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장’이 준 교훈

[강상헌 칼럼] 강상헌l승인2009.03.03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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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의 국민장’이라고 한 방송은 표현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는 참 여러 가지를 일깨웠다. 살림 어렵고 세상의 강박에 날로 쪼그라드는 민초(民草)들 눈물바람 방아쇠 당겨주는 카타르시스 효과까지도 경이로운 것이었다. 넘어지니 그 나무, 얼마나 키 크고 뿌리 깊은 줄 새삼 알게 됐다. 그 그늘 또한 얼마일까?

민초들의 눈물바람 방아쇠 당기다

신체 아름답게 간직하여 선종(善終) 후에도 각막이식으로 두 사람에게 사랑의 빛을 나누어 주셨다는 얘기까지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원칙을 지키기 위해 대통령의 화환까지 되돌려 보냈다는 등의 많은 미담과 기화(奇話)가 생산 유통되어 매스미디어의 존재가 어느 때보다 훨씬 커 보인 시기이기도 했다.

다른 사제의 경우와 매한가지로 장례가 봉행된다는 발표, 묘지 면적까지도 일반 사제와 같다는 보도를 접하고 천주교회의 세상인식이 좀 다른 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보일락 말락하게 보도된 다음 내용이 참 감동적이어서 다시 생각해볼 주제라고 따로 적어 두었다.

성직자 묘역이 머지않아 모두 차게 되는데 그 때 유골을 수습하여 화장을 한 후 납골당에 모신다는 것이었다. 이 부분에는 국가적 차원의 문제로까지 떠오른 토지문제의 해결을 위해 더는 새 묘역을 조성하지 않고 화장문화 확산에 동참하기로 한 것이라는 설명이 붙어있었다. 후손들의 안녕을 위해 산림훼손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겠다.

전국적으로 묘지가 2천여만 기, 서울시 면적의 1.5배를 차지한다는 수치나 수도권 북한강 남한강 유역 일대에 들어섰거나 공사 중인 엄청난 규모의 공원묘지들을 본다면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고 김수환 추기경과 천주교회가 가진 현실 인식이 얼마나 적절한 것인가를 느낄 수 있다.

화장의 방식을 선택하는 장례가 점차 늘어난다고는 하지만, 화장 후에도 거창한 석조 납골당에 유골을 모시는 경우가 많아 그 효과가 생각만큼 크지 않다는 걱정도 나온다. 그래서 수목장(樹木葬)이나 산골(散骨)방식과 같은 친환경적 장례가 서둘러 연구되고 있다고는 하나 예상되는 ‘묘지대란’의 가능성을 잠재우기는 무리라고 한다.

화장문화 확산 동참 효과도

우리 정계의 한다하는 인사들에게 천주교의 원칙에 따른 잣대를 들이댄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많이 궁금하다. 선거를 앞두고 선조들 묘를 이장(移葬)하는 얘기는 여의도 참새들의 단골 화제다. 어떤 풍수가 제일 용했다더라 하는 쑥덕공론의 짝이다. 이들의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 풍수지리 ‘연구’와 드넓은 호화분묘는 물론 선조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국민을 위한 것은 더군다나 아니다.

‘옳은 일’ ‘사회를 위해 모두가 해야 할 일’이라며 국민에게는 전통의 포기나 욕망의 절제 등 ‘사실상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정치다. 여론을 일으키고 법을 만들고 강제한다. 그러나 정작 정치의 주체들은 이를 지키지 않는다. 또 이런 이율배반을 혹자들은 ‘미덕(美德)’으로 풀이하기까지 한다. 어디 장례뿐일까?

참 신기한 노릇은 선거구민에게는 이런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신문 방송이 물 샐 틈 없이 지키고 있는 것 같으나 어찌된 노릇인지 소문으로 끝난다. 또 알려져도 이런 식으로까지 ‘힘을 키우는’ 인물에게 우리 유권자들은 표를 내준다. 아무리 봐도 ‘나를 위해 일할 것 같지 않은 인물’을 선택한다. 그리고는 “국회의원이라는 사람들, 뽑아 주니 맨 날 쌈질이나 하고…” 타령이다. 유권자 노릇도 쉬운 것은 아닐 터다.

정치권 '계몽의 대상' 경계를

‘큰 어른’의 장례가 실증적으로 보여준 원칙의 정신은 실은 생명의 이치다. 우리가 북한 상황에, 미디어 정책에, 4대강 토목사업 등의 논쟁에 힘을 뺏기고 있는 이 시간에도 기후변화의 위기상황과 지혜로운 나라들의 이에 대한 대처는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환경문제는 추상적인 사안이 아니라 실천의 문제다.

이 부문에서도 우리는 고 김수환 추기경에게 지혜를 빚지고 있다. 좋은 추모는 이 빚을 잊지 않는 것일 터다. 어떤 형태로든지 갚아야 한다. ‘정치지도자’도, 그들을 뽑아 올리고 끌어내리는 국민도 마찬가지다. ‘사실상의 국민장’이 준 지혜는 너무 크다.

이 어른 닮자는 ‘운동’이 여기저기서 벌어진다 한다. 착한 나라가 되겠다. 그러나 이 운동이 혹시라도 정치소비자인 민초들을 ‘계몽의 대상’으로 삼아 천박한 정치놀음을 선전하고자 하는 음모에 오염되지 않는지 경계할 일이다. 국민은 그들의 머슴인 정치가들보다 항상 지혜롭다. 또 힘이 세다.


강상헌 논설위원

강상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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