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와 인류세

박범순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장l승인2024.05.03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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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초에 출간된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 지음, 진실의힘 2024)을 읽기 시작했다. 이 두툼한 분량의 책에 담긴 수많은 사실과 사진, 논쟁과 해석, 그리고 이것들을 재료 삼아 담담히 엮어내 만든 문장과 논리는 무겁고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기록을 남기자. 산 자와 죽은 이, 미래의 후손을 위해서. 책 뒷부분에 나온 ‘모래뺏기 놀이’ 비유가 머리에 오래 남았다. 어렸을 적 해변이나 놀이터에서 모래 더미를 쌓아 그 위에 막대기를 꽂아놓은 후 돌아가며 조금씩 모래를 빼내 막대기가 쓰러질 때까지 하던 놀이 말이다.

놀이는 언제나 다시 할 수 있었다. 세월호의 경우엔 그러지 못했다. 배가 기울어 가라앉을 때까지 많은 이가 야금야금 오랜 시간을 두고 모래 빼내는 일을 했다. 일부는 세월호가 조심해서 운항해야 할 정도로 위험한 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침묵했다. 대다수는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부주의했고 집단적으로 무능했으며 치명적으로 무책임했다. 세월호참사는 “언젠가는 발생할 사고”였던 것이다. 그 결과, 책에 나온 표현대로 수백개의 우주가 영문도 모르고 순식간에 사라지는 사건이 수천만의 눈앞에서 벌어졌다.

▲ 인류세의 대표 지층 캐나다 크로퍼드 호수에서 샘플을 채취하는 모습. Canadian Geographic

요즘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와 관련된 연구를 하면서 세월호참사와 비슷한 상황을 마주친다. 인류세는 인간의 활동으로 크게 변한 지구를 설명하려고 제안된 새로운 지질시대 개념이다. 어느 한 지역의 공해나 환경파괴 문제를 넘어서 지구온난화와 같은 행성 차원에서의 변화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하늘과 땅과 바다, 나무와 새와 산호초, 미생물과 돌과 사람, 이 모두를 포함한 지구의 상태를 진단하기 위해선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할 수 있는 과학이 필요하다.

1980년대부터 이 분야는 지구시스템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성장했다. 네덜란드 과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파울 크뤼천(Paul Crutzen)은 2000년 멕시코에서 열린 한 학회에서 지구 시스템의 변화에 관한 많은 발표를 들으면서 마치 득도(得道)와 같은 순간을 경험했다. 아, 우리는 예전과는 정말 다른 지구에 살고 있구나. 그런데 왜 아직도 홀로세(Holocene)라는 말을 쓰고 있지? 인류세라고 부르면 어떨까?

홀로세는 지구의 역사에서 신생대 제4기 중 빙하기가 끝난 약 11,700년 전부터 지금까지를 가리키는 시대의 이름이다. 안정적인 기후 속에 인류가 수렵에서 농경으로 삶의 방식을 바꾸고 문명을 일으킬 수 있었던 시기다.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서 각종 통계는 우상향의 급속한 변화를 보인다.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 대홍수의 횟수, 해양생태계 파괴, 생물다양성 감소 등과 같은 각종 지구 시스템 지표와 함께 인구, GDP 총합, 물 사용, 비료 소비, 교통량 등과 같은 사회경제 시스템 지표에서도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가속(Great Acceleration)이 일어나고 있다. 크뤼천은 바로 대멸종을 일으킬 수도 있는 대가속의 위험성을 경고한 것이다.

대가속은 산업혁명의 부산물로만 볼 수 없다.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팽창만으로도 설명하기 힘들다. 인류는 이미 20세기 전반 두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해 그 결과를 경험하지 않았던가? 대가속의 변곡점은 오히려 전후 냉전 시기 경제재건과 체제경쟁이 시작한 시점에 만들어졌다. 이때부터 십여년간 미국과 소련을 위시한 강대국들이 5백회 이상 대기 중 핵실험을 실시했고 그 낙진은 전세계에 퍼져 퇴적층에 쌓였다. 예전에는 전혀 없었던 플루토늄 방사성 물질이 지층에 기록으로 남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때부터 지구의 한정된 자원을 두고 모래뺏기가 가속화되었다. 더 많은 우라늄이 채굴되었고, 더 많은 화석연료가 태워졌으며, 더 많은 숲이 사라졌다. 모래뺏기는 아시아 국가들이 경쟁에 뛰어들면서 다른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일본이나 한국과 같이 자원이 부족한 나라는 이를 수입하고 값싼 노동력과 기술혁신을 통해 만든 물품을 수출하는 방식으로 세계시장에 진출했다. 덩치가 큰 중국과 인도도 뒤늦게 뛰어들었다. 점차 전세계적으로 대량생산-대량유통-대량소비-대량폐기의 자원순환 패턴이 고착되었다.

어린이들의 모래뺏기 놀이에서는 순번이 돌아갈수록 모래를 조금씩 가져가는데, 인류세의 모래뺏기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더 많이, 더 탐욕스럽게, 때로는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자국의 이익과 자본가의 지갑을 위해 모래를 빼갔다. 그 결과 지구는 온갖 종류의 찌꺼기, 폐기물, 플라스틱, 온실가스로 뒤덮이게 되었다. 이런 대가속을 지구가 견뎌낼 재간은 없다.

인류세 개념은 이처럼 인간 활동과 미래사회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하는 것이기에 과학의 경계를 넘어 인문학, 사회과학, 문화예술 여러 분야에 급속도로 퍼졌다. 이에 지질시대의 명명권을 가진 국제층서위원회는 2009년 인류세실무단을 꾸려 이미 다른 학계와 일반 대중에 널리 퍼진 이 용어가 지질학적으로 타당한지, 즉 지층에서 인류세의 증거를 찾을 수 있는지 조사하게 했다.

14년의 실증 작업 끝에 실무단은 작년 여름 캐나다 크로퍼드 호수의 지층을 대표 지층으로 하고 인류세의 시작점은 핵실험으로 인한 플루토늄 확산의 증거가 확실히 보이는 1952년으로 하자는 내용의 제안서를 제출했다. 이 제안은 심의 과정을 거쳐 올 3월에 실시된 투표에서 부결되었다. 국제지질과학연맹은 이 결과를 최종 승인하면서, 비록 인류세가 지질시대의 공식 단위로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지구 및 환경 과학자뿐만 아니라 사회과학자, 정치인, 경제학자, 일반 대중에 의해 계속 사용될 것”이라며 그 가치를 부인하지는 않았다.

지질학계 안에서 새로운 시대의 도입과 경계 결정은 순탄하지 않았던 적이 많다. 그러기에 다른 학계에서 보기 어려운 투표와 승인 절차가 제도화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예컨대 고생대 오르도비스기와 데본기는 각각 학계를 뒤흔들어놓은 논쟁 끝에 도입되었다. 홀로세만 해도 처음 제안부터 승인까지 50여년이 걸렸고. 대표 지층을 그린란드 땅속 1.5킬로미터 지점에서 시추한 얼음조각 안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가지고 정하는 데는 승인 시점부터 130년이 넘게 걸렸다.

이처럼 멸종된 동식물의 화석 증거만을 가지고 대표 지층을 정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신생대 제4기를 바로 전 시대인 네오기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2009년 투표 끝에 제4기를 유지하기로 했지만, 반대 측은 뜻을 굽히지 않고 결정 번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인류세 논쟁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지질학회의 이번 결정은 자체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인류세는 가치있는 개념이지만 공식적으로는 인정할 수 없고 우리는 여전히 홀로세에 살고 있다니. 이를 두고 한 지질학자는 홀로세는 일종의 “좀비 시대”가 되었다고 꼬집었다. 홀로세를 특징짓는 조건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데 용어는 여전히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질시대를 구분 짓는 지층 증거는 과거에서 찾는 것이지 현재라고 봐도 무방할 70년 전 정도의 기록에서는 찾을 수 없다는 오래된 신념이 이런 꼬인 상황을 만든 것이다.

인류세 공인에 찬성표를 던진 비교적 젊은 과학자는 본인 생애 안에 공인될 것을 확신하며 아마도 이번에 반대표를 던진 나이 많으신 위원들은 그 순간을 보지 못할 수도 있을 거라고 했다. 1900년 양자 개념을 도입해 물리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막스 플랑크(Max Planck)가 학계의 거센 반발을 회상하며 한 말이 떠올랐다. “새로운 과학적 진리는 그 반대자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킴으로써 승리를 거두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자들이 결국에 가서 죽고 그것에 익숙한 새로운 세대가 성장하기 때문에 승리하게 된다.”

인류세는 화산폭발이나 소행성 충돌과 맞먹을 정도로 강력한 지질학적 행위자가 된 인간의 집단적 행위에 대한 실존적 경고를 담고 있다. 인간의 역사와 지구의 역사를 더이상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시대를 사는 사람에게 인식변화를 촉구하는 개념이다. 과학의 패러다임 변화도 요구한다. 이처럼 우리가 쓰는 언어는 중요하다. 그 안에 현실을 바라보는 세계관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참사도 마찬가지이다. 10주년을 맞이한 이 참사를 아직도 해상 교통사고로 부르는 이는 세월호를 그 시점, 그 장소에 가둬두길 원하는 사람이다. 이 사건에서 가파른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을 밟으며 압축 성장한 한국사회의 단면을 찾는 이는 역사적 통찰을 구하는 사람이다. 세월호를 좀 더 보편적 시각에서, 기억저장소에 쌓이고 쌓인 자료와 기록을 공부하고 이해하고 나누고 가르쳐 그 의미를 승화할 방법은 없을까? 특정 시기에 이런 종류의 참사가 지구촌에서 광범위하게 증가했다면 이것도 인류세의 현상으로 볼 수는 없을지 생각해 본다.

박범순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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