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김민환 한신대 교수l승인2024.04.08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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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6일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들로 구성된 세월호참사 10주기 전국시민행진단은 행진 시작 21일 만에 마침내 서울에 도착했다. 모든 일정에 다 참여한 동수 아버지의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전날 안산에서 시민들에게 ‘안녕하지 못하다’고 울부짖은 호성 어머니의 말을 전해 들으면서 나는 마지막 날 20km를 겨우 함께 걸을 수 있었다. 10주년 기억식 당일 선보이고자 하는 4,160명의 대합창에 참여하겠다고 신청한 사람의 수가 목표치를 이미 넘었다고 하며, 이날 행진에 참여한 시민들의 수와 열기 또한 나의 기대 이상이었다. 행진단이 시민들에게 “세월호 10주년, 안녕하십니까”라고 물은 것이 계기가 되었겠지만, 10주년인 올해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를 ‘기억’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행진 중에 참가자들은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도로가의 시민들에게 인사를 하기도 했으며 구호를 함께 외치기도 했다. 외친 구호 중 하나는 “세월호참사 국가책임 인정하고 사과하라”였다. 이 구호를 외치기 전에 방송차는 “세월호참사에서 살아난 사람은 있지만 구조된 사람은 없”었다는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그러나 지난 2023년 11월 2일, 해경지휘부 전원은 구조 책임과 관련해서 대법원으로부터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로써 오직 현장에 출동했던 123정 정장만이 그 거대한 책임을 홀로 지고 실형을 선고받게 되었다. 재난 대응 컨트롤타워의 책임을 부정하고 진실을 은폐했던 청와대 관계자들도 전원 무죄를 선고받았다. 세월호참사가 발생한 이후 형편없는 국가의 재난참사 대응 시스템을 확인하고 분노했던 ‘우리’의 인식과 법적인 판단 사이의 저 거대한 간극을 확인하고 잠깐 무력해졌다.

형사재판에서 국가의 책임이 흐릿해졌을지 몰라도 민사재판에서는 약간 다른 결과가 나왔다.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은 국가가 제안한 형식상의 보상을 거부하고 참사 및 참사 이후 벌어진 일들에 대한 국가배상을 요구했고, 법원은 참사 피해자에 대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일부 인정했던 것이다. 이것의 의미는 몇가지 차원에서 강조될 필요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유가족들이 ‘보상’이 아닌 ‘배상’을 받았다는 사실 그 자체이다. 법적으로 보상은 국가의 적법한 행위에 의해 발생한 피해에 대해 제공되는 것이다. 반면 배상은 국가의 불법적인 행위에 의해 발생한 피해에 대해 제공된다. 따라서 보상이 아닌 배상 판결을 법원에서 받아냈다는 것은 세월호참사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일부지만 확정했다는 의미가 있다. 물론 1심과 2심 모두 국가의 책임을 포괄적으로 일부 인정한 것이어서 유가족들이 요구한 구체적인 국가책임을 판결문에 명시하는 데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들은 청해진해운에 대한 국가의 관리감독 소홀 문제, 구조 과정에서 해경 지휘부의 책임, 국가의 재난대응체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 등에서 국가책임을 분명히 하고 싶어했다. 2심 판결에서는 세월호참사 이후 일어난 국가의 유가족 사찰, 여론조작 등에서 국가책임을 추가적으로 인정받았다. 2심 판결에 대해 국가는 상고를 포기했고, 세월호참사 및 그 이후 일어난 일들에 대해 책임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아직 국가는 유가족 및 피해자에게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지 않았으며, 유가족 사찰, 여론조작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던 사람들을 전원 특별사면했다.

다음으로, 유가족들이 배상 판결을 받아낸 것은 그때까지 우리 사회가 사회적 참사를 ‘정리’해오던 통상적인 방식을 멈추게 했다는 점이다. 과거에 사회적 참사가 발생하면 국가는 피해자 및 유가족들과 ‘보상’과 관련한 협의를 진행하고 그 내용이 확정되면 참사가 ‘정리’되는 것으로 간주했다. 세월호참사 당시에도 일부 유가족들은 정부가 제시한 보상금을 받아들였다.

보상금을 받았으나 그것의 의미를 나중에 알게 된 어떤 가족은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참사가 발생하고 정부가 나에게 가장 친절했고 최대한의 편의가 제공되었던 순간이 보상금 신청서를 쓸 때였어.” 국가의 합법성을 인정할 수 없었던 다수의 유가족들은 보상금을 거부했다. 보상금을 거부한 순간 이들에게 ‘돈’과 관련된 저 잔인하고 집요한 공격이 가해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과거처럼 보상금 수령을 통해 세월호참사를 ‘정리’하려던 사람들에게 보상금을 수령하지 않고 국가의 책임을 물었던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이 얼마나 당혹스러운 존재였을까?

비록 배상 판결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유가족과 그들을 지지하는 시민의 실천은 재난참사 피해자의 권리를 일깨웠다. 세월호참사뿐만 아니라 과거에 일어났던 재난참사 피해자들의 침해된 권리 또한 재조명되었는데, 그것은 재난참사 피해자의 진실과 책임에 대해 알 권리, 추모와 기억에 관한 권리, 치유와 회복에 관한 권리 등이다. 이것이 온전히 제도적으로 자리 잡고 있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시민들의 인식에서는 자리를 잡게 되었다. 10·29 이태원참사 등 세월호참사 이후 벌어진 사회적 재난 피해자들의 활동은 바로 이런 인식에 의해 지지되고 있다.

이 인식은 피해자의 권리뿐만 아니라 ‘우리’의 안전할 권리로까지 확장되었다. 매일매일의 삶의 현장에서 직면하는 시민들의 사회적 재난과 산업재해로부터 시민과 노동자들이 안전할 수 있는 권리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날 행진단이 외친 “생명안전기본법 제정하고 안전할 권리 보장하라!” “중대재해처벌법 개정하고 공무원 처벌조항 보완하라!”는 구호는 내게 세월호참사 ‘이후’를 상징하는 구호처럼 들렸다. 이날 행진에는 10·29 이태원참사의 유가족들도 함께 참여했으며, 장애인들이 휠체어를 타거나 침대에 누운 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참가하기도 했다. 일부 구간에서는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참여했는데, 어른들은 경찰의 안내를 받아 차도로 행진했으나 아이들은 인도를 걸었다.

서울시의회 세월호추모관 앞에 도착한 행진단은 곧바로 기억문화제를 진행하였다. 여기서 가수 하림은 ‘우리는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일을 합니다’라는 노래를 불러주었다. 과거 여러차례 사회적 참사 및 산업재해 피해자와 유가족을 위해 노래를 불렀던 그의 이 노래는 세월호참사 10주년에 우리들의 안녕을 묻는 행사에 어쩌면 가장 적합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과거에 나는 다른 글에서 ‘기억하겠습니다’라는 문장의 목적어 중 하나로 ‘우리 자신’을 제시한 적이 있다. 세월호가 가라앉는 장면을 텔레비전을 통해 지켜보며 함께 상처를 입었고, 유가족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노란리본을 달고 그들을 지지하며 분노하고 울었던 바로 그 ‘우리’ 말이다. 고통과 아픔에 대해 공감하고 서로를 배려하고, 우리 사회의 치유력을 일정하게 회복하게 했던 그 경험들을 잊는다면, 세월호참사와 관련해서 우리는 모든 것을 잊는 것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나는 세월호참사 10주년을 맞아 다시 한번 이 질문을 하고자 한다. 세월호참사는 당신에게 도대체 무엇이었으며, 당신은 세월호참사와 관련해서 스스로에 대해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지. 만약 우리가 기억의 힘을 믿는다면, 그 속에는 스스로를 기억하는 힘의 강력함이 숨어 있을 것이다.

김민환 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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