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에는 왜 거리에 태극기를 게양하면 안되나?"

현충일에 온 나라 집집마다 조기 게양하자고 하면서 거리에는 조기 게양하지 말라는 정부와 지자체 이영일 기자l승인2024.06.06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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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9회 현충일 추념식 포스터. ⓒ 국가보훈부

경기도의 한 지자체가 6월 6일 제69회 현충일을 맞아 『나라사랑 태극기 달기 운동』을 추진중이다. 공무원들을 포함해 각 가정에 조기를 게양할 수 있도록 널리 홍보한다는 내용이다.

이같은 현충일 조기 게양은 비단 이 지자체뿐 아니라 전국의 모든 지자체가 추진중인 사항으로, 게양 대상은 가정을 넘어 관공서, 기업, 단체, 추모 행사장 등 사실상 온 나라가 대상이다. 관공서와 공공기관은 6월 6일 하루 아침 7시부터 밤 12시까지, 각 가정과 민간기업, 단체등은 아침 7시부터 저녁 6시까지를 게양 시간대로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거리에는 이 조기를 달지 말라는 조항(아래 가로기)을 명시하고 있다. 이 지자체가 현충일에 가로기를 게양하지 말라는 근거는 「국기의 게양·관리 및 선양에 관한 규정」이다.

▲ 경기도의 한 지자체가 추진중인 현충일 태극기 게양운동 자료중 일부. ⓒ 이영일

온 나라 집집마다 현충일 조기 게양하라면서 거리에는 조기 게양하지 마라? 

이 규정 제9조에는 국가의 경사로운 날을 기념하는 3·1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 등에 가로기를 게양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즉, 현충일은 경사스러운 날이 아니므로 가로기를 달지 말라는 것.

3ㆍ1절 등 5개 날은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태극기를 게양하는 날로 지정돼 있다. 반면 현충일은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른 태극기를 게양하는 날이다. 현충일이 태극기를 게양하는 날은 맞지만 가로기는 안된다는 말이다.

행정안전부(아래 행안부)의 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현충일 자체가 경축을 목적으로 하는 날이 아니라 조의를 표하는 날이라서 관련 규정에 의해 가로기를 게양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현충원이나 조의를 표하는 행사장등에서 제한적으로 게양을 하도록 하고 있지 도로변에 가로기 게양을 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로기는 V자형과 배너형 두가지 형태가 있다. V자형은 일반 가정에서 게양하는 방식이고 배너형은 태극기를 세로로 세워 깃면을 늘여다는 형태다. 배너형은 조기 형태로 게양하기 사실상 어렵지만 V자형은 조기 형태로 게양이 가능하다.

▲ 가로기의 게양 방법. ⓒ 행정안전부

조의를 표하는 날에는 왜 거리에 태극기를 게양하면 안되나?  

문제는 경사스러운 날에는 가로기를 게양해도 되고 조의를 표하는 날에는 가로기를 달지 않아야 한다는 판단은 누가 무슨 근거로 정의했냐는 것이다.

태극기를 깃면의 너비만큼 내려 조기로 게양하는 것 자체가 이미 조의의 예를 표하는 것인데, 정부가 사실상 모든 가정과 학교, 관공서, 기업, 단체에는 호국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해 조기를 게양하라고 하면서 정작 정부가 온 나라 거리 곳곳에는 조기를 게양하지 말라는 것은 시각에 따라 다른 해석을 내릴 여지가 충분하다.

“호국영령에 대한 추모의 마음으로 정부와 지자체가 거리 곳곳에 조기를 게양하는 것이 더 당연한 게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행안부의 한 관계자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가로기라는 것이 경축의 목적이기 때문에 현충일에는 맞지 않다고 생각을 했고, 가로변에 조기처럼 그 밑으로(태극기를) 내려서 단다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고 도로변에 위험할 수도 있는 등 그런 상황도 다 고려가 된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또 “가로기는 꼭 경축할때만 게양한다는 발상 자체가 국민 정서하고는 잘 맞지 않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행안부 관계자는 “규정이 그렇게 되어 있다”고 답했다. “그 규정 자체가 조금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냐”는 질문에는 “가로기라는 것이 경축 목적이라고 인식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는 있는데 저희도 한 번 살펴 보겠다”고 말했다.

경축과 조의를 표하는 마음으로 태극기를 게양해야지 규정을 지키기 위해 게양하나

현충일에 가로기 (조기)를 게양했다고 해서 이것이 잘못됐다고 할 국민들이 있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현충일에 정부와 지자체가 앞장서 국가적으로 추모하고 거리 곳곳에 조의를 표하는 조기 가로기를 게양하는 것이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인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경축의 마음, 조의를 표하는 마음으로 태극기를 게양하는 것이지 규정을 지키기 위해 가로기를 게양하고 안하고 하는 것은 앞뒤 주객이 전도된 것은 아닐까.

경기도 의정부시에 거주하는 정민아씨(55)는 “조기 자체가 추모를 뜻하는 것인데 현충일에 거리곳곳에 조기가 걸리면 국민들이 더 추모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겠냐”는 입장을 보였다.

서승호 한국청소년정책연대 사무총장은 “현충일에 가로기를 걸지 말라는 말은 처음 들었다. 현충일에도 당연히 태극기가 거리에 게양되는 줄 알았다. 그렇지않아도 태극기 게양률이 계속 떨어지는 판국에 현충일에 거리 곳곳에 조의를 표하는 태극기가 걸리면 오히려 많은 청소년과 시민들이 추모의 마음을 갖지 않겠나 싶다"고 말했다. 

이영일 기자  ngo2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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