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가장 잔인한 달?

[편집인 레터] 김주언l승인2009.03.26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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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추억과 욕정을 뒤섞고/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마른 구근(球根)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주었다.”

영국의 시인 T. S. 엘리어트의 유명한 시 ‘황무지’의 한 구절이다. 엘리어트는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라일락을 키워내고 봄비를 깨우는’ ‘축복받은 달’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대놓고 ‘4월은 가장 잔인한 달’로 규정지었다.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은 ‘박연차 정관계 로비’ 수사와 관련하여 ‘차라리 겨울이 따뜻했네’라며 정치권을 향한 경고를 내렸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강도 높은 수사를 펼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실제로 검찰의 수사는 전방위로 확대돼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민주당과 한나라당 인사들이 줄줄이 체포되거나 구속됐다.

촛불을 사탄으로 몬 추부길 씨

박연차 로비 사건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인 ‘대운하 전도사’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관이 구속됐다. 촛불 시민을 향해 ‘사탄의 무리’라고 큰 소리치던 추 씨는 자신이 사탄임을 스스로 보여준 것이다.

이른바 ‘박연차 리스트’에는 현역 국회의원을 포함해 정관계 인사 30여명이 수사선상에 올라 있고 이중 절반이상은 사법처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에게는 정말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일 것이다. 정가에서는 "박연차 회장에게 어떤 명목으로든지 돈을 받지 않은 정치인은 없다", "운 좋게 이름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언제 검찰에 소환될지 몰라 떨고 있는 이들이 많다"는 말들이 떠돌고 있다.

‘장자연 리스트’의 파급력도 박연차 리스트 못지 않다. 미모의 탤런트에게 성 상납과 술 시중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진 장자연 리스트에 오른 인사들에게도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 될 것이다. 장자연 리스트에는 언론계 인사, 금융권 고위직, IT업체 대표 등 10여명이 거론된다.

장자연 씨가 생전에 작성한 문건에는 ‘성상납과 술시중’ 대상으로 적시한 인사들 가운데 신문사 대표 2명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장 씨 유족은 이들 중 한명을 성매매특별법 위반혐의로 고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 씨의 전 매니저인 유 모 씨는 “유력 일간지 사장과 스포츠신문 사장이 있다”고 말했다.

장 씨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연예계, 더 나아가서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이다. 더구나 장자연 리스트에 거론되는 인사들은 하나같이 권력을 가진 자들이다. 언론권력, 자본권력 을 행사하는 정점에 서 있는 이들이다. 정치권력이 등장하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 이들에 대한 장 씨의 절규는 처절하다.

장 씨 죽음은 구조적 모순

그는 유서를 통해 일찍 부모를 여의고 ‘연예 스타’의 꿈을 키워 왔으나 불법적 성매매 도구로 내 몰렸다고 주장했다. 한국사회의 타락상을 그대로 보여준 현실이다.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힘 있는 강자들의 반윤리적 행태와 반복되는 성 상납 및 술 시중 요구는 힘없는 연예인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자살이 아니라 타살인 셈이다.

박연차 리스트와 장자연 리스트에는 공통점이 많다. 먹이사슬의 꼭대기에는 힘있는 자들이 있다. 이들은 불법적으로 상납을 받았다. 상납 품목만 다를 뿐이다. 박연차 리스트에 나오는 이들은 금품을 받았고, 장자연 리스트에 거론되는 이들은 성을 받았다. 이들은 은밀하게 돈다발을 받거나 옷을 벗고 들어온 앳된 여인을 탐닉했다. 이들 사회지도층 인사의 도덕성이 얼마나 훼손돼 있는 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들이다.

국민에겐 축복받는 달 되길

비슷한 시점에 발생한 두 사건은 한국사회의 도덕성, 특히 힘 있는 자들의 부도덕한 행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어느 사회나 매춘과 검은 돈 거래는 있다. 그렇지만 선진사회의 엘리트들은 사회적 책무와 윤리의식이 상대적으로 강하다. 그들에게는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있다. 우리 사회가 선진화하려면 사회지도층의 반성이 우선돼야 한다. 또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목표지상주의를 수술해야 한다.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도려내지 않으면 한국사회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

‘법질서 준수와 떼법 근절’을 부르짖는 이명박 정부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대형사건이 꼬리를 물고 터져 나온다. 사법 파동까지 예견됐던 신영철 사건과 힘 없는 자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용산 참사’는 국민의 뇌리에서 사라졌다. 이제는 언론인 구속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국민에게 법 질서 준수를 요구하기 전에 사회지도층의 비리를 근절하고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바로잡는 게 우선이다.

리스트에 거론된 인사들에게는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민은 4월은 잔인한 달이 아니라 축복받은 달이 되길 바란다. 새 봄을 맞는 희망찬 달이 되기를 기원한다.


김주언 편집인

김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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