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기재부 초래할 공급망기본법안, 다시 점검해야

참여연대l승인2023.09.26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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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조원 금융 프로그램 시행 중에 한도·범위 불분명한 기금 조성

기재부에 수십조 원에 달하는 기금의 자의적인 운영 권한 넘겨
여러 실책에도 주요 산업 분야의 컨트롤 타워 자임하는 기재부

지난 8월 24일 「경제안보를 위한 공급망 안정화 지원 기본법안」(이하 ‘공급망기본법안’) 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를 통과했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로 류성걸 의원이 대표발의한 공급망기본법안은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수출입은행(이하 ‘수은’)이 운용하는 기금을 마련하고 관련 사항을 심의·조정하기 위한 기획재정부 장관 산하 공급망 안정화 위원회 설치를 골자로 한다.

하지만 공급망기본법안의 핵심은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가 공급망 안정화라는 명분으로 수십조 원에 달하는 자금의 집행력을 갖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공급망안정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여서 입법 취지와 다르게 기재부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주머니를 하나 만들어 주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도 크다. 현재 세수결손이 심각하고 긴축재정 기조로 인해 더 이상 기업을 지원할 수 있는 재정적 수단이 여의찮은 상황, 그리고 현 정부가 대기업 편향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공급망안전화 기금 조성의 목적은 윤석열 정부가 경제안보라는 명분으로 재벌대기업 등에 맞춤형 금융을 지원하기 위함은 아닌지 의심된다.

이러한 숨은 의도가 없다 할지라도 재정건전성을 내세우며 긴축재정을 펼치느라 민생, 복지 축소를 불사해 온 정부가 유독 공급망 안정화를 명분으로 대규모 자금을 조성하려는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우려가 크다. 특히, 감세에 더해 기업들을 위한 추가적 대출선으로 활용할 수 있는, 그것도 기재부 입맛에 맞게 쓸 수 있는 대규모 자금을 조성하는 것은 조세재정정책이 과도하게 기업 일변도로 운용되게 만든다는 점에서 매우 불공정하다.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는 정부가 긴축재정 기조하에 민생이 처한 어려움은 외면하면서도 재벌대기업에 대해서는 막대한 지원을 하고, 그 권한을 기재부가 갖도록 하는 공급방기본법안이 이대로 처리되는 것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한다.

윤석열 정부는 공급망기본법안 등을 통해 기업들이 안정적 공급망을 원활하게 확보하고 관련 산업이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법안에 따르면, 공급망 위험 관리를 위한 국가 컨트롤 타워인 ‘공급망안정화위원회’를 설치하고 기재부의 총괄·조정 하에 수은이 기금의 부담으로 ‘공급망안정화기금채권’을 발행하면 정부가 보증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정부는 미국, 일본, EU 등도 공급망 관련 법‧전담조직을 신설하고 공급망 안정 및 대외의존도 감소 대책을 적극 추진 중이라며 우리 정부도 국가 차원의 공급망 관리체계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물론 2021년 요소수 사태 등을 감안하면, 대안 마련 필요성에는 공감하나 문제는 그 방식이다.

지난 8월 말 수은은 ‘공급망 안정화 금융 프로그램’ 확대·개편을 통해 9월부터 2025년까지 65조 원의 금융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이렇듯 이미 공급망 관련 기업들에 대한 지원을 수은에서 하고 있는데, 공급망 기금을 만들어 지원할 경우 중복 우려가 발생한다. 뿐만 아니라, 사실상 기재부가 타 부처의 업무에 관여하게 되면서 공룡 기재부가 되는 문제도 있다. 윤석열 정부가 재추진 의사를 밝힌 바 있는 「서비스산업발전 기본법안」 등과 같이 기재부가 모든 주요 산업 분야에 컨트롤 타워를 자임하는 것이 책임감을 넘어 자기 영향력이나 자리를 늘리기 위함은 아닌지 의심된다.

현재 미국, 일본, EU 등 각국은 공급망 우위 기술을 전략 무기화하고 수출 통제하는 등 자국 우선주의 전략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코로나19 팬더믹과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등은 실제 공급망 전반에 걸친 리스크를 현실화했다. 앞으로도 이러한 불안요소가 확대될 우려가 크다는 점에 동의하나,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공급망기본법안의 내용이 이러한 목적에 부합할지, 또는 숨은 의도는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 우선, ‘공급망안정화기금’은 정부보증채를 활용하기 때문에 「국가재정법」상 규율을 받지 않고, 국가부채에 포함되지 않으며 한도가 없다. 수은채 발행은 현재 연간 5조 원 규모를 예정한다지만, 그 한도를 명시하지 않아 수은과 기재부의 자금 집행력이 커질 수 있다.

지원대상인 ‘경제안보품목’, ‘공급망선도사업자’의 범위도 불분명하다. ‘공급망선도사업자’은 사업자의 신청에 따라 중앙행정기관의 장이 지정하고 ‘경제안보품목’은 중앙행정기관의 장이 지정하는데 그 구체적인 품목을 법에 명확히 기재해 놓지 않은 채, 기재부 장관이 지정을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기재부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공급망안정위원회’를 통해 기재부가 범부처 통활권을 행사하여 그 영향력이 막대해진다는 점이다. 공급망기본법안이 기재부가 수십조 원 자금의 집행력을 갖게 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아직 공급망기본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되지 않았다. ‘국민의 생활에 필수 불가결하거나 국민경제의 안정적 운영에 필수적인 물자, 원재료 등, 서비스 또는 기반시설’이라는 광범위한 품목이나 서비스를 지정하여 지원하는 자금을 기재부 마음대로 쓰게 하자는 법안이 이대로 국회를 통과해서는 안 된다. 국회는 여러 우려와 부작용이 제기되는 공급망안정화법안 처리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각종 국내외 요인에 따라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공급망 위험을 예방하고 공급망 교란이 발생할 경우 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역대급 세수결손으로 인해 정부 재정 운용에 적신호가 켜진 지 오래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는 민생안정과 복지확대를 위한 수단을 강구하기보다는 기업 지원을 위한 각종 우회적인 수단을 마련하는 데 급급하다. 게다가 각종 기금의 통폐합 등 기금의 정리가 필요한 시기에 새로운 기금을 설치하는 것이 적절한지도 의문이다. 특히 세수예측 실패, 대규모 세수결손 발생, 외평기금 재원의 편법 사용 등의 문제로 인해 국가재정운용 주체로서 능력에 강한 의문이 제기된 기재부에 또다시 상당한 규모의 기금을 맡기는 것이 적절한지도 따져 보아야 한다. 그러한 기금을 설치하기 전에 기재부가 세수 예측, 예산 등 국가재정운용능력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부터 국민들 앞에 증명하는 것이 우선이다.

(2023년 9월 26일)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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