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리다’ 어법의 정치적 함의

[강상헌 칼럼] 강상헌l승인2009.02.16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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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다’고 해야 할 때 ‘틀리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과문(寡聞)의 탓이겠으나, 특히 우리 정치 동네 인사들에게서 이런 말버릇이 더 많이 관찰되는 것 같습니다. 혹시 선생님 말버릇도 그렇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볼까요. 이명박과 박근혜는 틀리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틀리다, 불과 물은 틀리다 따위의 말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다르다’라고 해야 맞지요.

‘다르다’는 ‘같지 않다’는 뜻의 형용사입니다. 좀 현학적인 말로 표현하자면 가치중립적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영어로 말하자면 ‘different’가 되겠지요.

‘'틀리다’는 ‘옳은 것이 아닌 상태가 되다’는 뜻의 동사입니다. 앞서의 예와 같이 설명하자면 가치 측면에서 부정적이지요. 옳지 않은 것, 나쁜 것이라는 얘기지요. 영어로는 ‘wrong’이겠지요.

왜 이렇게 엄연히 다른 말이 혼란스럽게 오용되고 있는지 곰곰 궁리해 보고 여러 번 물어봤지만 시원한 답을 얻기 어려웠습니다.

물론 뭇 사람들의 무심한 말버릇이라고 넘겨 버릴 수도 있겠습니다. 필자더러 “자네, 너무 예민한 것 아닌가”하고 꾸중하실 이도 있겠지요. 그런데 여기에는 한번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숨어 있습니다.

만에 하나라도 우리의 의식 속에, 혹은 무의식중에 ‘다른 것은 틀린 것’, ‘다른 것은 나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있지는 않은지 하는 걱정이 그것입니다. 또 그 생각의 바닥에 ‘모든 것은 같아야한다’는 어처구니없는 획일주의가 버티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지요. 달라야지요. 달라야 창의적인 생명력이 생겨나지요. 사전은 다르다는 말의 가치판단을 유보하고 있지만, ‘다름’은 우리 삶에서, 또 다른 모든 분야에서 귀하게 여겨져야 마땅한 개념입니다.

자녀가 나와 같은 생각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하는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학생이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지도록 짐 지우는 선생은 필경 실패합니다. 부부간에도 그렇지요. 나와 다르니까 부부의 인연이 시작됐고, 지속되지요. 같아야 한다고 한쪽이 강요한다면 거울은 깨지게 마련입니다.

우리 정치의 ‘틀리다’ 어법을 살핍니다. ‘주류’(主流), ‘실세’(實勢), ‘당명’(黨命)과 다른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우리네 정당 정치의 분위기에 그런 획일주의와 함께 ‘다른 것은 틀린 것이자 나쁜 것’이라는 의식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요. ‘윗분의 뜻’, ‘박심’(朴心), ‘코드’ 따위의 어느 것에라도 맞추지 않으면 모두 자동으로 오답(誤答) 처리되는 기계 속에 매몰된 생각 말입니다.

일제시대와 정치가 국민만을 바라보지 않았던 불행한 독재정권시기를 거치며 우리 의식에 똬리를 틀고 앉은 획일주의 따위가 못생긴 ‘틀리다’ 어법으로 표출되는 것인 아닌지 묻는 것입니다.

영국의 신비주의 시인이자 화가였던 윌리엄 블레이크는 이렇게 ‘현상과 그 뜻의 관계’를 읊었습니다.
‘한 알 모래알에서 세상을 보고/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그대의 손바닥 안에 무한(無限)을 쥐고/한 순간의 시간에서 영원을 보라.’

‘순수의 전조’(前兆)라는 시의 한 부분입니다. 모래알 한 알이 세상을 보듬듯, 이 같은 어법과 의식이 담고 있는 획일주의의 큰 영향의 무게 또한 엄존(儼存)할 것입니다.

한나라당 소장파 중에 스스로 ‘왼쪽’이라고 내세우며 ‘다른 소리’을 낸다는 ‘민본21’이라는 그룹을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들리기로는 용산참사, 방송법, 종부세와 감세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의 중요 현안들을 다른 시각으로 본다고 합디다.

아직 그 그룹의 ‘기여’는 또렷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떤 이들은 액세서리론으로 이들을 폄하하기도 합니다. ‘한나라당에 이런 사람들도 있다’는 정도의 효용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라는 얘기지요. 그러나 민본21의 다른 시각, 다른 소리가 어떤 것인지를 듣고 싶은 기대감이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들로 인해 ‘다름’의 소중함을 느껴보고 싶은 것입니다. ‘다르다’를 ‘틀리다’라고 하면 안 됩니다. 스스로 명징한 언어로 말하세요.


강상헌 논설위원

강상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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