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거짓말 피난처인가

[강상헌 칼럼] 강상헌l승인2009.03.19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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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기에 뼈를 묻겠다는 각오를 말씀드린다. 제2의 정치인생을 여기서 새롭게 출발하고 여기서 끝을 내겠다. 여러분께 약속드린다." 2008년 3월, 서울 동작을에 출마한 정동영 전 통합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지지를 호소한 내용 중 일부다. ‘여기’는 물론 동작을.

“구민과 함께 울고 웃고 함께 하면서 이분들의 애환과 꿈을 실현해 나가겠다. 작은 일을 잘하는 것이 큰일을 잘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여러분과 함께 시작하고자 한다.”

정동영의 과거

베끼고 싶을 정도의 화려한 언사, 유권자의 마음을 흔들만하다. 지금도 이 장면, 인터넷 동영상으로 쉽게 볼 수 있다. 비록 ‘연애결혼’은 아니지만 ‘중매결혼’으로도 행복한 해로(偕老)를 누릴 수 있다고도 했다. 뼈를 묻겠다는 말의 뜻은 따로 해석할 필요가 없겠다. 그러나 결과는 낙선.

이분이 “나는 정치인이고, 정치인은 정치 현장에 국민과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며 고향 텃밭 전주 덕진에서의 출마를 선언했다. 역시 화려하다. 자신의 식언(食言)의 이유다. 사전은 식언을 ‘말을 번복하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고 거짓말을 일삼는다는 뜻’이라 푼다. ‘꼼수’도 비슷한 뜻이겠다.

‘정치’ ‘정치인’이 거짓말 또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행실의 피난처로 활용되고 있다. 자못 논리적인 틀까지도 씌웠다. 정치인의 식언은 무죄인가? 차 마시듯, 밥 먹듯, 다반사로 자신의 말을 뒤집는 이런 종류의 행실을 우리 유권자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특히 역대 정치인들의 식언이 유난히 많다.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거짓말을 한데 대해 책임을 졌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은 없다. 정치니까 이해해야 한다고? 정말?

지키지 않는 '식언'

뒤져보니 영어나 일본어에도 식언과 거의 같은 표현이 있다. 또 이 말은 중국의 고사에서 왔다. 성경에도 ‘하나님은 인생(人生)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민수기 23장 19절)라는 표현이 나온다. 고구려의 평강공주도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내버린다’는 아버지인 평원왕의 말을 식언으로 만들지 않겠다는 명분을 들고 가출한다. 이렇듯 식언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을 관통하는 뜻이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그만큼 중요한 개념이겠다.

그 정치가가 현재 처한 상황에서 ‘텃밭 선거’는 큰 유혹일 터다. 좀 체면 깎이면, 염치 좀 덜면 이참에 다시금 예전의 정치적 터전을 확보할 수 있다. ‘말뚝만 세우면 되는 텃밭’ 아닌가? 이제까지 이런 경우가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나만 비난받을 이유가 무엇인가?

한 신문의 보도는 그와 각별한 원로 정치인이 그에게 "일단 복귀해 원내에 들어오는 것이 중요하다. 일단 들어오면 사람들은 그 과정(들어온 과정)은 잊는다"고 조언했다고 설명한 다. 직접 들은 내용이 아니어서 조심스럽지만 국민 또는 유권자를 건망증 심한 사람들로 파악하는 정치인들의 시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언사라는 점을 주목한다. 유권자 국민에 대한 경외(敬畏), 섬기고 두려워하는 기미는 아예 읽을 수도 없다. 이게 정치인가?

'실질'을 보기 시작하다

적당한 분량의 애향심과 말끔하게 정제된 이미지만 걸면 그가 노리는 선거구 전주 덕진은 이미 그를 위해 준비된 잔칫상이라는 투의 언행이다. 덕진의 유권자들이 이런 사실을 반갑게 받아들일까? 또 뼈를 묻기까지 함께 하겠다던 동작을 유권자들을 떠나는 ‘화려한 이유’도 준비됐어야 했다. 정치인에게 유권자는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그는 적어도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섰던 정치인이다. 또 총선에서 동작을의 유권자들은 ‘뼈를 묻겠다던’ 그를 낙선시켰다. 두 번의 큰 실패가 주는 뜻을 그는 파악했을까? 이제 국민들은 정치인의 이미지와 언사 뒤에 똬리를 틀고 앉은 ‘실질’을 보기 시작했다. 참으로 현명한 국민이다.

정치권도 그렇지만, 유권자 국민의 입장에서도 큰 정치인 한사람을 키워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자기 혼자 힘으로 컸다’는 생각은 큰 오산이다. 또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지지하며 기대하는 국민도 있다. 많은 사람을 실망시킬 수도 있다. 그 정치인은 이런 국민을 두루 생각했을까? 스스로의 뜻이 자칫 경거망동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식언의 이유가 아직 선명하지 않다, 명분과 형식이 갖춰지지 않았으면 더 기다려야 한다는 등의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오는 까닭이리라. 퇴장 때 멋지게 손을 흔들어 국민을 감동시켰던 것처럼 복귀도 당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는 이미지가 아니다. 아니면 그만큼 화려하지는 않더라도 더 진솔한 식언의 이유를 ‘개발’하던지.


강상헌 논설위원

강상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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