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홀로 싸우지 않도록

유해정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 센터장l승인2024.04.15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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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 가족들의 10년을 원고지 15매에 담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내심 쉽게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가족들이 해왔던 일들 중 최초인 일들, 예를 들어 650만명의 서명을 받아 진상규명을 시도한 것도, 재난참사 최초로 특별법을 만들고 독립적 조사기구가 세차례 구성된 것도, 침몰한 배를 인양해 미수습자의 수습을 시도하고 선체 보존을 강제한 것도, 도심 한가운데 추모공원의 설립을 예정한 것도, 그리고 희생자와 생존자 모두를 아우르는 조직을 만들어 10년을 강고하게 싸워온 것도…… 모두가 한국사에 처음인 일이었으므로 이 목록만으로도 충분해 보였다. 하지만 마감을 훌쩍 넘기고도 나는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함께 자녀를 잃었으나 저마다 다른 시간과 풍경, 삶의 무게로 살아온 10년이었다. 내가 소멸되면 아이 이름마저 사라질까 삶을 놓을 수도 붙잡을 수도 없는, 미칠 수도 미치지 않을 수도 없어 환장하는 나날이었다. “밥을 먹을 수도 안 먹을 수도 없는, 너무 배가 고파서 자신도 모르게 밥통을 끌어안고 먹다가 배가 차면 엉엉 우는, 1분 1초가 편하지 않은 시간”(홍은전 「각성」, 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520번의 금요일』, 온다프레스 2024, 230면)이었다. 이 많은 아이들이 한꺼번에 사라진 끔찍한 고통 속에서 아이도, 나도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위안 삼아 버텨야 했던 순간들이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 같지만 그날 이후 분명하게 달라진 세상을 밀어올린 위대하고 경이로운 싸움 뒤 안간힘. 멀건 얼굴로 주저앉을까 겁이 나, 분노가 사그라질까 겁이 나 침몰 영상을 보고 악성 댓글을 읽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다짐. 자식이 죽어가는데 발만 동동 구르며 팽목항에 서 있기만 했을 때보다는 곡기를 끊고 천리를 걷고 한뎃잠이라도 잘 수 있어 다행이라는 안도. 거리가 터전이 되고 일상이 투쟁이 되고 모욕이 피부처럼 달라붙은 삶. 경찰의 곤봉에도 물대포에도, 날선 혐오와 차려입은 이들의 윽박에도 ‘아이야, 물러서지 않게 힘을 줘’라던 읊조림. 늘 열일곱인 얼굴,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 그날 이후 더 커진 사랑. 그러나 앞세운 자식에게도 남겨진 자식에게도 평생 죄인이 되어버린 부모…… 이 모든 것들이 평범한 이들이 감당해야 했던 3650일이자 지금도 마주하는 시간이며 살아내야 할 내일이기에, 이 가족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지 막막했다. 빈약한 글이 가족의 말과 절박한 하루하루와 메어 터지는 심장을 따라잡지 못함에 슬펐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 그들이 잃은 것은 아이만이 아니었다. 국가도, 공동체도 사라졌다. 하지만 “서명해주세요” “함께해주세요”라며 시민들의 옷깃을 붙잡아 세우던 날, 그들을 가장 매섭게 노려보았던 건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었다. ‘우리 가족만 잘 살면 돼’라며 살았던 지난날이 자신에게 벌을 내리고 있는 것 같았다. 세상이 욕하는 데모꾼, 빨갱이가 되어보니 내쳐지고 낙인찍힌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제 일처럼 울어주고 뛰어다닌 시민들의 온기에 온몸이 부끄러움으로 달아올랐다.

국민을 구조하지 않는 국가는 왜 존재하는 것일까? 피해자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사회는 어떤 효용이 있을까? 사람들이 국가를 질타하고 변하기는커녕 후퇴하는 세상에 체념하고 무기력해할 때, 가족들은 국가와 싸우고 세상과 싸우고 자기 자신과도 싸웠다. 4월 16일 이전과 이후는 달라야 한다던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가 깃발이 되고자 했다. 이제는 대통령의 시간이라며 기다림을 요구받다 놓쳐버린 수많은 것들을 복기하며 다신 주춤거리지 말아야지 결심했다. 159명을 참담하게 잃어버린 10·29 이태원참사 앞에서 다시 자식을 잃은 듯 한참을 짐승의 소리로 울다 눈물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며 꺾인 무릎을, 주저앉은 몸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미래가 희망적이어서가 아니라 오늘 한걸음 내디뎌야 내일은 그다음 걸음을 내디딜 수 있기에, 끝내 부모이고 싶어 어른이고 싶어 그리하여 사람이고 싶어, 오늘 또다시 거리다.

참담한 고통을 당한다고 모두 저항하는 사람이 되진 않는다. 오히려 오래, 깊이 싸우는 사람이 소수다. 앞이 보이지 않으면 서둘러 짐을 싸고 서로를 책망하다 사라진다. 가족들의 10년 역시 함께하던 이들이 절반으로, 또 절반으로 줄어든 시간이었다. 서로를 향한 원망과 불만이 한껏 몸집을 불린 시간이었다. 40, 50대였던 나이가 훌쩍 50, 60세를 넘기면서 풍찬노숙을 견디던 몸들이 단단히 탈이 나기 시작한 시간이었다. 흐른 시간만큼 조직은 힘겨워지고, 삶은 빈곤해지고, 사라진 이들의 빈자리는 유독 크다.

그러나 시간에 잠식되기보다는, 아직도 그 시간에 붙들려 있냐고 묻는 말들에, 슬픔마저 모욕하는 말들에 휘둘려 침몰하기보다는 세월호를 향한 애도와 기억이 세월호에만 고립되지 않도록 과거와 미래를 잇는 다리를 놓았다. 돌아올 수 없는 아이를 매일 기다리는 간절함으로 누군가는 반드시 집에 돌려보내기를 택한 것이다.

세월호참사를 비롯해 삼풍백화점 붕괴참사, 대구 지하철 화재참사, 7·18 공주사대부고 병영체험학습참사(구 태안해병대참사),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참사 등 8개 재난참사 피해자들이 모여 2023년 12월 재난참사피해자연대를 만들었다. 지난 2년간 세월호 가족들이 전국의 다양한 재난참사 피해자들을 찾아다니며 먼저 손을 건네고 품을 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팽목항으로 진도체육관으로 세월호 가족들을 찾아와 함께 울어주었던 다른 재난참사 가족들을 기억하며 서로 손을 맞잡았을 때, 이들 모두에게 삶을 살아도 좋을 또다른 이유가 생겼다. 무기력한 삶에 생기가 돌았다. 붕괴하던 건물에서, 불타던 지하철에서, 침몰하던 배에서 다급히 타전됐던 한마디 “사랑해”라는 말이 또다른 누군가의 마지막 인사로 남지 않도록 가족들은 누구보다 오래, 깊이 싸울 것이다.

전설로 남을, 아니 이미 전설이 된 세월호 가족들의 10년을 되짚으며 나는 다짐했다. 슬픔이 없는 불가능한 세상을 꿈꾸기보단 어떤 슬픔도 외롭지 않을 세상을 만들어야지. 간절히 애도하고 기억하는 세상을 만들어야지. “제 비겁함에 낯을 붉히고도 돌아서서 웃”지 않게(황현산 「잘 가라, 아니 잘 가지 말라」, 강성은 외 『사람이 사람에게, 사람의 말을 이어갑니다』, 온다프레스 2024, 23면). 누구도 홀로 싸우지 않도록.

유해정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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