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쟁론과 실험의 경험 계승

기획-오바마 시대, 무엇을 말하는가:(8)오바마 그리고 미국 역사의 변화 김민웅l승인2009.02.09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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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공존 지향 미국의 변신 주목

연재 순서

1. 오바마 플랜
2. 오바마와 미 헌법, 미국 민주주의
3. 오바마와 미국 정치
4. 오바마와 경제
5. 오바마와 노동, 복지
6. 오바마와 신앙
7. 오바마와 미국의 세계적 역할
8. 오바마 그리고 미국 역사의 변화
9. 오바마와 우리의 관계
10. 오바마 모델과 진보세력의 미래

미국은 식민지로 출발했다. 그러나 그 힘은 서구 자본주의의 제국주의 체제가 수립되는 과정이었다. 미국의 독립운동은 따라서 영국의 식민체제에서 해방되기 위한 역사적 투쟁의 과정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자본주의 체제의 이식과 성장의 독자적 선택이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미국의 시작은 영국에 대한 저항,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들에 대한 정복과 지배, 축출의 과정과 서구 자본주의 체제의 내면화가 함께 이루어진 역사였다. 그리고 이 과정의 성숙이 최고단계에 이르게 되면서 미국은 제국주의 국가로서 위상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보자면 미국의 독립투쟁사는 자유와 해방이라는 주제를 역사적으로 담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백인들의 자유와 해방이었고 원주민, 유색인종에게는 악몽의 체제가 만들어지는 절차의 출발이 된 셈이다. 덧붙여 식민지 미국의 해방투쟁은 다른 식민지 투쟁의 확대로 이어지지 않고 또 하나의 제국주의 국가의 탄생으로 연결되는 현실을 만들어 냈다.이 역사적 모순이 해소되는 것은 결국 백인 지배체제가 재편되고, 미국의 제국주의적 패권체제에 중대한 변화가 와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미국의 21세기는 백인지배체제의 재편의 단서와 미국의 제국주의적 패권체제의 일정한 동요가 주목되는 세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오바마의 당선 하나로 미국의 백인체제가 붕괴되고 미국의 제국주의 질서가 해체된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미국의 역사가 지금까지 견고하게 지탱해왔던 질서에 일정한 변화가 강요되고 있고, 그것은 지난 시기 미국의 역사가 줄곧 관철하려 해왔던 목표를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국면에 이른 것은 분명하다.

진보담론이 끌어온 역사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역사적 재편과정에서 미국의 독립투쟁사라든가 남북 전쟁 그리고 이후 대공황을 거치면서 이루어진 사회복지체제와 1950년대 말부터 시작된 민권운동 등을 거친 미국의 역사에서 논쟁이 되고 일부 현실이 된 진보적 담론이 새로운 미국의 역사를 만들어 내는데 중요한 기반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독립투쟁사는 프랑스 혁명의 역사적 상상력을 확장시키는데 중대한 기여를 했고, 남북전쟁 이후 흑인 노예 해방은 인종주의 철폐의 근거를 만들어 냈다.

대공황 과정에서 격렬했던 체제 논쟁과 경제정책의 담론은 이후 미국의 진보적 정책의 뿌리가 되었으며 민권운동은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대운동과 함께 미국 사회의 역사적 의식 자체를 변모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것이다. 특히 베트남 전쟁 반대투쟁과 민권운동의 흐름은 미국의 제국주의 역사에 대한 인식과 비판을 이루는 토대가 되었고, 미국 내 진보적 지식인들의 운동을 구체화하는 기반이 되어왔던 것이다.

조금 더 깊이 따져 들어보면 미국 독립투쟁사는 단지 영국 식민지 체제에 대한 저항과 독립만이 아니라 이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정치철학적 담론을 형성시켰다.

전제정치에 항거하는 민주체제를 만들기 위한 제도는 어떻게 이루어낼 것인가? 미국처럼 큰 연합체제를 연방중앙정부와 각 주의 정치경제적 균형을 맞추어 가면서 국가적 운영을 제대로 해나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인간의 기본권을 법적 원칙으로 삼는 길은 어떻게 해서 가능한가 등의 논쟁은 미국 민주주의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보편적 발전에 기여한 바 막대하다.


특히 연방체제 논쟁은 중앙집권적 정부와 각 주의 자치적 역량의 경계선을 어떻게 조정해낼 수 있을 것인가를 놓고 벌인 것으로서 오늘날 미국의 거대한 정치경제적 시스템을 꾸리는 기초가 되었던 것이다.

남북전쟁과 노예해방, 그리고 민권운동과의 관계는 인종주의 철폐만이 아니라 시민적 기본권에 대한 논쟁을 역사적 현실로 만들어 가는데 의미 있는 기여를 하게 된다. 1930년대 대공황의 경험은 그야말로 자본과 노동의 균형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서 복지체제를 이루어내는가에 대한 역사적 실험이었으며 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역사적 지침이 되고 있는 셈이다.

역사적인 흐름으로 볼 때, 1945년 제2차 대전의 종결은 미국이 거대한 제국으로 그 위상을 확립하는데 결정적 국면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제국의 위상은 미국의 역사적 현실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식민지에서 제국이 된 미국은 자유, 해방, 민주, 인권 등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어지고, 폭력적 지배자로서의 군림이 중심이 되는 나라가 되고 만다.

물론 이는 미국의 그간 발전경로를 보면 필연적 측면이 있다. 내부적으로는 원주민들의 축출과 지배, 그리고 남북전쟁 이후 자본주의 체제 강화, 연방정부를 통한 강력한 통합 등이 제국으로서의 미국의 위상을 하나하나 만들어 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미국이 더는 제국으로서의 패권체제를 유지해나가는 역사는 막을 내리고 있음을 목격한다. 그것은 미국이 폭력적 지배국가로서 남는 것을 전제하지만 그것은 부시 정권시기에 이미 실패로 입증되었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착한 제국주의 국가’가 되거나 아니면 세계 전체와 새롭게 공존하는 길을 발견하는 길이다. 그러나 애초부터 착한 제국주의 국가란 있을 수 없으니 단지 포장만 바꾼 제국주의 국가가 될 수 있으나 그것은 세계적 역학의 변화로 간단치 않다.

또한 오바마가 제국주의 미국의 국가적 이익과 그 요구에 굴복할 수도 있으나 그것은 진보적 세계시민들이 그를 지지했던 것을 배신한다는 점에서 부담이 만만치 않다. 결국 남는 것은 새로운 공존을 지향하는 미국으로서의 변신이다.

‘착한 제국주의 국가’ 유지?

이럴 경우 미국이 내세울 수 있는 가치는 독립투쟁에서부터 시작해서 노예해방과 민권투쟁, 그리고 사회복지제체를 이루려 했던 각종 진보적 정치쟁론과 실험들이다. 오바마는 바로 이러한 미국의 근본적 가치에 주목한다. 그래서 미국이 세계사 전체에 새로운 모습으로 그 위상을 존엄하게 확보하고 역사적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려 한다. 혹자는 오바마가 모습만 바꾼 제국주의자라고 한다. 그것은 제국으로서의 미국의 역사적 기득권을 헐어버리지 못한다는 측면에서의 비판일 수 있지만 그가 탐욕적이고 폭력적인 제국의 기능을 계속 연장하고 확대하려 든다고 하기는 어렵다.

미국은 비열하고 참담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전세계적으로 모범이 될 만한 역사도 아울러 가지고 있다. 인종차별과 원주민 학살, 제3세계에 대한 식민지 지배, 군사정권 지지와 제국주의 체제의 확대재생산등이 전자라면 미국의 공화정 체제와 정치의 민주적 시스템 발전, 정치철학적 논쟁과 자신의 역사에 대한 치열한 비판적 검증 등은 의미있게 짚어봐야 할 역사다. 오바마는 바로 이러한 역사를 계승하려고 한다. 물론 그것은 현재 그 자신의 의도의 수준에 머물러 있을 뿐이지만 미국과 세계가 또한 주목하고 있는 바이다.

그가 ‘변화’라고 외칠 때 그것은 부시가 만들어놓은 현실과의 결별을 뜻하는 동시에, 그가 가치높게 평가하는 미국 역사의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와 다름이 없다.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복지체제를 지향하는 새로운 역사를 그가 써나갈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나, 그것은 우리에게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주제라는 점에서 오바마의 역사인식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질문이 되지 않을까? 이명박 정권이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고 갖은 수를 쓰고 있는 마당에 말이다.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본지편집주간

김민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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