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세상이 무섭다

[강상헌 칼럼] 강상헌l승인2009.01.16 19:23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두려워서 존경하는 것처럼 치사한 것은 없다.’(Nothing is more despicable than respect based on fear)

부조리라는 화두 하나 들고 문학과 철학의 경계를 넘나들던 프랑스 작가 알베르 까뮈(1913~1960)의 냉소 섞인 경구다. 미네르바 사태로 황량해진 새해의 들머리에서 떠올린 말이다.

두려우면 존경하라?

미네르바로 추정되는 인물에 구속영장을 발부한 법원의 ‘권위’를 시비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내 생각을 말하자면, 검찰은 씨익 한번 웃고 넘겼어야 제격이었다. 나라가 흔들렸단다. 그렇게 허접하고 유약한 나라던가? 누가 고안해낸 ‘혐의’인가?

30대 실업자, 전문대 졸, 경제학 강의 수강이나 외국경험 없음 따위를 나열한 보도는 온통 비웃음 일색이었다. ‘실업자라 다행’이라고 안도했겠지. 그러면서 화풀이로 힐난(詰難) 폭격! 그를 평가한 교수나 시민운동 인사들에게도 발사 일발! 소가 웃을 일이라고? 정말 소가 웃을 일이군.

만약 미네르바가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로 월스트리트를 주름 잡던 인물이었다면 어떤 풍경이었을까? 미네르바가 짝퉁이란 소린 또 뭣고?

그러고 보니 그들 모두 심한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서푼짜리 엘리트들에 불과했다는 느낌도 든다. 미네르바가 현란한 ‘예언자적 학설’을 뿜어내 관심과 질시의 대상이 되고 있을 때(지금도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많지만)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결국 제 잘못 덮어씌우기?

10년 전 외환위기 사태 때도 그랬다. ‘그래도 펀더멘털(기본)만은 튼튼하다’던 당국자 장담만 베껴 썼던 언론 아니던가? 그 때 지금처럼 미네르바 씨 또는 미네르바 씨들이라도 있었다면 IMF의 그 상처는 훨씬 덜했겠지.

미네르바 때문에 ‘외환 방어’하느라 나라가 큰돈을 썼단다. 그렇다면 미네르바 덕분에 ‘국민’들이 미리 제 앞가림을 하여 손해를 피한 부분은 없을까? 나라가 하는 일이 도대체 뭔가? 안개 속에 뭐든지 감춰두니 그런 일이 생긴 것 아닌가? 제 잘못 덮어씌우기? 미네르바, 너 잘 만났다, 그거지?

‘오프 더 레코드’의 장막 뒤에서 기자들은 침묵했다. 미네르바는 ‘보도’했고 구속됐다. 공문 보낸 게 아니니 사실이 아니라고? 국민을 아예 바보 취급하기로 작정했나? 그나마 한겨레가 그걸 공개했다.

공무원인 한 친구는 “따지면 피해는 니 몫이야, 왜 그리 철이 없어? 그냥 죽어지내”한다. 그랬다. 박정희 전두환 때 우리는 그 공포를 다반사(茶飯事)로 여겼다. 아버지들은 딸 아들에게 ‘정의’에 관해 눈을 감으라고 가르쳤다. 세상이 그렇다고 했지.

지난 일이라고 생각했다. 웬걸, 공포로부터 또 자유롭지 못한 ‘지금의 우리’라니? 그 때 육성(?)된 눈치학 박사들이 이젠 며느리 잡는 더 혹독한 시어머니 행세인가? 필자는 철이 없다. 그렇다. 앞으로도 철없이 살고 싶다. 가능할까?

사실 무섭다. 권력이 나를 잡아갈까, 때릴까 무섭다. 부조리에 대한 항변 대신 ‘무언의 존경’을 택한다. 당당하자며 목청 돋우던 아침의 기개는 허공에 매달린 해그름판의 흰 손수건일 뿐. 우리 민초들, 이제 딸 아들에게 무어라 가르칠까? 이제 여론은 ‘권력의 구호를 해석한 것’으로 뜻이 변한다. KBS도 벌써 많이 수상하다. ‘땡이방송’이란다.

쾌도는 힘이 세다?

과거 권위주의 독재체제 공포정치의 틀에 맞춰진 기득권 인사의 사고 구조는 이견(異見)과 토론이 싫다. 난마(亂麻) 두 동강 낼 쾌도(快刀)만이 방법이다. 존경을 강요한다.

쾌도는 힘이 세다. 그래서 하릴없이 존경한다. 아첨 아니면 ‘두려워서 존경하는 것’일 터다. 둘 다 치사하다. 비루하다. 비열하다. 세상이 다 변했는데, 이제 쾌도는 없다. 소통(疏通)이 방법이다. 쾌도를 그들은 소통이라 우긴다.

미네르바가 엉터리라고? 완전한 현인(賢人) 아니면 이제 말도 못한다. 누구나 서툰 얘기, 틀린 얘기 할 자유는 있다. 또 자신만의 ‘지상 과제’라고 생각하는 바를 주장할 용기가 필요하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소리쳐 외칠 갈대밭도 소중하다.

그래서 민주주의다. 나라건, 언론이건, 법원이건 시민의 이런 욕구를 ‘존경’해야 한다. 제발 연탄재 차지 마라!

또 하나, 전문대 졸 실업자는 ‘영리한 소리’일랑 아예 하지 말라고? 명문대 출신 한다 하는 인사들 향해 ‘주제 모르고 떠든 죄’ 말하자면 괘씸죄, 이게 진짜 죄목 아닌가? 각자 주제 파악하고 생각도 말도 글도 알아서 몸소 조심할 것, 지식인이나 선비들은 더 조심.

두려우면 존경하라. 미네르바가 잡혀갔다.


강상헌 논설위원

강상헌  

<저작권자 © 시민사회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강상헌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여백
시민사회신문 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8288 서울특별시 구로구 새말로 93, 신도림태영타운상가2동 B105  |  대표전화 : 02-3143-4161  |  팩스 : 02-6737-1115  |   ingopress@ingopress.com
등록번호 : 서울 다 10706  |  등록일자 : 2013년 8월 26일  |  회장·논설주간 : 강상헌  |  발행·편집인 : 설동본  |  편집국장 : 양병철
후원계좌 : 국민은행 7788-01-04-375819 (시민사회신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설동본
Copyright © 2007 시민사회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