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고통스러운 것이다

철학여행까페[58]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l승인2009.01.19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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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살 먹은 부유한 집안의 소년이 프랑스 남쪽의 항구도시 툴롱으로 놀러 갔다가 노예선의 노예들이 사슬에 묶인 채 선창에 앉아 있는 비참한 광경을 우연히 목격한다. 그 소년은 1804년 4월 8일의 여행일지에 그 날의 충격적인 인상을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병기 공장 안에는 노예선의 노예들이 아주 힘겨운 노동을 하고 있었고, 이 광경은 이방인들의 주의를 몹시 끄는 것이었다… 이러한 불행한 노예들의 운명은 마치 사형선고를 받은 것보다 훨씬 참혹하게 여겨진다.”

이 날 소년이 받았던 충격은 비교하자면, 소년 싯다르타가 왕궁을 나와 생노병사의 현상을 보고 충격을 받은 것 같은 것이다. 싯다르타가 인간이 겪게 되는 생노병사에 대해 고뇌했듯이 이 소년도 인간은 노예선의 노예와 같이 혼자이며 육체와 그로 인한 병, 고통과 죽음에 묶여 있다고 생각했다.

이 소년은 이보다 몇 년 전에 함께 놀던 친한 소꿉동무의 죽음도 이미 겪었다. 친구의 죽음은 그가 늙은 뒤에도 꿈속에서 자주 나타나 그를 짓누르는 사건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인간이 겪게 되는 운명에 대해 고뇌했던 이 소년은 싯다르타처럼 출가해 부처가 되지 않았지만 나중에 유명한 철학자가 되었다. 이 소년의 이름은 아르투르 쇼펜하우어였다. 쇼펜하우어 자신도 나중에 청소년기에 겪었던 이러한 경험을 부처의 경험과 비교하기도 했다.

이동희
소년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의 세계관 성립 과정


“17년의 생애 동안 …나는 부처가 그의 소년 시절에 이미 병, 늙음, 고통, 죽음을 직시한 것처럼 삶의 비통함을 이해했다.”

이렇게 어린 시절부터 예민하게 싯다르타처럼 인생에 대해 심각한 고뇌를 하던 쇼펜하우어는 성향이 맞지 않게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상인 수업을 받으며 자랐다. 쇼펜하우어는 유한 상인 하인리히 플로리스 쇼펜하우어와 나중에 소설, 수필, 기행문 등을 써서 유명해진 요하나의 아들로 1782년에 오늘날 폴란드에 있는 단치히에서 태어났다. 1793년 단치히가 프로이센 지배 아래로 들어가자 그는 가족을 따라 함부르크 자유도시로 이주했다.

아버지 쇼펜하우어는 아들에게 상인교육을 받게 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에게 김나지움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아버지는 김나지움 교육보다 상인교육이 더 효과적이라고 보고 11살짜리 아들에게 교양을 위한 수년간의 유럽여행을 시켜주겠다고 제안했다. 어린 쇼펜하우어는 그 제안에 따라 아버지와 함께 유럽을 다녔다.

이동희
청년기의 쇼펜하우어
그는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함부르크의 상인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그는 상인이 되는 것을 싫어했다. 1805년 4월 아버지가 갑자기 죽자 그의 삶은 결정적인 변화를 맞았다. 그는 이제 아버지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점은 어머니와 누이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는 문화계 인사들이 모여 있는 바이마르로 이사했다. 어머니는 그곳에서 시인 J. W. 폰 괴테와 독일의 볼테르라 불리는 크리스토프 마르틴 빌란트의 사교 모임에 들어갔다.

어머니는 이미 그곳에서 성공한 여류작가로서 사교 모임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쇼펜하우어는 1년 남짓 함부르크에 남아 앞으로 무엇을 할지를 고민하다가 1807년 5월 함부르크를 떠났다. 바이마르에 머무는 동안 그는 어머니와 자주 충돌했다. 함부르크에 있을 때부터 그는 어머니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선량한 나의 아버지가 쇠약해져 가련하게 병상에 누워 있을 때, 어느 늙은 하인이 애정 어린 의무를 그에게 다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매우 쓸쓸했을 것이다. 아버지가 고독감 속에서 나날을 보내는 동안 어머니는 파티를 열었고, 아버지가 쓰디쓴 고통에 시달리는 동안 어머니는 즐기기만 했다.”

이동희
노년기의 쇼펜하우어
여성비하인식의 배경


쇼펜하우어는 어머니를 경멸했다. 어머니는 아들의 비상한 특징들을 감지했지만 아들의 비뚤어진 성품을 한탄했다. 어쩌면 어머니와의 좋지 않은 관계가 쇼펜하우어로 하여금 여성에 대해 혐오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쇼펜하우어는 여성들을 이렇게 비하한다.

“성적 충동으로 이성이 흐려진 남자들만이 키가 작고 어깨가 좁으며 엉덩이가 크고 다리가 짧은 이 여자라는 존재를 아름답다고 한다. 당연히 여자라는 족속은 속된 존재라고 불러야 한다. 여자들은 음악에 대해서도, 시에 대해서도, 조형 미술에 대해서도 아무런 참된 감정이나 이해력이 없다.”

결국 쇼펜하우어는 1814년에 사교적인 어머니의 생활방식을 못 견디고 헤어져 살게 된다. 그는 어머니와 결별하기 전 1813년에 <충족이유율의 네 가지 근거>라는 제목의 박사학위논문을 완성하여 예나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어머니는 아들의 박사학위논문을 종이만 버렸다는 듯이 폄하했지만 괴테는 이 학위논문을 높이 평가했다.

1813~1814년 동안 쇼펜하우어는 바이마르에서 지내면서 어머니를 통해 알게 된 괴테와 여러 가지 철학적 주제를 놓고 토론했다. 그는 괴테의 영향을 받아 아이작 뉴턴에 반대하고 괴테를 지지하는 논문 〈시각과 색에 관하여〉(1816)를 완성했다. 같은 시기에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의 제자인 동양학자 프리드리히 마이어는 그에게 고대 인도의 가르침들인 베단타 철학과 베다의 신비주의에 관해 알려주었다. 뒷날 쇼펜하우어는 베다 경전인 우파니샤드와 플라톤 및 칸트의 철학을 자신의 철학의 중요한 기초로 삼았다.

이동희
쇼펜하우어의 어머니와 누이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주저가 되는 책인〈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1819)를 저술했다. 그는 장기간의 이탈리아여행을 마치고 신생 베를린 대학에서 교수생활을 하고자 하였다. 그는 당시 베를린 대학의 대철학자 헤겔과 대결하고자 하였다.

그는 자신의 강의 시간을 헤겔의 강의시간과 똑같이 잡았다. 헤겔의 강의시간에는 점점 더 많은 수강생들로 넘쳐 났지만, 쇼펜하우어의 강의에는 학생들을 찾기 어려웠다. 그는 헤겔의 철학에 대해 “절대적으로 허풍스런 헛소리에 불과한 철학”, “사이비 지혜”이며 “정신병자의 수다”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그렇게 독설을 퍼부었지만 헤겔 철학의 영향력은 줄지 않고 점점 더 커져만 갔다.

헤겔과 대결하려 했지만

그 반면에 그가 학계에 엄청난 충격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의 주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거의 팔리지 않았다. 1년 반이 지나는 동안 책 100권만 팔리고 나머지는 파기해야 했다. 게다가 쇼펜하우어는 이 책 때문에 커다란 상업적 손해를 감수해야 했던 출판업자와 인세 때문에 사이가 틀어져 버렸다. 그의 주저는 철학의 새로운 전환을 알리는 주요한 작품이지만 그렇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결국 그는 교수직을 포기하고 재야의 철학자로 남는다.

그는 앞으로 교수들이나 학자들에게 굽실 거리기 위해 글을 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독하게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할 말을 다하는 글을 쓸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을 이해하는 미래의 독자들을 위해 글을 쓰고자 다짐했다. 그는 자신의 주저가 거의 팔리지 않았지만 자신의 주저가 철학 체계의 전환점이 되는 글이라는 것을 확신하였다. 1818년에 그는 출판사 편집자 브록하우스에게 다음과 같이 글을 쓴다.

“나의 작품은 새로운 철학체계이다. 말 그대로 완전한 의미에서의 새로운 것이다. 이것은 단지 기존에 있던 것에 대한 새로운 서술이 아니라, 지금까지 그 어떤 사람의 두뇌에서도 나온 적이 없는 최고 수준으로 서로 결합한 사상의 배열이다.”

쇼펜하우어는 1818년에 소네트를 써서 자신의 철학이 가져 올 미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오랜 겨울밤은 끝나려 하지 않는다/제발 겨울밤이 끝나고, 햇빛이 머물 수 있다면/폭풍이 올빼미와 함께 경쟁하듯 울고/허물어진 벽 가에서 무기들이 철그렁 거린다/무덤이 열리며 자신들의 유령들을 보내다/이들은 내게로 와 원을 돌려고 하고/내 영혼은 치유될 수 없음에 깜짝 놀란다/그러나 나는 이것에 시선을 돌리지 않겠다.

낮, 낮을 나는 크게 알리고자 한다!/밤과 유령들은 한낮 앞에 달아날 것이다/이미 새벽 별은 낮을 알린다/곧 밝아질 것이다. 아주 깊은 근원으로부터!/세상은 광채와 색으로 덮일 것이다/깊은 푸르름이 무한하게 먼 곳까지”

여기서 겨울밤, 무덤으로부터 나온 유령은 쇼펜하우어 이전의 철학자들을 은유한다. 새벽별은 쇼펜하우어 자신의 철학이다. 그런데 그 새벽별은 어떠한 광채와 빛을 발휘하고 있는 걸까?<다음 호에 계속>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구스타프 슈바브 그리스로마신화\' 역자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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