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터가 억압으로 다스려지면…

배움을 주제로 본 <도덕경> “새롭네” 백운광l승인2009.03.03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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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도> 파멜라 메츠 풀어 씀, 이현주 옮김, 민들레, 2004.


비어있음
바퀴살이 모여 바퀴를 이룬다. 그러나 / 수레를 움직이는 것은 바퀴 복판에 있는 구멍이다. // 질흙으로 항아리를 빚는다. 그러나 / 항아리를 쓸모 있게 하는 것은 텅 빈 속이다. // 학교 건물을 이루는 것은 건축 자재들이다. / 그러나 우리로 하여금 배울 수 있게 하는 것은 / 교실의 비어 있는 공간이다. // 학생들은 틀과 구조물로 배운다. / 그러나 비어 있음과 침묵 또한 / 배우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혹시 낯익은 말인가? 파멜라 메츠 Pamela K. Metz라는 이의 글을 이현주 목사가 옮겨 놓은 글이다. 메츠는 ‘배움’을 주제로 노자의 <도덕경> 81장을 풀어 썼단다. 위 인용문은 그 중에서 11번째 글이다. 서양 사람이 소개한 <도덕경>을 접하기는 처음이다. ‘참 자유롭다’는 게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저자인 메츠나 옮긴이 이현주 목사나.

교육이 걱정스럽다면

<도덕경>에 관한 책을 많이 접하지는 않았으나 이런 소개는 처음이다. 위 인용문은 그래도 원문에 가깝다. 이에 해당하는 <도덕경> 구절을 다른 책에서 찾아보았다. 있음이 이로울 수 있는 것은 없음이 쓸모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三十輻共一轂. 當其無有車之用. 埏埴以爲器. 當其無有器之用. 鑿戶牖以爲室. 當其無有室之用. 故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
삼십폭공일곡. 당기무유차지용. 연식이위기. 당기무유기지용. 착호유이위실. 당기무유실지용. 고유지이위리, 무지이위용.

하나 더 소개한다.

본보기
배움터가 너그러이 운영되면 / 학생들은 관대해지고 정직해진다. / 배움터가 억압으로 다스려지면 / 학생들은 까다로워지고 심술궂어진다. // 교사가 힘을 구하여 더 많은 힘을 부리면 / 그만큼 학생들은 반항하게 된다. / 학생들을 행복하게 만들려고 일삼아 무엇을 한다면 / 그것은 불만을 위한 기초를 놓는 것이다. / 학생들을 정직하게 만들려고 무엇을 하면 / 그것은 속임수를 위한 기초를 놓는 것이다. // 그러기에 슬기로운 교사는 / 자신의 힘을 부리려 하지 않고 / 본보기가 되는 것으로 만족한다. / 자기 목적을 분명히 세우되 그것을 밀어붙이지 않는다. / 똑바로 나아가되 융통성이 있으며 밝되 눈부시지 않다.

其政悶悶, 其民淳淳, 其政察察, 其民缺缺, 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 孰知其極, 其無正邪, 正復爲奇, 善復爲妖, 人之迷, 其日固久, 是以聖人, 方而不割, 廉而不劌, 直而不肆, 光而不燿.
기정민민, 기민순순, 기정찰찰, 기민결결, 화혜복지소의, 복혜화지소복, 숙지기극, 기무정사, 정복위기, 선복위요, 인지미, 기일고구, 시이성인, 방이불할, 렴이불귀, 직이불사, 광이불요.

政을 배움터로, 民을 학생으로 옮겼다. 한자 원문은 정치가 관대하면 백성이 순박해지고, 정치에 술수가 많으면 백성이 교활해진다고 말하며 세상사의 상대성을 언급하는 구절이라 한다. 이러한 상대성을 고려하여 어느 한 가치를 절대화시키지 말자는 의미라 한다. 메츠는 이를 배움의 장으로 옮겨 전혀 새로운 내용으로 창조하며 그 뜻을 유지시킨다. 그러면서 교육 현장에서 고민해야 할 점이 어디에 있는지, 화들짝 놀라게 한다.

여전히 배우는 것과 가르치는 게 어렵다. 부족한 부분에 무언가를 채워주는 게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배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배우고자 했다. 돌이켜 보니 무언가를 가르쳐 주어 그 이의 부족함을 온전히 채워준 적이 있는지, 무언가를 배워서 나의 부족함을 채운 적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메츠와 이현주 목사의 글 때문이다.

비어있음과 침묵

혹시 배우고 가르치는 것은 부족함을 확인하고 그 부족함을 더욱 넓히는 과정이 아닐까? 그리고 그 부족함 덕분에 넉넉함이 생기는 게 아닐까? 그래서 더 넓은 것을, 더 많은 것을 찾아나가고 가꿔나갈 수 있는 게 아닐까?

<배움의 도>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교육이 걱정스럽다. 아이들이 걱정스럽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해야할 지 막막하다. 저자와 옮긴이의 고민은 그러한 막연한 걱정에 형체를 주고 어디서 시작해야할 지로 이끈다.

<배움의 도>는 색다름이 있다. 노자의 <도덕경>은 많은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는 책이다. 하지만 그 책이 전하는 자유로움만큼 자유롭게 이해하기는 두렵다. <배움의 도>는 이를 풀어놓는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데 우리 글을 적절하게 활용하지 못한다면 안타깝다. 나 역시 그런 학생이 없기를 바란다. 그래서 ‘기초학력이 미달’인 학생이 ‘기초 수준의 학습능력’을 갖도록 하려는 노력에 적극 동조하고 싶다. 제발 그럴 수 있게 해주길 바란다. 괜히 속이는 걸 조장하지 말고…. 평가하기 위해 가르치는 게 아니다.

백운광 두리미디어 주간

백운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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