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운명, 사람의 운명

[책권하는 사회] 이우희l승인2009.02.16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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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책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들지만
바동거리다 한 세상 마감하는 인생 비슷


책의 운명은 발행에서부터 절판까지다. 채 반년을 못 채우는 놈부터 백 살을 넘어 사는 것들도 있다.
세상에 나기 전부터 ‘너는 1천 부짜리, 너는 1만 부짜리’ 하며 귀천이 정해지기도 한다. 다들 축복과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세상에 나지만 개중에는 날 때부터 못난 놈들도 있다.

안에 든 게 많고 적고는 별개의 문제다. 오히려 든 게 많을수록 외면당하는 게 요즘 인심이다. 세상의 구미를 잘 살피고 이름자만 잘 지어 주면 나머지는 돈이 죄다 해결해 준다. 행여 운 때가 나빠 요란하게 치장한 부잣집 책들 옆에 놓이는 것은 제 팔자니 어쩔 수 없다.

요컨대 선택받을 것인가, 선택받지 못할 것인가. 이것이 책의 운명을 결정짓는 절대명제가 된 지 오래다. 그래도 책인데, 책의 자존심이 먼저 아니냐고? 책이 책다움만을 고집해서는 잠깐 얼굴 비췄다가 서점 직원도 못 찾을 구석에 처박혀 먼지만 잔뜩 쌓여서는 출판사로 되돌아온다. 변변히 새끼도 못 치고 잊히고 말 게 눈에 선하다.

책의 자존심이 먼저?

다소 과장을 섞기는 했지만 책의 본질적 가치와 상업성의 문제는 편집자의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대다수의 편집자들이 세상에 처음 자식을 내보내는 심정으로 책을 만들 테니 세상 모든 책들이 그렇게 막되었을 리는 없다. 일부의 사람들처럼 항상 일부의 책들이 문제다. 하물며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드는’ 구조 자체가 흔들릴 지경도 아닐진대, 한두 번 속을지언정 책이라면 가급적 사고 보자.

서두에서 길게 풀었듯이 책과 사람살이와는 분명히 닮은 구석이 있다. 그렇게 달마다 한두 권씩 마감하면서 문득 든 생각! 하루하루 바동거리며 살다가 책처럼 나도 한 세상 마감하는 건 아닐까….

얼추 평균수명의 절반을 살았더니 책에 대한 걱정만큼이나 스스로도 삶의 위기감을 느낀다. 앞으로는 삶의 가속도가 붙을 게 틀림없다. 열 살 인생의 1년이 그의 삶의 10분의 1로 느껴진다면 마흔 살의 1년은 40분의 1이 되는 이치다. 삶을 마흔 개로 잘랐을 때의 그 짧고 허무한 세월이란!

조선시대 우리 조상들의 평균수명은 스물넷이었다고 한다. 젖을 떼기도 전에 죽는 일도 허다했으니 유아사망의 경우를 제외하더라도 평균수명은 고작 마흔 언저리. 지금 내 나이다. 옛날 같았으면 당장 오늘내일을 걱정해야 할 수도 있었다. 자연히 어떻게 살아야 하나, 삶에 진지해질 수밖에 없다. 나는 아직 장가도 못 갔다….

방외지사의 삶과 나


이처럼 삶이 수상하게 느껴질 때 더욱 마음에 와 닿았던 책들이 있다. <방외지사方外之士>(조용헌, 정신세계원)가 그중 한 가지. 이 책은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개척하고 실행해 옮긴 평범하지만, 평범을 거부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먼저 ‘方’의 의미부터 짚어 보자. ‘방方’은 테두리, 경계선, 고정관념, 조직사회를 뜻한다. 저자의 풀이를 따르자면, 예전에는 산속에 숨어 사는 도인들을 방외지사라 했지만 현대에는 고정관념과 경계선 너머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바로 방외지사다.

대학을 졸업하고 남들 다하는 취업을 거부한 채 시골에서 고택을 지키는 강 처사, 대나무로 엮은 뗏목을 타고 황해바다를 들락거린 윤명철, 다니던 잡지사를 그만두고 지리산에 들어간 시인 이원규 등 방외지사를 선택한 13인의 삶에서는 흥미로움을 넘어 오히려 삶에 대한 애착과 진지한 철학이 느껴진다.

눈 먼 새도 날다보면…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가는 길이 곧 나의 길이요, 나의 운명이다’라는 신념을 지녔다는 것이다. 특히 광주의 어느 고택에서 유유자적하며 사는 강기욱의 삶은 ‘백수의 제왕’이라 할 만하다. 그는 직장에 매인다는 것은 자기를 파는 일이라 말한다. 눈 먼 새도 날아다니다 보면 입에 걸리는 게 있기 마련이라는 신조를 갖고 있다.

그는 대학 졸업 이후 단 한 번도 월급 받는 직장을 가져본 적이 없다. 물려받은 재산도, 현재 가진 것도 거의 없다. 혼자 사는 것도 아니다. 마누라도 있고 자식도 둘이다. 농사도 짓지 않는다. 아침저녁으로 저택 관리하는 일을 제외하면 거의 하루 종일 논다. 돈도 없고, 직장도 없고, 처자식마저 딸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밥 굶는 일이 없음은 물론 행복해 보이기까지 하는 게 웬일인가!

먹고는 살아야 하는 생존의 문제에 치여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고민을 잊고 사는 우리에게 이 책은 죽기 전에 한 때만이라도 살고 싶은 대로 살아 봐야겠다는 강렬한 유혹으로, 그런 용기를 내지 못하는 대다수 인생들에게는 고달픈 삶의 위안으로 다가온다.


이우희 두리미디어 편집장

이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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