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가 나오면 좋지만’이라는 잘못된 말

이필렬 방송통신대학교 명예교수l승인2024.06.23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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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1월 당시 대통령 박정희는 연두 기자회견에서 포항에서 석유가 발견되었다는 소문을 사실로 확인해준다. 이로 인해 온 나라는 걷잡을 수 없는 흥분 상태에 빠졌다. 신문은 장밋빛 일색의 기사로 채워졌고, 주가는 연일 폭등했다. 당시 대학 1학년을 마친 나는 사우디아라비아나 쿠웨이트 같은 국가들이 석유 덕에 잘산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으며 자랐고 1973년 말에 갑자기 들이닥친 1차 오일쇼크가 기억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한편으로 독재자의 발표가 미심쩍기도 했지만 산유국의 국민이 된다는 기대가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석유에 대한 막연한 ‘환상’은 1980년 5월 이란 혁명정부의 초대 대통령 아볼하산 바니사드르의 혁명일기를 읽는 동안 사라졌다. 일기에서 그는 독재자 팔레비 시대 이란의 경제상황 분석을 통해 석유 의존이 한 나라 경제에 어떻게 “중대한 파멸적인 결과를 발생”시키는지 보여주고, 마지막으로 오일머니 없이 “생활할 수 없게 된다면 (…) 석유 없는 시대에는 절대로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주간조선 1980.5.11). 나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고, 그후 그전과 전혀 다른 시각으로 석유를 바라보게 되었다.

바니사드르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석유가 나오지 않은 것은 오히려 ‘축복’이었다고 할 수 있다. 만일 1976년 박정희의 발표대로 포항 지역에서 석유가 쏟아져 나왔다면, 우리나라는 석유나 가스를 풍부하게 가지고 있는 노르웨이, 네덜란드, 베네수엘라 중 독재와 쿠데타의 반복 속에서 국제 원유가격 등락에 따라 경제와 정치가 요동치는 베네수엘라와 같은 상태가 되었거나, 독재에서는 벗어났더라도 네덜란드 병(dutch disease)을 극복하지 못하고 허덕이는 처지가 되었을지 모른다.

수출할 만큼 석유가 많이 나오지만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 국가는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대부분 ‘석유의 저주’(oil curse)에 걸려 신음한다. 경제가 과도하게 석유에 의존하게 되어 산업발전이 저해되고, 석유를 차지하려는 국내외 세력들의 각축으로 사회가 불안정해지는 것이다. 나이지리아, 베네수엘라, 그리고 중동의 여러 국가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렇다고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는 선진화된 국가라고 해서 석유가 반드시 ‘축복’이 되는 것도 아니다.

북해 유전을 나눠 가진 영국, 네덜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중에서 앞의 두 나라는 석유와 가스가 경제와 사회의 발전이 아니라 그것을 가로막거나 지체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네덜란드 병’이라는 말은 이러한 현상을 가리키는 것이다. 반면에 노르웨이는 석유 덕분에 수십년 안에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렇게 큰 차이가 난 이유는 민주주의적 합의, 에너지 정책 면에서 달랐기 때문이다.

노르웨이는 처음부터 석유가 가져오는 돈을 “질적으로 더 나은 사회” “더 큰 평등”을 위해 사용하기로 하고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었지만, 영국은 새처 정부에서 북해석유회사를 민영화하고, 석유로 얻은 돈은 대부분 세금—특히 부자의—을 깎아주는 데 쓰며 ‘탕진’해버린 것이다. 영국의 어느 수상이 ‘신의 선물’이라고 칭한 북해 석유는 노르웨이에게는 ‘선물’로 작용했지만 영국에게는 ‘저주’로 작용한 것이다.

석유에 대한 상이한 태도는 에너지 전환의 추진에서도 극명한 차이를 가져왔다. 노르웨이는 석유가 쏟아진 후에도 재생가능 에너지 생산량을 꾸준히 늘려 전체 에너지 소비에서 그 비중을 70%로 유지해왔고, 1990년부터 시작한 전기자동차로의 전환도 전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다.

덴마크는 석유 수출국인데도 1970년대 말부터 일찌감치 재생가능 에너지 개발에 나서 현재 에너지 소비의 43% 이상을 풍력 등에서 얻은 에너지로 충당하고 있다. 반면에 영국은 덴마크에 못지않게 풍력자원이 풍부하지만 석유 생산량이 크게 줄어든 2010년경에 와서야 풍력 등 재생가능 에너지 개발에 적극 나섰고, 현재 그 비중은 19% 정도이다. 네덜란드도 영국과 비슷한 시기에 풍력과 태양 에너지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그 비중은 2022년 14%로 유럽연합 국가 중에서 꼴찌에 가깝다.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가 화석연료에서 벗어나 에너지 전환과 탄소중립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은 이제 거의 상식이 되었지만, 석유는 아직도 화석연료의 중심 위치에서 전세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조금 길게 보면 교통, 클라우드 컴퓨팅, 건물 냉난방 등 여러 부문에서 빠르게 늘어나는 전기 사용으로 석유 소비는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반면 전기 소비는 크게 증가한다. 2050년 전세계의 전기 소비는 2020년 소비의 2배에서 3배가 될 것이고, 이것을 대부분 재생가능 에너지가 공급하게 되리라는 것이 세계 여러 에너지 연구기관의 전망이다. 그때가 되면 석유는 연료로서의 이용가치는 거의 사라지고 주로 소재의 원료로만 이용될 것이다. 이에 따라 석유 소비와 생산량도 크게 줄어들게 된다. 석유의 미래가 밝지 않은 것이다. 얼마 전 대통령은 크게 축하할 일인 것처럼 직접 나서서 포항 영일만에 다량의 석유가 매장되어 있다고 발표했지만, 그럴 일이 결코 아닌 것이다.

현 정부의 민주주의 파괴와 에너지 정책을 고려하면, 그들이 기대하듯 우리나라에서 쏟아져 나올지 모르는 석유는 나라를 ‘석유의 저주’에 걸리게 할 것이다. 석유와 원자력이 에너지 수급의 중심을 차지할 것이고, 이미 시급을 넘어 절박해진 태양 에너지와 풍력의 개발은 지금보다 더 뒤로 밀려날 것이다. 공업제품은 RE100 제한이나 탄소국경조정제도에 걸려 수출길이 막히고 ‘전천후’에 가까운 한국의 제조업은 경쟁력을 잃어갈 것이다. 그리고 한국은 기후위기를 조장하는 국가로 비난받고 조롱받을 것이다.

대통령의 발표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실패를 바라는가, 산유국 되는 게 싫은가” 같은 여당의 비난을 의식해서인지 ‘석유가 나오면 좋지만’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그러나 나는 그들과 달리 석유가 나오면 안 된다고 분명하게 말하겠다. 그 ‘중독성 강한’ 석유는 지금 당장 온 나라가 힘을 합쳐 추진해야 하는 에너지 전환, 국가의 미래를 결정할 에너지 전환을 저 멀리 내던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필렬 방송통신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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