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솜털

1994년부터 다니는 만화책방이 있습니다. 제가 다니는 책방은 어디든 모두 열 몇 해씩 단골입니다. 조금 있으면 제가 알고 지내는 책방과 사람들하고는 스무 해 넘게 ‘사귀는’ 셈입니다. 그저 책 몇 권 사들고 몇 마디 안부를 나눌 뿐이라고 하여도, 머리가 허옇게 되는 모습을 함께 보는 사이입니다. 책방집 아이들은 저와 비슷한 학생이었다가 시집장가를 가서 아이를 키우기도 하고, 혼자 살던 책방집 아저씨가 혼인을 하여 아이를 낳아 어느덧 중학생이 되는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1994년부터 다니는 만화책방은 서울 홍익대 앞에 있는 ‘한양문고’인데, 만화 좋아하는 이들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 곳입니다. 그동안 이곳에서 만화책을 사느라 쓴 돈만 해도 몇 백만원이 됩니다. 다른 헌책방이나 새책방도 마찬가지이고요. 어제는 모처럼 홍대 둘레에서 일이 있기에 살짝 들러 몇 가지 만화책을 새로장만했습니다. <오타쿠의 따님> 1권, <도색서점에 어서 오세요>, <첫사랑 한정> 2권을 장만했는데, 오자와 마리 님이 새로 그리고 있는 <민들레 솜털>도 1권과 2권을 장만합니다. 지난달에는 <노다메 칸타빌레> 21권과 <피아노의 숲> 15권도 장만했습니다. 어제 보니 <아빠는 요리사>가 자그마치 101권을 냈더군요. 이 만화도 ‘언젠가는 보고야 말 테다’ 하고 생각하고 있지만 권수가 어마어마해서 엄두를 못 내고 있는데 101권이라니. 100권이 넘는 책을 다 보려면 눈이 빠지겠습니다.

오자와 마리 님 만화는 몇 해 앞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을 우연하게 보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림결이 좀 어설프다고 느꼈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어떻게 바라보고 부대끼느냐에 따라서 아름다울 수 있고 미울 수 있음을 느끼도록 이끌어 주어서 그지없이 반가웠고 눈물을 쏙 뺐습니다. 그러나 오자와 마리 님 만화를 뒤늦게 알았기 때문에 <니코니코 일기>는 그만 장만하지 못한 가운데 판이 끊어졌습니다. ‘니코니코’는 일본말이고, 우리 말로 옮기면 ‘생글생글’이라더군요.

오자와 마리 님 만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거의 ‘한식구’인데, 이 한식구는 또 ‘외사람’이곤 합니다. 남편이나 아내나 어머니나 아버지가 없는 외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이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어둡지 않습니다. ‘생글생글’이라 할 만큼 밝습니다. 따뜻합니다. 푸근합니다. 사랑스럽습니다. 카루베 준코 님이 그린 <당신의 손이 속삭일 때>와 마찬가지라고 할까요. 아픔이 있어서 사랑이 더 단단해지고 깊어진다고 할까요. 이참에 나온 <민들레 솜털> 2권을 읽는데, 일찍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죽기 앞서 어린 아들한테 “언젠가 토마가 어른이 되면 저 민들레 솜털처럼 자유로운 세상으로 날아가겠지. …가도 돼. 미국이든 아프리카든 토마가 원하는 곳이라면.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새로운 꽃을 피우는 걸 엄마가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토마가 어디 있든 엄마는 언제나 토마를 응원할 거야. 그걸 잊지 마.”(15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길을 걸으며 읽다가 눈물이 찔끔 납니다. 다시 만화책방으로 돌아가 한 권씩 더 삽니다. 그리고 이날 저녁에 만난 소설쓰는 공선옥 님한테 선물로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