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국민을 하고 싶겠냐”

동맹외교의 회오리와 글로벌 중추국가론의 민낯 이정철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l승인2024.06.27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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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체제가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으로 진입하고 있다. 소위 반서방 추축(axis of upheaval)의 연대가 전쟁 가능한 세상을 열었고 그 와중에 미중간 경쟁, 즉 강대국 간 세력전이의 양상은 더 격해지고 있다.

권위주의 거버넌스 모델을 수출하는 중국에 맞선다는 명목으로 단결하고 있는 민주주의 진영의 속내는 더 복잡하다. 서방 각국에서 단순히 극우라고 규정하기만은 어려운 문화적 정체성이 확산되고 이에 기반한 새로운 정치 스펙트럼이 펴져나가고 있다.

각국의 정치 내전이 격해지는 것과 동시에 국가주의자들의 이념이 강화되면서 글로벌 자유주의에 근거해온 외교와 연대는 그 뿌리부터 흔들리는 중이다. 세력전이에 직면한 기존 패권국 미국이 일방적인 공공재 생산의 의무와 비용 부담을 꺼려하기 시작한 것은 이같은 흐름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기존 글로벌 질서의 수혜국들은 탈자유주의적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있다. 소위 ‘글로벌 사우스’ 현상의 등장이다.

미국은 도전국 중국을 봉쇄하기 위해 정치, 군사, 경제, 문화적 연대의 논리를 강화하고 있고, 지역 패권국에서 글로벌 패권국으로 성장하였음을 더이상 숨기고 싶지 않은 중국 역시 뒤질세라 글로벌 담론 경쟁에 나서고 있다.

유럽에서는 우끄라이나전쟁으로 나토(NATO)의 확장이 자연스레 이루어졌지만 인도·태평양 지역의 경우 매우 인위적으로 안보구조의 재편이 진행 중이다. 이에 따라 인태 지역에서 기존의 바퀴살 형태(hub and spoke)의 태평양 동맹구조는 격자형(lattice–like architecture)으로 재구조화되고 있다. 격자형 구조화는 안보구조의 통합화 과정을 통해 군사동맹의 계층화를 추구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이 과정에 린치핀(lynchpin, 바퀴축 고정핀)과 코너스톤(cornerstone, 주춧돌)으로 각각 호명되었던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의 관계는, 미일동맹을 린치핀이자 코너스톤으로 격상시킨 새로운 형태의 지역 허브를 보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새 구조하에서 한국이 지역역할론을 고집하면 대만, 필리핀처럼 한미동맹은 지역 단위의 하위동맹 형태로 편입될 것이고, 그것이 아니라 ‘글로벌’ 역할을 내세우면 사실상 북중러라는 반서방 추축에 맞서는 전초기지로서 글로벌 리스크를 고스란히 감당하는 역할을 하게 생겼다. 현 정부의 글로벌 중추국가론의 입장에서 이같은 양자택일의 상황은 이를 의도하지 않았다면 의문의 1패이거나, 의도했다면 안보국가로의 레짐 전환인 셈이다.

경제적으로는 반도체, 배터리 등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제조업 본국회귀(reshoring)와 우방국 간 공급망 구축(friend-shoring)에 따라 각국의 경제구조가 재편되고 있고, 이에 따라 IRA법(인플레이션감축법) 제정 이래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해온 한국 기업의 동향을 보고만 있는 한국인들의 속내는 불안하기만 하다.

새로운 기회가 오기보다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의 희생양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편한 진실 앞에 동분서주하는 인상이다. 그러다보니 교역국가가 아니라 자원국가로의 전환에 눈을 돌리게 되고 산유국 꿈을 향한 유혹 앞에 대규모 투자금을 퍼붓게 되었다. 설익은 ‘글로벌’ 역할론의 파장이 생각보다 크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이 와중에 한국정부는 북한과 러시아의 밀월을 목도하고 있다.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높은 수준의 군사동맹이 복원됨으로써, 탈냉전 이래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머리에 이고 사는 꼴이 되었다.

러시아는 중국과는 차원이 다른 글로벌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는 나라이다. 지난 30년 중국이 미중협조체제 아래에서 능숙하게 북한을 압박하고 한반도를 관리하는 외교를 취해왔지만, 이제 북러동맹 복원으로 그런 유의 세상이 끝났음을 김정은은 선언하고 싶은 것이다. 어찌 보면 핵보유국 북한보다도 더 무서운 현실이 도래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걱정스러운 것은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 외교가 새로운 환경에 대한 경고나 구조적 대응 혹은 판을 뒤집는 ‘발상의 전환’이 아니라 관성적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외교관은 우끄라이나에 공격형 무기를 수출하겠다며 러시아에 경고장을 날리고, 어떤 전문가들은 북러관계 진전을 불쾌하게 보는 중국이 조만간 북한 압박에 나설 것이라는 절망적 기대를 확산시킨다.

희소 정보에 근거한 논리는 그 희소성 때문에 우리 눈과 귀를 솔깃하게는 하지만, 지금과 같은 엄중한 현실의 무게는 희소 정보에 좌우될 만큼 가볍지 않다. 정부 당국과 결합한 황색저널리즘이 한반도 문제를 망쳐온 지난 20년을 성찰할 때 쉽게 찾을 수 있는 교훈이다.

중국을 굳이 반서방 추축으로 분류하지 않더라도, 미중간 경쟁과 대결은 장기적이고 전략적이다. 워싱턴 일각에서는 심지어 러시아를 끌어들여서라도 중국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돌고 있다. 미국 대중의 중국에 대한 입장이 이러할진대, 중국이 북중관계를 희생시키면서까지도 미중관계, 한중관계 회복을 꿈꾼다고 해석하는 것은 과잉의 과잉을 넘어 망상에 가깝다.

중국이 한국에 대한 접근을 강화한다고 해서 그것이 대북한 압박이나 북한 비핵화를 의미하는 것도 아님은 지난 한중일 정상회담 성명에서 확인한 바 있지 않은가? 한중관계는 장기적 전망하에서 진행되는 중국의 대한국 매력공세(Charm Offensive) 에 다름 아니라는 점을 잊어서는 현실주의 외교가 아니다.

결국 장거리 탄도미사일 실험, 순항미사일 배치 등과 같은 대형살상무기 외에도 오물 풍선, 드론 침투 등과 같은 차원이 다른 북한의 도발 앞에 우리 정부의 대응능력은 점점 취약해지고 있다. 확장억지와 참수작전으로 무장한 한국의 군사적 대응능력이 약하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그 강력한 대응이 불러일으키는 회오리의 파장을 스스로가 관리할 능력이 없다는 점에 더 큰 불안의 이유가 있다.

정부는 허구한 날 우리의 대응능력은 완벽하다며 반격능력만 과시하고 있지만, 한미동맹의 대응과 보복능력에 의구심을 품는 국민은 아무도 없다. 문제는 국민들이 편안하게 경제생활에 전념할 수 없는 환경을 우리 정부가 선제적으로 만들고 있는가라는 의구심이 사라지지 않는 데 있다.

러시아와 북한의 조합이 가져올 불길한 미래는 러시아를 겁박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요 중국의 뒤꽁무니를 쳐다본다고 해소될 문제도 아니다. 오물 도발에 흥분해 9·19 군사합의라는 안전벨트를 풀고 폭주족이 되는 순간 비례성을 상실한 비이성에 대한 비난을 피할 길은 없다. 침착하고 냉정하게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한미일 협조체제 운운하는 키시다 총리가 북일협상에 나서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북한과의 경쟁의식에 빠진 지도자 중 평화정착에 성공한 대통령을 본 적은 없다. 더 냉정해져야 한다. 외교는 초보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냐”고 역정을 내기 전에 “누가 국민을 하고 싶겠냐”는 저잣거리의 비아냥에도 우리 외교의 갈 길을 찾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정철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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