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의 ‘법황청’

[시론] 이선근l승인2009.02.16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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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회를 대공황 이후 최대의 경제위기에 처하게 만든 월가의 최고경영자들이 연일 의회청문회에 불려가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하는 시늉을 연출하였다. 그들은 그 대가로 자신들을 살려야만 미국 경제가 회생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명제를 국민들의 비등한 분노와 대체시키는데 성공하는 듯했다.

그러나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거대 은행들이 또 도산할 것이라며 수많은 나라에서 은행들은 쓰러트리기에도, 구제하기에도 지나치게 크다며 재정수단을 아무리 투여하여도 이들의 도산은 막을 수 없다는 2차 상업은행 위기론을 펼치면서, 미국-영국의 앵글로색슨 금융감독 및 규제모델의 종언을 예고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신용평가기관들의 독점과 전횡에 대한 항의가 프랑스 등 국제사회로부터 제기되고 있다. 무디스 등 3대 국제신용평가기관들에 대한 문제제기가 국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금융산업 전개과정에서 이들의 역할을 살펴보면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종언을 예고당하는 신자유주의

본격적으로 전개된 지 불과 30여년 만에 종언을 예고당하고 있는 신자유주의라는 경제모델은 잉여가치생산에 기초를 둔 생산적 모델이 아니다. 주된 산업영역으로 선정된 금융산업이 연출한 화려한 외양에도 불구하고 그 바탕을 들여다보면 매우 단순한 이익창출구조를 가진 가치이전만이 존재하는 비생산적 모델이다.

즉 장단기금리의 차이를 활용한 ‘캐리 트레이드’와 리스크의 차이를 활용한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라는 차익거래(Arbitrage)가 바로 그것이다.

전자는 금융업이 자본주의 출발 이후 끊임없이 추구해온 방식이지만 후자는 구조화증권의 다른 이름인 파생상품을 통해서 30여년 전에 발생하고, 90년대 최종적인 금융규제완화를 통해 금융업의 거의 전부가 되다시피 한 것이다.

똑 같은 차익을 통한 가치이전임에도 불구하고 후자의 거래는 전자에 비해 매우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하기 쉬운 것이다. 그래서 복잡한 금융수학에 바탕을 둔 금융공학이 발달되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였다. 궁극적으로 그 위험성을 담보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잣대가 없으면 금융산업의 급속한 확대는 불가능하였다.

그것은 바로 신용등급의 절대화였다. 무디스, 에스앤피, 피치 등 신용평가회사 3사는 1934년에 증권거래위원회에 의해 국가공인통제평가기관(NRSRO)으로 지정돼 준금융규제기관 지위를 부여받았다. 그 후 73년에는‘금융혁신’을 위해 금융법규에 신용등급조항이 포함되면서 3대 회사는 결정적인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 신용평가는 투자자들에게 신용리스크를 판단하는 근거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원금을 보증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이제 금융산업을 거침없이 파생상품 중심의 차익거래로 드라이브할 강력한 방향타가 마련된 것이다. 금융산업의 확대 발전이라는 역사적 사명을 띤 무디스 등은 ‘기관’적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들을 위해 ‘회사’로서도 충실한 역할을 하여 투자의 귀재라는 워렌 버핏의 돈까지 투자하게 만들었다.

세속의 권력은 누가?

‘신앙’을 위해 세운 '법황청'이 세속의 권력까지 장악하게 된 것이다. 그러자 헨리 8세와 같은 배교자는 발생조차 할 수 없었고 입속으로 “그들이 허락하지 않으면 코도 풀 수 없다”는 변명을 우물거리는 자들만이 금융시장을 가득 메웠다. 등급조작을 거부하는 애널리스트는 해고하면 그만이었다. 금융회사들은 이들에게 납작 엎드린 채 트리플A를 획득하기 위해 자신들의 회사에 대한 컨설팅업무까지 상납하였다. 게다가 그들을 기관으로 승격시켰던 금융감독기관도 숭배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최대 위기를 맞으면서도 이들의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움직임은 우리나라에서 아직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의 목에 ‘방울’을 달기는커녕 기업이나 국가의 등급을 하향조정하겠다고 예고만 하여도 ‘혼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마인드를 가진 이명박 정부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신자유주의의 맹주인 미국의 패권은 두 가지 요인에서 나온다고 본다. 하나는 우주전쟁을 치르고도 남을 정도의 막강한 무기. 또 하나는 세계의 모든 기업과 금융시장자유화를 받아들인 모든 국가에 대한 등급을 매길 수 있는 신용평가회사들이다.

이들이 신자유주의의 ‘법황청’으로 역할하고 있는 한 패권국가의 부담이 신흥국들에게 전가되는 것이 일상화될 것이다. 또 전가시키는 정도만큼 신자유주의의 붕괴과정은 지연되고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삶을 더 오랫동안 피폐케 할 것이다. 한국의 진보세력은 신용평가회사들의 절대적 권력을 허무는 것을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구체적 출발점으로 삼으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이선근 경제민주화를위한민생연대 대표

이선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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