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펜하겐의 소크라테스-키에르케코르

철학여행까페[62]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l승인2009.03.03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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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해 보라. 그러면 후회할 것이다. 결혼을 하지 말라. 그래도 후회할 것이다.”

결혼에 대해 키에르케코르가 했던 말로 자주 인용되는 구절이다. 이 말을 진짜로 키에르케코르가 했는지 아직 확인해 보지 못했지만, 그가 결혼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한 것은 사실이다.

이동희
키에르케코르 초상화.
그는 24살 때 자기보다 10살이나 어린 레기나 올젠을 보고 첫 눈에 사랑에 빠져 버렸다. 3년 뒤에 그는 그녀와 약혼을 했다. 그러나 그는 결혼을 앞두고 자신이 도대체 한 여자를 자기에게 묶어 놓을 수 권한이 있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는 결혼이란 두 사람이 서로에게 절대적으로 진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창가에 갔던 사실 고민

그에게는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일이 있었다. 그가 사창가에 간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커다란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그곳에 있는 여자와 은밀한 관계도 맺지 못하고, 오히려 그녀의 조롱만 샀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과오를 솔직하게 고백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는 약혼녀를 다시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약혼을 파기할 결실을 했다. 그는 바람둥이처럼 타락한 행위를 해서 레기네로 하여금 약혼 파기를 선언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그녀를 다시 자유롭게 해 주기 위해서 못된 놈으로, 그것도 가능한 한 최고로 못된 놈으로 행세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나 레기네는 속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진심을 알고 견딜 수 없이 괴로워했다. 결국 13개월 후에 그녀는 파혼에 동의했다. 파혼 후 그는 도망치다시피 코펜하겐에서 베를린으로 갔다.

이동희
키에르케코르의 약혼녀 레기네 올젠.
베를린에 도착해 그는 겐다르멘마르크트 가까이에 방 하나를 구해 그곳에서 은거해 산다.베를린은 그 당시 헤겔 철학이 지배하고 있었고, 헤겔철학에 대한 대항마로서 셸링이 강의를 하고 있었다. 그는 베를린에 머물면서 극장을 가거나 셸링의 강의를 수강했다. 당시 셀링은 <신화와 계시의 철학>에 관한 셸링의 강의를 했는데, 이 강의를 통해 그는 헤겔철학체계에 대한 비판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는 레기네가 아프다는 말을 듣자 1842년 3월에 코펜하겐으로 서둘러 돌아갔다. 코펜하겐으로 돌아 온 후 그는 베를린에서부터 집필했던 작품들을 포함해 신들린 듯 집필에 몰두했다. 물론 이러한 집필에는 레기네가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이때 나온 대표적인 작품이 익명으로 출판한 <이것이냐, 저것이냐>라는 작품이다.

<이것이냐, 저것이냐>이라는 작품을 보면, 이 작품은 철학적 논문이 아니라 일기메모, 편지들, 에세이들 그리고 격언들로 구성된 두꺼운 에세이집이라는 느낌이 든다. 오늘날의 포스트모던적 소설가도 따라 갈 수 없을 정도로 이 작품은 소설적으로도 훌륭하게 구성되어 있다.

키에르케코르는 니체에 못지않게 문학적인 필치로 철학 작품들을 썼다. 니체가 남성적이고, 선이 굵은 선언적인 글을 썼다면 죄렌 키에르케코르는 여성적이고, 가늘고도 섬세한 내면적인 글을 썼다.
그런데 키에르케코르는 왜 이런 문학적 형식의 틀로 철학을 하려 하는 것일까?

이동희
키에르케코르의 아버지.
키에르케코르는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진리에 불신의 눈길을 보내면서 진리를 주체인 ‘나 자신의 실존’ 속에서 파악하고자 했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독일 관념론 철학에 대해 불신의 눈길을 보냈다. 아무리 훌륭한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가 있다고 그것을 주체인 개인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아무리 헤겔철학과 같이 역사와 자연을 아우르는 거대한 체계라 할지라도 그것이 개인에게 아무런 변화도 주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닐까?

진리가 존재한다 해도 중요한 것은 그러한 진리를 자신의 것으로 삼아서 자신의 실존 속에서 구현시키는 것이다. 진리는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하는 그런 사람에게만 생생하게 존재한다.

진리를 아는 자, 누구?

“나에게 진리가 될 수 있는 그런 진리를 발견해야 하며, 내가 그것을 위해 살고 죽을 수 있는 그런 이념을 발견해야 한다.”

그는 이러한 주장과 더불어 “주체성이야 말로 진리다”라는 입장을 개진한다. 이런 점에서 그는 철저하게 자기의 실존과 관련해 진리를 탐구하고 파헤치고자 했다. 무엇보다 그의 철학의 대상은 자신의 ‘실존’이었다. 그는 자신의 실존에 대한 진지한 관찰과 반성을 담은 책들을 펴냈다. 그래서 그의 책들은 오히려 문학작품의 형식을 띠고 있다.

그는 독자에게 자기의 생각의 결과를 전달해 주고자 했다. 그러나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가르칠 수 없거나 배울 수가 없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선택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문학적인’ 철학 형식을 선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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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의 키에르케코르.
키에르케코르는 기존의 철학책처럼 진리를 논증하지 않고, 문학이라는 비간접적인 방식을 통해 진리를 전달하고자 했다. 그는 이것을 ‘실존의 고지(告知)’라고 표현했다. ‘실존의 고지’는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삶의 문제에 대해여러 가지로 생각하고 결단을 하게 한다. 그는 노련한 극작가처럼 여러 가지 삶의 입장들과 여러 가지 역할들을 나누어 보여주며 독자에게 결단의 근거를 제시한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라는 책 속에서 그는 실존의 세 단계, 심미적, 윤리적, 종교적 단계를 보여준다. 심미적인 단계의 인간은 주어진 대로 외적인 현실에 만족하고, 감각적으로 즐기며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단계의 대표적 인물이 돈 쥬앙이다. 그러나 그러한 삶은 오래 지탱되지 않고, 여건이 따라주지 않을 때 그러한 삶에 대해 절망하게 된다.

실존의 3가지 단계

윤리적 단계의 인간은 심미적 단계를 벗어나 개별자가 자신의 삶을 의식하고 외적인 것으로부터 독립성을 획득하고자 한다. 또한 삶의 진지함과 연속성을 유지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 윤리적 단계에서도 인간은 절망을 느낀다. 왜냐하면 인간은 그러한 윤리적인 이상적 삶을 살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종교에서는 이것을 원죄라고 표현하는데, 윤리적 인간은 이러한 것을 깨닫고 세 번째 단계인 종교적 단계로 도약한다.

종교적 단계에서 인간은 자신을 죄인으로 인식하고, 자신의 힘만으로 죄에서 해방될 수 없고 또한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종교적 단계의 인간은 신앙 안에서 무조건적으로 신에게 의지한다.

키에르케코르는 이런 실존 단계들을 제시하면서 각 개인에게 어떤 삶을 실현할 지 스스로 선택하라고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다음 호에 계속>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구스타프 슈바브 그리스로마신화\' 역자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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