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독립’ 관전법

[편집인 레터] 김주언l승인2009.03.19 11:59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이명박 시대의 사법파동은 일어나지 않을 것인가.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 재판’ 간섭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또 다시 드는 의문이다. 대법원 진상조사단이 "신 대법관의 행위가 재판 진행 과정에 관여한 것으로 볼 소지가 있다"고 판정한 것은 사법부의 독립을 위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그동안 젊은 판사들이 신 대법관의 촛불재판 독촉 이메일과 ‘몰아주기 배당’ 등을 잇달아 폭로하면서 이명박 시대의 ‘사법 파동’이 예상됐지만, 일단 진상조사단의 ‘재판 개입’ 판정으로 사그라들게 됐다.

대법원 조사단은 "신영철 대법관이 재판에 간섭하고 사법 행정권을 남용했다"고 판정했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이번 사건을 대법원 공직자 윤리위원회에 올리라고 지시했다. 공직자 윤리위원회에 대법관 관련 사건이 회부된 것은 사상 처음이다. 대법원장은 윤리위의 심의 결과에 따라 법관 징계위원회에 징계를 청구할 수 있다. 신 대법관은 윤리위의 심의와 관계없이 자진 사퇴할 것으로 전망된다.

신 대법관을 비호하고 나섰던 한나라당과 청와대가 머쓱해졌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젊은 판사들의 재판개입 의혹 제기에 ‘좌파의 이념 공세’라는 색깔론을 덧씌워왔다. 홍준표 원내 대표는 “신 대법관에 대한 공격이 노골화하고 있다”며 “사법부 내에 진보좌파 성향의 분들이 없었는지 사법부 스스로 생각해 볼 일”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도 “행정적으로 빨리 처리하라는 이야기는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신 대법관을 옹호했다. 진상조사단의 발표가 있은 뒤 청와대는 꿀 먹은 벙어리 신세가 됐다. 한나라당은 적반하장격으로 “정치공세를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법원 진상조사단의 판정은 일단 사법부의 독립과 재판의 독립성을 강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세간의 전망대로 신 대법관이 자진 사퇴한다고 해서 사법부의 독립이 쟁취되는 것은 아니다. 사법부가 정권의 시녀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뼈를 깎는 아픔으로 사법제도를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참여연대와 경실련은 자진 사퇴하더라도 윤리위원회의 징계절차를 밟아 신 대법관을 파면하여 중징계할 것을 요구했다. 더 나아가 재판개입 행위 등에 대한 형사처벌 등의 사법절차까지 이어져야 한다. 재판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첫 번째 필요조건이기 때문이다. 재판부에 대한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이용훈 대법원장의 대국민 사과도 반드시 필요하다. 사법부의 수장인 이 대법원장은 그동안 신 대법관을 옹호하는 발언을 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갉아 먹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재판의 독립성을 강화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이다. 상급자에 의한 재판 개입이나 사법 행정권의 남용으로 법관의 독립적 재판이 침해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경실련은 대법원장 1인의 인사권 장악 문제와 각급 법원장의 근무 평정권 문제 등에 대한 개선 방안, 직급제 폐지나 평생법관제도 등의 법관제도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에 이를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유사한 일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명박 정부는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사법부를 장악하려고 할 것이므로 사법부의 독립을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 나라가 어디 있나"라며 역정을 냈다고 한다. 이번 신 대법관 파동을 보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바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드러났다. '촛불 재판'에서 판사들에게 압력을 가한 지법장이 대법관이 되고 '촛불 재판' 상고심을 맡는 나라이다. 사법부까지 거느리면서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막강한 대통령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이동관 대변인이 신 대법관을 비호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양심적인 젊은 판사들의 노력으로 사법부가 ‘정권의 시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게 됐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그렇다고 해서 ‘이명박 정부에 반대하면 좌파’라는 공식이 완전히 무너진 것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일부 보수언론은 대법원 진상조사단의 판정에도 불구하고 사법부에 색깔을 덧칠한다. 조선일보는 "국민은 이번 파동을 통해 대한민국 법원이 횡적으론 이념의 좌우로, 종적으론 세대 간 갈등으로 크게 찢겨 있다는 걸 두 눈으로 확인했다"고 했다. 겉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이명박 정부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사법부를 장악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국민이 두 눈을 부릅뜨고 사법부 독립을 지켜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김주언 편집인

김주언  

<저작권자 © 시민사회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주언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여백
시민사회신문 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8288 서울특별시 구로구 새말로 93, 신도림태영타운상가2동 B105  |  대표전화 : 02-3143-4161  |  팩스 : 02-6737-1115  |   ingopress@ingopress.com
등록번호 : 서울 다 10706  |  등록일자 : 2013년 8월 26일  |  회장·논설주간 : 강상헌  |  발행·편집인 : 설동본  |  편집국장 : 양병철
후원계좌 : 국민은행 7788-01-04-375819 (시민사회신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설동본
Copyright © 2007 시민사회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