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을 모른다

책으로 보는 눈 [76] 최종규l승인2009.02.16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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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에 가 보지 않은 분은 헌책방에 어떤 책이 있고, 어떤 이야기를 얻고, 어떤 마음밥을 먹을 수 있는지 모릅니다. 도서관에 가 보지 않은 분이 도서관 얼거리나 책갖춤을 모르는 일과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헌책방이고 도서관이고 찾아가 보도록 일러 주지 못하고, 가르치지 못하고, 이끌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낳아 기르는 어버이 스스로 헌책방이나 도서관 나들이를 못하거나 안 합니다. 아이를 낳아 기르기 앞서는 회사일 하랴 바쁘고, 회사 다니기 앞서는 대학교에서 학점 따랴, 사랑놀이 하랴 바쁘며 대학교 다니기 앞서는 중고등학교에서 입시싸움 치르랴 바쁩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겨우 틈이 나는데, 이무렵 아이들 손을 잡고 헌책방과 도서관 나들이를 하는 어버이는 얼마쯤 될까요. 우리가 어린이였을 때 우리 어머니 아버지 되는 분들도 ‘지금 아이를 낳아 기르는 우리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먹고사느라 바빠 제때 제곳에서 아이들을 못 챙기지 않았을는지요.

골목동네에 살아 보지 않은 분은 골목동네에 어떤 사람이 살고, 어떤 이야기가 있고, 어떤 이웃과 동무를 사귀며 지낼 수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는 아이들이 골목동네를 알기 어렵습니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어버이는 으레 아파트에서 삽니다. 아파트가 아니어도 빌라에 살며 골목에서 이웃집과 문과 담을 마주하면서 늘 얼굴 부딪히며 살아가는 사이가 아니기 일쑤입니다.

햇볕에 빨래를 말리고, 골목길 안쪽 모퉁이나 차가 뜸하게 다니는 너른 볕바른 자리에 놓인 걸상에 앉아 다리쉼을 하면서 동네 할매 할배와 이야기꽃을 피우는 재미를 모릅니다. 사진으로는 보고 말로는 들을지언정, 살갗으로 받아들이는 이야기가 되지 못합니다. 이러다 보니 ‘용산 철거민 참사’가 일어나도 왜 ‘철거민이 생존권을 외치’는지, ‘보상 받고 떠나면 될 일을 왜 저리 난리법석’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오늘날 아파트 삶터는 고향이 아닌, 돈 굴리기를 하고자 잠깐 머무는 곳이거든요. 스무 해조차 채 버티지 못하는 곳은 집도 보금자리도 아닙니다. 부동산일 뿐입니다.

지난주에 동네 헌책방 마실을 하면서 <과학의 나무를 심는 마음>(전파과학사, 1985)이라는 작은 책을 장만했습니다. 글쓴이는 장학사를 하면서 여러 국민학교(옛날이니까) 자연시간 시찰을 나가며 겪은 일을 적어 놓는데, 요오드 실험을 하는 아이가 틀림없이 검은빛으로 나왔음에도 “녹말가루에 요오드 용액을 떨어뜨리면 보라색으로 변하니까요” 하고 ‘선생님이 가르쳐 주고 교과서에 나온 대로’ 말하더랍니다. 알코올램프가 넘어지면 물을 부어야 하는 줄 모르는 교사들 이야기를 보면서, 주먹구구요 점수따기 주입교육만 되풀이되는 예전 이런 모습이 오늘날이라고 조금이라도 바뀌었을까 싶어 고개를 갸웃갸웃하지만 그예 슬플 뿐입니다.

아침에 구청(인천 동구청)에서 열린 ‘동인천 재정비사업에 따른 주민설명회’라는 데에 다녀왔습니다. 주민 숫자가 몇 만 사람임에도 걸상을 고작 150개 갖다 놓았고, 골마루까지 북적인 주민들 앞에서 ‘돈없는 사람한테까지 재정착을 보장해 줄 수 없다’는 말을 대놓고 합니다. 두어 시간 내내, 재개발 정책을 꾸리는 분은 자기 사는 동네를 재개발로 밀어 없애는 일을 할까 안 할까 궁금했습니다.



최종규 1인 잡지 <우리 말과 헌책방> 내는 사람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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