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아시아' 아닌 '사회적 아시아'다

‘동아시아 민주주의와 한국의 역할’ 국제심포지움 김레베카l승인2007.07.09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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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민주항쟁 20주년 기념 국제심포지움 ‘동아시아 민주주의와 한국의 역할’이 지난 6월 29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성공회대 민주주의와사회운동연구소(민운연) 공동주관,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와 학술단체협의회 공동후원으로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타에서 열렸다.
6월 항쟁을 비롯해서 ‘제3의 민주화’ 물결에 동참한 역사를 지닌 동아시아 민주화의 특이점들을 되짚어보고 대만, 태국, 필리핀 등 민주화 정체 내지는 역전을 빚고 있는 각국 상황을 점검하는 자리였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라는 과제를 아시아 공동의 문제로 새롭게 맥락화해보자는 취지에서 기획된 이번 심포지엄은 또한 민운연이 9년에 걸쳐 총 3단계 프로젝트로 추진 중인 중점연구사업 과제와도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다.
민운연은 “민주적 전환 이후 민주주의의 역동적 전개과정과 관련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차원의 독점구조 해체와 그를 둘러싼 동학이 바로 민주주의 이행 혹은 공고화의 핵심적인 측면이라고 판단한다. 이행과 공고화 과정을 겪는 많은 민주주의의 불안정성과 위기는 바로 이러한 독점 구조의 변형적 재편과정의 진통에서 말미암은 것”라고 밝혔다. /편집자


아시아적 민주주의의 지표는 무엇인가
독재와 손잡은 자유주의·사회운동 활성화하는 군부

‘동아시아 민주주의 각국 사례(권위주의 및 재권위주의 사례)’와 그 뒤를 이은 종합토론은 사회운동과 민중혁명, 또는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민주주의 위기에서 자유주의 세력과 군부가 가지는 역할과 관련해 매우 흥미로운 ‘설전’이 진행됐다.

타이 쫄라롱껀대의 자일즈 지 웅파콘(Giles Ji Ungpakorn)은 지난 ‘9·19 쿠데타’가 태국 지배계급 이데올로기인 자유주의와의 결별이 아니었고 또한 민주주의 공간을 심각하게 협소화하면서 모든 개혁과정을 후퇴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러한 사태가 입증하는 것은 곧 중간계급이 진보적 세력이 아니라는 사실”임을 강조했다. 군부 및 민간엘리트 중 반민주적 집단들, 불만을 가진 재계지도자들, 중간계급, 민주주의자당(Democrat Party) 소속 신자유주의적 지식인과 정치인들로 구성된 쿠데타 주도세력을 비롯해서 소위 ‘탱크 자유주의자’(군부 쿠데타도 때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환영하는 반민주적 자유주의자)들의 일련의 잘못된 전제들도 신랄하게 비판했다. 민중, 특히 도시와 농촌의 빈민계층은 탁신 정부에 의해 지속적으로 ‘속아’왔으며 따라서 탁신 정부에 몰린 표는 제대로 된 대표성으로 해석될 수 없다는 식의 전제를 지적한 것이다.

국가별 다양한 민주화 과제

말레이시아 사라왁대의 앤드류 아애리아(Andrew Aeria)는 마하티르 이후 2004년 입헌민주제적 제반공약을 앞세워 2004년 집권에 들어간 바다위 정부는 실패했다고 결론지었다. 그 결과 정치적으로 퇴보 일로를 걷고 있는 말레이시아 현 상황을 간략히 짚었다. 버마를 대표한 버마연합민족회의의 아웅 모저(Aung Moe Zaw)는 폴란드와 필리핀의 사례를 예로 들어 강력한 권위주의 정부와의 대화, 때에 따라서는 이들의 ‘철수’를 이끌어낼 정도로 힘 있고 성숙한 사회운동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위한 대화는 오직 사회운동이 군부 또는 독재적 지배엘리트에 영향 미칠 만큼 충분히 강력하고 광범위할 때에만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레베카
6월 민주항쟁 20주년 기념 국제심포지움 ‘동아시아 민주주의와 한국의 역할’이 지난달 29일 열렸다.

흥미로운 논의는 이어진 종합토론에서의 필리핀대 전 총장 프란치스코 네멘조(Francisco Nemenzo)와 성공회대 조희연 교수의 발표에서 진행됐다. 네멘조는 민주주의 자체의 모호함, 그리고 “미국식 제도들을 회복하는 것만으로는 소수 과두제정치의 사회를 민주화시킬 수 없다. 민주주의를 향한 싸움은 과두제정치에 반대하는 투쟁과 절대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을 기본전제로 삼았다. 이어 “과두제정치를 더욱 뿌리 깊게 함으로써 국가가 사회적 개혁을 시행하지 못하도록 만든다”며 시민사회 팽창을 목표로 국가와 군부의 역할을 축소해야한다는 기존 좌파 자유주의자들 내지는 엔지오들의 주장과는 언뜻 상반되는 주장을 펼쳐 청중의 이목을 끌었다. 군대와 대립한 민중운동 대부분이 군대 내의 개혁 추세를 약화시키고 보수적인 군 명령 계통에 복종하도록 하는 결과만 초래했다는 것이다. 그는 마르코스 정권 시절 마르코스적 군 관리행태에 분개한 직업군인들이 결성한 ‘개혁과 군대운동’(the Reform and Armed Forces Movement, RAM)에 대한 상세한 분석을 통해 군 개혁세력을 사회운동에 결집세력으로 끌어들이는 베네주엘라 차베스적 전략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같은 군의 역할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은 즉각 참석자들로부터 다양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박은홍 성공회대 아시아NGO정보센터 부소장 등은 과두제를 청산할 만한 진보적 대안도 없는 상황에서 군 출신인, 그리고 쿠데타 시도경험도 있었던 차베스의 실험에 우려를 표시했다. 이에 네멘조가 민주주의 운동도 그렇지만 특히 군도 어떤 ‘단 하나의’ 역할상만 갖는 일원적인 조직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역설했고, 이를 받아 태국의 웅파콘이 ‘중간자로서의 국가, 중성적 군대’라는 기존의 관념을 뒤짚어 엎는 적극적 측면이 있는 만큼 네멘조의 생각을 좀 더 깊이 고민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화를 위한 군의 역할 논란

조희연·박은홍의 공동발제문 ‘아시아 민주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아시아 민주주의를 위한 새로운 과제들’은 더욱 흥미로웠다. 우선 민주주의 ‘안정화’를 공고화로 바라보는 군터(Gunther), 린즈(Linz) 등의 기존의 공고화론이 전제하는 ‘제도중심적 시각’을 해체했다. 이들은 공고화 과정을 오히려 “이행과정을 통해 도입된 민주주의적 제도의 형식 내에서의 지속적인 갈등과정”으로 규정할 것을 제안했다. “이행은 단순히 정치제도를 바꾸는 과정이 아니라 그 정치제도적 형식 속에 들어있는 기존의 구조적 관계를 바꾸는 과정이고, 이 과정에서 정치적 엘리트들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경제적 하위주체들이 역동적으로 참여하고 투쟁”하게 되는 탓에 갈등이 빈발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 기존의 구조적 관계를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독점화로 계열화하고 민주화과정을 이들 계열구조들의 탈독점화인 동시에 새롭게 활성화된 시민사회의 갈등적 분화와 헤게모니 각축전으로 정식화했다.

특히 결론부분에서 “사회화 없이 공고화없다”는 주장을 강력 피력하면서 ‘절차적 민주주의’와 ‘아시아적 민주주의’를 비판적으로 내실화하는 민주주의의 사회화를 요청했다. 민주주의가 일국 민주주의 틀을 넘어 범아시아적 차원으로 확대되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추세 속에 아시아 대륙 전체가 ‘자본의 아시아’로 재구축되어가고 있는 상황에 비추어볼 때 시의 적절한 요청이기도 했다. 이 ‘사회적 아시아’ 구축을 위한 실질적인 프로젝트로 이들은 사회적 최저선을 실체화하려는 노력, 그 노력을 향한 참여지향적 지역협력, 지속가능한 민주주의에 기여할 아시아 차원의 인권 레짐 내지 인권헌장 구축 등을 들었다.

이에 대해 토론자 중 하나로 나선 이성훈 포럼아시아 사무총장은 “취지는 좋으나 아시아 민주주의가 직면한 어떤 문제들이 있는지에 대한 분석, 곧 ‘아시아적 맥락’이 빠져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2007년 아시아의 네 가지 흐름을 신자유주의 세계화, 각 지역 테러-반테러 무력갈등, 이주노동과 이주 문제, 정보사회 문제로 각각 대별하면서 ‘사회적 아시아’ 프로젝트 요청이 정립되려면 이들 흐름들에 대한 보다 더 상세한 국가간, 지역간 분석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 지적했다.

또다른 토론자로 나선 권혁태 성공회대 교수는 ‘동아시아 민주주의와 한국의 역할’이란 표현 자체가 불러들이는 ‘고약한 자기중심주의 경향’을 꼬집었다. ‘사회적 아시아’ 프로젝트로 나아가기에 앞서 우리 자신의 민주화 경험이 아시아 내에서 어떤 언어로 평등하고 또 분석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가 더 시급한 과제로 다가서는 순간이었다.

“엘리트 민주주의와 군부독재로의 회귀”
대만·필리핀·인도네시아 사례

‘동아시아 민주주의 각국 사례(민주화 이행 사례)’에 발표된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사례들은 민중혁명과 선거개혁을 비롯한 정치구조 변화 이후 다시 금권정치와 정치폭력으로 회귀해버린 소위 ‘엘리트 민주주의’의 적나라한 현실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정실인사와 과열정쟁의 대만=대만 국립대 추윤한(Yun-han Chu) 교수는 소수 지지로 선출된 천수이벤 총통 정권의 불안정한 출발이 촉발시킨 여야간 과도한 정쟁과 국민-친민당 연정의 월권행사, 특히 민관협력 경제개발 프로젝트에 만연해있는 정실인사와 국영기업의 민영화 등의 문제를 끄집어냈다. 그는 특히 “2004년 과열 정치경쟁 이후 날로 민중 신뢰가 떨어지고 있긴 하지만 대만 민주주의의 미래야말로 중국사회에서 최초로 실시된 유일한 민주주의”라며 “대륙의 중국 공산당 지도부와 중국 인민에게 전시효과를 제공하는 주관적 상관성 측면에서 중요하다”는 점을 적극 피력했다.

◇정부비판 무력진압 필리핀=필리핀 국립대학의 테레사 엔카르나치온 타뎀(teresa S. Encarnacion Tadem)은 86년 1차 피플파워로 부상한 코라손 아키노 정권에서부터 군부지원을 업은 2차 피플파워로 집권 했지만 2001년 5월 에스트라다 대통령 복권을 요구하는 3차 피플파워로 결정적인 이미지 실추를 가져온 아로요 현 정권에 이르는 지난 30여년간의 필리핀 민주화 장정을 되돌아보았다. 과거 친군부 독재세력을 여전히 중요 파트너로 동반시킬 수밖에 없는 불안정한 엘리트민주주의의 총체적인 실패가 문제의 근본임을 역설했다. 국가 화해프로그램이 좌초되면서 행정부가 다시 군부와 결탁했고 우파개발프로젝트가 연이어졌으며 이에 따라 사회빈곤과 양극화도 더 심화되어갔다. 이런 현실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회운동가들에 대한 탄압도 날로 더 거세어져갔다는 것이다. 2007년 3월 15일 기준 833명의 좌파 운동가가 살해당했다고 카라파탄(Karapatan) 인권단체는 보고한 바 있다. 또한 2001년 이래로 정부에 비판적 목소리를 높이다 살해당한 저널리스트는 51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민주화 이행 부작용 인도네시아=싱가폴 국립대의 베디 레난디 하디즈(Vedi Renandi Hadiz)는 수하르토의 ‘신질서’ 붕괴이후 확립된 인도네시아 분권화 이면에 나타난 ‘예상 이외의 복잡성’을 보여주는데 발제 대부분을 할애했다. 직접지방선거의 경우 의도는 좋으나 “높은 선거비용 때문에 가장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약탈적 엘리트들의 지방권력에 대한 지배를 더욱 강화시키는” 예기치 않은 결과를 낳았다. 그 결과 지방 정치꾼들이 지방예산횡령, 불법징세, 불법사업(밀수, 불법벌채, 도박 등), 부정입찰, 기업으로부터의 상납 등 다양한 부정행위에 관여하는 ‘부패의 분권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중요한 질문은 이러한 (민주주의)공고화의 과정이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진정한 의미에서 ‘실력자들’ 또는 지배적인 지방유지들을 중심으로 보다 분명한 지방과두정치의 등장으로 이어질 것인가 하는 점이다. 탈권위주의 시대 태국과 필리핀의 경험을 보건대 이와 같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김레베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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