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능선을 찾으라

[강상헌 칼럼] 강상헌l승인2009.02.09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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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짜기를 헤매고 있는가? 능선을 찾으라. 그래도 길이 보이지 않는가? 꼭대기에 오르라. 산에서 길을 잃었다고 판단되면 얼른 심호흡 한번으로 자신을 고르고, 되돌아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지점에 올라야 한다. 늦으면 ‘나’를 잃게 된다.

이명박 정권이 길을 잃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헤맨다. 해결책이라고 내놓은 것이 ‘법질서 수호’다. 법질서를 무시하면 안 된다며 비통의 절규를 단칼에 잘랐다. 그리고는 “장차관들이 긍정의 바이러스를 퍼뜨려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딱하다

대통령이 딱하다. 또 그를 보좌하는 이들의 인간성과 상상력 빈곤도 참 딱하다. 이 딱한 사정은 바로 국민의 불행일 터다. “실수했다고 자른다면 누가 나설 것이냐”라고 반문한다. 이젠 아예 조직폭력배들의 논리다.

‘눈 가리고 아웅’ 한다고 실체가 가려 지는가? 그게 실수인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실수를 하려고 그런 ‘논리’를 시도하는가? 정권의 필요에 의해 ‘고의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청와대 쪽만을 바라보는 ‘칼자루’들의 발호(跋扈), 벌써 눈에 선하다. 누구를 위한 정치이며 행정이냐, 세금은 누가 내는가?

이 상황에 대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알지 못하는 것 같은 어투나, 이를 부정하는 것 같은 어법(語法)은 생경하다. 이승만 정권을 다시 겪고 있는 것 같다. 벌써 대통령의 임기가 언제까지인가를 얘기하는 대화가 많다. 어떻게 견뎌야 하는지, 한숨 섞인 말투가 일반적이다.

검찰과 경찰, 일부 언론은 “그들이 불을 내서 경찰을 살해하고 스스로 타죽었다”는 문맥으로 국민들이 느끼도록 애써 궁리를 모은다.

‘그 국민’을 테러리스트로 모는 것이다. 박멸해야 마땅한 적인가? ‘이 국민’은 하릴없는 피해자일 뿐이고? 그 ‘토끼몰이의 궁리’는 “음, 경찰 하나가 죽었고…”라는 대통령의 발성(發聲)으로 잔뿌리 하나를 부지불식간에 노출시켰다. 이는 또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못을 박았을 뿐이고!

국민 가슴에 못박았을 뿐이고!

좋은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지 않느냐, 긍정의 바이러스를 퍼뜨려라, 어서 잊고 경제건설에 나서자는 것이다. 청와대의 어떤 이는 이번 일을 계기로 ‘데모를 제대로 하는 법’을 모든 국민이 알아야 한다고 한 말씀 했다. 협박 수준이다.

국민을 섬기겠다고 목이 쉬었던 이명박 대통령 후보와 대통령은 같은 사람인가?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나’를 잃게 된다는 것을 그와 그의 사람들은 모르는 것일까? 지금 국민들이 행복한가? 행복하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되돌아 능선을 찾아 가야 할 것이다. 천박한 자본주의의 피비린내를 씻고 ‘인간의 얼굴’을 우리 사회가 되찾도록 큰 심호흡으로 스스로를 바루고 새로운 시야의 확보에 나서야 한다.

빈익빈 부익부, 승자독식(勝者獨食), 유전무죄 무전유죄 따위의 부작용을 심화하는 개발 지상(至上)의 건설 이데올로기는 이제 더 이상 좋은 나라를 위한 지혜의 전개방식일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왕회장’ 정주영의 지시를 받고 일하던 현대건설의 사장이 아니지 않는가.

힉스와 롤즈의 ‘자본주의를 치유하는 경제이론’과 같은 새로운 지평(地平)에 눈을 돌려야 한다. 197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영국 경제학자 J. R. 힉스의 ‘보상의 원칙’과 미국 정치철학자 J. 롤즈의 ‘최약자 보호의 원칙’을 말하는 것이다. 어떤 정책이건 이익을 얻은 계층이 그로 인해 손해를 본 계층을 지원해 형평을 유지하도록 조정하는 제도적 보정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힉스의 가르침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 생각하는가

자본주의에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소외계층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예의’를 롤즈는 역설했다. 자본주의의 냉혹함을 덜어 사회를 따뜻하게 하는 이 ‘온풍기’가 있었기에 서구의 자본주의는 그나마 유지되어 왔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빈곤의 수렁에 몰릴 수밖에 없는 수많은 ‘난쏘공’들을 보듬는 장치가 우리에겐 없다. 치명적이다. 그 대표적인 부문이 산업화를 위해 처절하게 희생된 농업, 이제 비명을 지를 힘도 거의 남아있지 않다. 농업의 몰락, 난쏘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치가들은 모른다.

‘특공대 투입의 원칙’과 힉스와 롤즈의 원칙, 어떤 원칙이 더 좋은 원칙인가? 분노는 해일처럼 몰려온다. 갈등은 산처럼 쌓여 있다. ‘강부자 고소영’ 말고도 백성이 고개를 끄덕여야 뜻을 펼 수 있다. 잘못을 수정하는 것은 착한 일, ‘본디’로 돌아가자. 어서 심호흡 크게 한번하고 능선에 오르라.


강상헌 논설위원

강상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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