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의 왕이다… 저 익숙한 선율은”

[이지상의 사람이 사는 마을] 이지상l승인2009.02.09 12:02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해체 민자당! 타도 노태우!”를 외쳤던 1991년 5월의 어느 날 저녁, 나는 을지로 인쇄골목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종로에서 시작한 시위대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종로는 물론 청계천 을지로까지 진출하였고 명지대 새내기 강경대를 죽인 원흉 노태우를 처단하라는 분노의 함성을 토해내고 있었습니다. 박승희가 죽고, 김영균과 천세용이 죽었습니다. 연이은 분신의 행렬에 격분한 많은 청년들이 얕은 충격에도 곳 터질 것 같은 뇌관이 되어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종로에서 백골단의 기세는 무척 무서웠습니다.

흰 헬멧과 ‘청카바’로 상징되는 그들은 종로한복판의 시위대를 낙원상가 쪽 골목으로 몰더니 지랄탄 자욱한 연기 속에서 강경대를 죽였던 몽둥이를 어린 여학생들의 머리에까지 휘둘렀습니다. 백골단에 쫓겨 막다른 골목의 담장을 몇 개쯤 넘은 나는 그때 처음으로 산동네 판자촌과 다를 바 없는 피맛골(서울YMCA 뒤편 상가골목)의 안살림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시위본대와 합류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신세계백화점과 대한극장을 지나 경찰의 검문을 피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장소로 포장마차를 택했던 것입니다.

그때 청춘을 묻은 그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뉴스를 들었습니다. 내가 마지막으로 시위대와 흩어졌던 대한극장 부근 골목에서 한 여학생이 호흡곤란으로 숨졌다는 내용의 단신이었습니다.

“호흡곤란은 무슨, 때려 죽였지. 나쁜 놈들.” 나이 지긋한 한 시민의 장탄식에 그만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터졌습니다. 그날 매캐한 최루연기가 가시지 않은 버스 안에서 울음을 참으려 속으로 불렀던 노래가 있었습니다.

“이 세상이 창조되던 그 아침에 나는 아버지와 함께 춤을 추었다. 내가 베들레헴에 태어날 때에도 하늘의 춤을 추었다.”

버스가 빨리 달릴 때는 빨리 불렀지만 집 앞 골목을 눈앞에 두고는 가로등 아래 앉아 한없이 느리게 불렀습니다.

“높은 양반들 위해 춤을 추었을 때 그들 천하다 흉보고 비웃었지만 어부 위해서 춤을 추었을 때에는 날 따라 춤을 추었다. 안식일에도 쉬지 않고 춤 췄더니 높고 거룩한 양반들 화를 내면서 나를 때리고 옷을 벗겨 매달았다. 십자가에 못 박았다.”

비 내리는 오월. 성균관대 불문과 4학년생 김귀정은 내가 도망쳐 나온 서울 중심가 한복판의 후미진 골목에서 쓰러졌습니다. 백골단의 토끼몰이식 진압과 무차별적 폭력이 죽음의 원인이었음이 확실했지만 경찰과 언론은 도망치던 시위대에 의한 압사라고 발표 했습니다.

그 이후 한동안 벚꽃 지는 저녁이면 그해 오월의 역사 속에 청춘을 묻었던 열사들의 이름을 생각하곤 했습니다. 꽃잎에 물든 그이들의 초상을 정의의 하느님이라 여기며 불렀던 ‘춤의 왕’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높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면서 춤을 계속해 추기란 힘이 들지만 끝내 땅속에 깊이 묻힌 이후에도 난 아직 계속 춤춘다.”

화합과 평화의 4중주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취임식 열기는 뜨거웠습니다. 영하의 차가운 날씨임에도 워싱턴 DC에는 200만의 인파가 몰렸고, 세계 각국의 정상들은 새 시대의 대통령 취임을 축하하기 바빴습니다. 미국이 임의로 정해놓은 테러지원국인 쿠바나 이란 정상들의 메시지도 호의적인걸 보면 막 되먹은 세계 최강 부시의 미국이 저질러 놓은 전쟁과 경제 파탄의 상흔이 그나마 오바마로 인해 일정부분 상쇄될 거라는 기대가 깔려있는 듯 했습니다.

전직 대통령들의 입장과 개회사 릭 워런 목사의 기도로 시작된 취임식은 소울의 여왕 아네사 프랭클린의 축가에 환호했고 영원한 비주류라고 여겼던 미국의 흑인들이 감격해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나의 마음도 뜨거워 졌습니다. 이자크 펄만과 요요마, 앤서니 맥길, 가브리엘라 몬테로가 등장하는 축하 연주는 연주자의 이름만으로도 가슴 설레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들의 연주가 중반으로 치달을 즈음엔 어디선가 환청이 들리는 듯한 착각에 빠졌습니다. 주로 앤서니 맥길의 클라리넷과 요요마의 첼로가 그 환청을 주도했고 몬테로와 펄만이 대위적 선율로 감싸는 형식이었는데, 어느 순간 “아! 춤의 왕이다 저 익숙한 선율.”

작곡가 존 윌리엄스는 인디언과의 우호, 노예제도의 반대부터 전쟁반대. 양심적 징병 거부를 종교적 신념으로 지녀온 쉐이커 교도들의 가스펠 춤의 왕(Lord of Dance)을 오바마 정부 출범을 축하하는 노래로 선물했던 것입니다.

대학시절 다니던 회당에서는 입도 뻥끗 못했고, 몇 마디 부르면 무조건 운동권 취급당해야 했던 불의의 땅에 오셔서 정의와 평화의 피로 세상을 구원하려 목숨을 던진 예수의 일생을 담은 노래. 이 땅의 젊은 예수인 전태일, 김경숙, 윤상원, 김귀정 등 그들의 고귀한 삶이 얽혀진 그 노래가 나와는 다른 하느님이라고 여겼던 제국주의 미국의 성서 위에서 춤추고 있었습니다. 미국대통령의 취임식이 있기 바로 전날 한국 기독교도들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당선된 이명박 정부는 용산에서 6명의 무고한 인명을 불태워 죽였습니다.

“너 죽을래? 그래 죽어”

지난달 23일 서울역은 무척 추웠습니다. 촛불을 들고 있는 손끝이 얼고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는 정수리를 시큰하게 할 정도였습니다. 용산참사에서 희생된 다섯분의 유가족들은 피 토하듯 울음을 삼켰고 대책위의 관계자들은 경찰의 무자비함을 성토했습니다. 누가 봐도 한번 죽어보라는 진압이었습니다. “죽으려고 망루에 올라갔으니 죽어”라는 것이 국가 공권력의 입장이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고작 화염병으로 대항할 수밖에 없는 철거민들의 망루를 안전장치도 확보하지 않은 채 불 태울 수는 없는 것입니다.

노동자의 생존을 위한 파업도, 철거민의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투쟁도, 이 땅에서 벌어지는 어떤 싸움도 공권력이 개입될 여지가 있다면 목숨 걸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온몸이 아릿하게 얼어오는 서울역 집회에서 시민들은 “독재 타도 이명박 퇴진”을 외쳤습니다. ‘춤의 왕’ 그 평화의 언어가 정작 필요한 곳은 새 정부 출범으로 희망에 들떠있는 미국이 아니라 이미 죽임의 땅에 발 딛고 서있는 대한민국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 다른 예수가 된 용산참사의 영혼이 우리에게 외치는 환청이 들려옵니다.

“어리석게도 그들 좋아 날 뛰지만 나는 생명이다. 결코 죽지 않는다. 네가 내 안에 살면 나도 네 안에서 영원히 함께 살련다. 춤 춰라 어디서든지 힘차게 멋있게 춤춰라. 나는 춤의왕 너 어디 있든지 나는 춤속에 너 인도 하련다.”


이지상 가수·성공회대 외래교수

이지상  

<저작권자 © 시민사회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지상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여백
시민사회신문 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8288 서울특별시 구로구 새말로 93, 신도림태영타운상가2동 B105  |  대표전화 : 02-3143-4161  |  팩스 : 02-6737-1115  |   ingopress@ingopress.com
등록번호 : 서울 다 10706  |  등록일자 : 2013년 8월 26일  |  회장·논설주간 : 강상헌  |  발행·편집인 : 설동본  |  편집국장 : 양병철
후원계좌 : 국민은행 7788-01-04-375819 (시민사회신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설동본
Copyright © 2007 시민사회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