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팍한 프랑크푸르트의 부처, 쇼펜하우어

철학여행까페[59]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l승인2009.01.29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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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별’로서 ‘유령들’을 몰아내고 ‘낮’을 알리고자 했던 쇼펜하우어의 염원은 곧바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의 철학은 기존의 학계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헤겔철학이 지배하던 철학계에서 그의 철학은 비주류였다. 기존의 학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남의 말을 듣지 않고 고집스럽게 자신만의 철학을 추구했던 그의 성격도 기존 학계와 맞지 않았다.

그러나 쇼펜하우어는 기존의 주류 학계가 보지 못한 새롭게도 깊은 차원의 철학을 보여준다. 그가 헤겔을 ‘정신병자’ 로, 그의 철학을 ‘허풍’이라고 비난할 때, 근거없이 그냥 퍼붓는 욕은 아니었다.

이동희
쇼펜하우어와 칸트
이성을 움직이는 것은 무엇?

철저하게 합리주의와 이성주의를 신봉했던 헤겔철학을 쇼펜하우어는 못마땅해 했다. 그는 헤겔과 달리 인간의 본질을 사유, 의식, 이성에서 찾지 않는다. 인간의 이성을 움직이는 것은 의지이다. 의식은 우리의 본질을 싸고 있는 표피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우리는 우리들 자신의 신비로운 내면 세계 속에 바로 자기 자신을 움직이는 ‘의지’가 우리의 지력(이성 및 판단력)을 발동시키고 있다는데 주목해야 한다. 의지란 마치 시력을 제대로 갖추고 있으나 몸은 불구자인 사람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체력이 강한 맹인과 같다. 외관상으로 인간은 마치 앞에서 자기를 이끌어 나가는 힘에 의존하고 있는 듯이 보일 수도 있으나, 실제로는 오히려 뒤에서 자기를 밀어주는 어떤 힘에 의존하고 있다.”

이 ‘힘’인 의지는 삶의 맹목적 의지이다. 이 삶의 맹목적 의지를 쇼펜하우어는 칸트의 물자체로 설명한다. 쇼펜하우어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칸트를 따라 ‘세계는 나의 표상’이라고 말한다.

나의 표상이라는 의미는 사물 그 자체가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나의 표상만이 인식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돌에 대한 인식은 돌에 대한 나의 표상에 대한 인식이다.

그렇다면 사물 그 자체는 알 수 없는 것인가? 칸트는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쇼펜하우어는 칸트가 알 수 없다고 했던 세계의 내적 본질인 물자체의 세계를 탐구하고자 한다.

이 세계의 내적 본질은 주체의 자기 체험에서 들어 난다. 쇼펜하우어에 의하면, 우리는 육체를 완전히 다른 두 가지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다. 그것은 객체(표상)와 의지로서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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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쇼펜하우어
의학처럼 육체의 행태와 기능들을 외부에서 관찰하고 기록함으로써 우리는 객체와 표상으로서 육체를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육체를 욕구를 통해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배고픔, 목마름, 성적 욕구와 아픔 속에서 의지는 자신을 우리에게 알린다. 이러한 의지가 신체적 표현으로 객관화되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나의 의지로부터 유추해서 다른 사람의 의지를 추론할 수 있다고 본다.

이렇게 할 때 모든 것들을 의지라고 하는 하나의 유일한 원초적 힘으로 환원시키는 보편적 힘과 만나게 된다고 말한다. 쇼펜하우어는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서 경험할 수 있는 개별적 의지와 유사하게 이 보편적 힘을 ‘의지’(Wille)라고 명명한다. 막스 클링거(1898~1909)는 진정한 사물의 근거로서 삶의 의지와 자연을 그림 아래에 누워있는 여인의 모습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의지는 자연의 가장 낮은 단계에서는 물리적, 화학적인 힘으로 나타나며 유기체의 단계에서는 생명 충동, 자기 보존 충동, 성 충동 등으로 나타난다. 끝으로 인간에게는 스스로 무의식적인 의지가 자신의 도구로서 이성을 출현시킨다.

의지가 세계를 지배한다

쇼펜하우어가 볼 때 이성이 세계와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가 지배한다.‘의지’가 어떤 것인지 알아야 세계와 삶에 대한 해법도 나온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성으로 세계와 인간을 설명하려 했던 헤겔철학은 사이비 철학이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의지는 만족과 성취를 끊임없이 추구한다. 그러나 의지는 쉽사리 만족되지 않는다. 여기서 고통이 생겨난다. 왜냐하면 인간의 의지는 무한하고 그것이 충족되는 데에는 많은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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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사유상
설령 충족된다 하더라도 곧 다시 새로운 욕망이 나타난다. 계속해서 욕구가 충족되면 인간은 또 권태를 느낀다. 그렇기에 의지의 지배를 받는 인간의 삶은 그야말로 고통이며, 쾌락이나 행복은 다만 소극적인 것, 즉 고통의 부재에 불과할 뿐이다. 의지가 인간에게 얼마나 불가항력적으로 그리고 교묘하게 작용하는지 쇼펜하우어는 성애의 형이상학을 통해 설명한다.

“생의 의지는 이성(異性)의 두 개인을 불가항력적 힘에 의하여 끌어당기게 하는 힘이다. 정욕은 원래 종의 보존을 위해 가치가 있다. 종의 보존이라는 목적이 실현되고 나면 정욕은 일종의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자연은 그 목적 실현의 가장 중요한 예술품인 여성미도 생식활동이 끝나고 나면 곧 사라지게 한다. 그리고 개인은 자기가 종의 의지에 속았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쇼펜하우어가 볼 때 인생은 괴로움 그 자체이다. 이러한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려면 의지의 지배로부터 탈출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의지로부터 어떻게 탈출할 수 있는가? 의지의 예속에서 벗어나는 때는 음악과 같은 예술을 감상할 때이다. 그러나 그것은 짧은 휴식이자 위안에 지나지 않는다. 삶의 고뇌를 벗어나는 길은 의지를 ‘부정’하는 길이다.

쇼펜하우어는 의지를 부정하기 위해 힌두교와 불교와 같은 해결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의지의 발동을 막기 위한 금욕이다. 금욕의 목적은 의지에서 완전히 벗어난 무아경, 황홀경, 신으로의 자아의 승화이다.

“우리들 자신의 욕구와 속박을 벗어나 세상을 극복한 거기로 눈길을 돌리면… 거기에는 어쩔 수 없는 충동과 욕정 대신에… 또한 일상적인 의욕을 안고 살아가는 인간의 생활영역을 이루고 있는, 충족되는 일도 없고 사라지는 일도 없는 대신에 평화가 나타난다. 그것은 모든 이성보다도 고귀한 평화다. 망망대해와 같은 심정의 고요다. 그 깊은 안식은 라파엘과 코레지오가 묘사한 얼굴의 하얀 광채처럼 부동의 신념이요, 명랑함이며 온전하고 확실한 복음이다."

이동희
불교의 세계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보면 힌두교와 불교에 가깝다는 느낌을 준다. 실제로 그는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의 제자인 동양학자 프리드리히 마이어에게 인도철학을 배웠다. 훗날 쇼펜하우어 자신도 자신의 생각을 플라톤의 철학, 칸트의 철학과 고대 인도의 우파니샤드라는 세 가지 철학의 원천으로부터 창조했다고 말했다.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철학을 다시 다듬어 1844년〈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의 재판을 냈지만 그가 부르는 ‘멍청한 세상 사람들의 저항’을 이겨낼 수 없었다. 그런데 정작 그를 유명하게 만든 작품은 1851년에 희랍어로 부록과 첨가를 뜻하는 <Parega und Paralipomena>이었다.

이 책에는 유명한 <생활의 지혜를 위한 격언>이 실려 있었다. 이 책이 유명해 지고 나서 쇼펜하우어의 주저가 주목을 받았다. 젊은 청년 시절에 썼던 천재적 작품이 노년에 가서 평가받게 된 것이다.

노년에서야 빛을 보다

쇼펜하우어는 진작부터 얻었어야 할 명성을 노년에 가서야 누리게 된다. 사람들이 그를 ‘프랑크푸르트의 부처’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 부처는 푸들 강아지 한 마리와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을 극히 싫어했던 괴팍한 부처였다.

쇼펜하우어는 죽어서 그 영향력을 더욱 발휘했다. 쇼펜하우어의 작품은 프리드리히 니체에게 철학적 충격을 주었다.프랑스 철학자 베르그송을 중심으로 한 생철학 역시 쇼펜하우어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프로이트는 쇼펜하우어의 의지 이론으로부터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프로이트는 쇼펜하우어를 자신의 이론의 선구자라고 말했다. 의지의 주요한 현상으로서 성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발견은 프로이트에게서 그대로 발견된다.

쇼펜하우어는 예술가들에게 폭넓은 영향을 끼쳤다. 토마스 만과 같은 저술가 뿐만 아니라 리하르드 바그너와 같은 음악가나 막스 벡크만같은 미술가도 그의 영향을 받았다.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구스타프 슈바브 그리스로마신화\' 역자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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