시민단체의 전망을 전적으로 어둡게 하는 것은 아니다. 첫째, 주지하듯이 세계경제위기는 그간의 신자유주의적 시장화에 대한 강력한 성찰의 메시지를 던짐으로써 공동체와 공공성에 대한 새로운 모색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둘째, 시민단체에 대한 정치적 압박은 시민운동의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다. 셋째, 탈조직적 공론장의 확대는 시민단체의 활동을 위축시키지만 시민사회의 소통을 확장함으로써 보다 근본적인 의미에서 시민사회의 정치화를 자극한다.

시민단체는 ‘운동’과 ‘제도’의 요소를 동시에 갖고 있다. 적어도 현실의 위기구조는 시민단체의 운동적 요소를 확장시키는 기회구조로 작동할 수 있는 여지가 큰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기회구조는 일종의 조건일 뿐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시민단체 스스로의 새로운 출발이다.

참으로 ‘새로워져야’ 한다. 시민단체는 지난 10여 년 간 얻었던 기득의 것들을 버리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버려야 새로운 것을 얻으며 비워야 새로운 것이 채워지는 법이다. 무엇보다도 현실의 패배주의는 시민단체에 고착된 선도주의와 우월주의의 강박에서 벗어나는 데서 극복될 수 있다.

시민단체가 먼저 치고 나가야 하고, 무엇인가를 주도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일이야말로 시민단체의 새로운 귀환을 위한 첫걸음이다. 시민운동이 새로운 주기를 맞고 있는 현실은 어쩌면 시민단체의 가장 어려운 변신이 요구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여전히 시민단체와 시민운동은 정치의 복원을 위한 우리사회의 희망이다.


조대엽 고려대 교수, 사회학

조대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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