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폭력이 넘실됐다

15~18세기 피로 물든 유럽의 해상 진출기 백운광l승인2009.04.06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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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고생을 하며 바다를 건너온 이유가 뭔가”


<대항해시대 ― 해상 팽창과 근대 세계의 형성>(주경철 씀, 서울대학교출판부, 2008)

대항해시대!
여러분들은 어떠신가? 왠지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으신가? 넘실거리는 파도, 끝도 모를 검푸른 바다. 수평선 너머 하늘 끝까지, 눈부시게 빛나며 켜켜이 쌓인 흰 구름. 팽팽한 돛을 뽐내며 바람을 한가득 안고, 물살을 헤치며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범선. 사나이들의 모험과 낭만, 그리고 사랑.

해적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일까? <대항해시대>란 제목을 들으면 가장 먼저, 순간의 파노라마가 되어 지나가는 화면이다. 그 바닷길에 담겨진 학살과 폭력, 야만의 이야기에 치를 떨며 분개했으면서도 여전히 <보물섬>에 나오는 실버 선장의 매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 보면 부끄러운 미숙함을 들킨 듯하다.

세계가 유럽과 만나다

15~18세기 300여년에 걸쳐 바닷길을 열며 유럽은 세계를 발견했고, 세계는 유럽을 만난다. 세계를 찾아 나선 유럽인을 그 후예들은 낭만과 모험의 세계에 뛰어든 도전자로 각색한다.

그리고 그 도전으로 인해 유럽의 발달한 문명이 미개한 세계에 퍼진다. 역사책이든 영화든 그렇게 이야기 한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 중 많은 부분은 19~20세기 제국주의 시대의 꾸밈이었음이 최근 들어 밝혀지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들려온다.

이 책 <대항해시대>는 그러한 연구 성과를 기존의 이야기와 함께 소개하며 바닷길을 통해 엮어진 근대 세계의 형성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그 길은 푸른 바다와 흰 돛이 어우러진 평화의 길이 아니라 총과 대포로 열고 피를 쏟아 부어 포장한 폭력의 길이다.

하지만 그 폭력의 바닷길을 따라 사람이 이동하고 물자가 이동하고 제도와 문화, 질병과 생물이 이동하며 문명은 서로 만나고 섞인다. 서로에 대한 갈등과 대립 속에서도 서로를 수용하고 변하며 새로운 질서, 새로운 공동체가 등장한다.

이 책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디아스포라, 제국, 식민지 교역, 동인도회사, 선박, 선원, 해적, 총, 대포, 군사혁명, 군사적 충돌, 화폐, 귀금속, 노예, 노예무역, 플랜테이션, 삼림파괴, 동물의 남획, 멸종, 전염병, 질병, 기독교, 칼과 종교, 언어, 음식, 작물, 맛, 과학 기술 등.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는 결국 폭력과 관련되어 있다. 유럽은 미지의 세계에 낭만과 모험으로 포장한 폭력을 바탕으로 등장한다.

그 폭력에는 유럽이 유럽에 대해서 행한 폭력 역시 포함한다. 15, 16세기 유럽은 바닷길을 열며 자기들 사이의 경쟁 때문에 오히려 서로를 향한 폭력에 몰두한다.

여기에서 얻은 경험과 기술을 바탕으로 아메리카에 대해서도 아프리카에 대해서도, 유럽은 폭력에 의지하여 그들을 만난다. 그렇다고 매번 일방적으로 이기지도 못한다.

결국 유럽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그리고 상대방에 대해서도 폭력 빼고는 상대와 소통하는 방법을 모르는 듯하다.

소통대신 폭력 선택한 이유는?

유럽은 왜 이렇게 폭력에 몰두했을까? 이 책을 읽어 나가며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의문이다. 이에 대한 답은 여전히 얻지 못하고 있지만 한 사람이 궁금하다. 그 사람은 어디 갔을까?

암스테르담의 거리를 지나다 반 강제로 배에 올라 힘든 항해 길을 거치고 살아남아 아메리카에 도착한 후 원주민에 대한 공포로 사정없이 그들을 학살해 놓고 럼주에 취해 비틀거리다 또 어디론가 바닷길을 떠난 사람. 그 사람은 유럽인가? 유럽은 자신을 착취하고 아메리카를 학살했으며 아프리카를 갈취하고 아시아를 굴복시켰다. 그 유럽은 누구인가?

“당신들은 정말 바보들이로구만. 고작 자기 자식이나 다른 후손들에게 물려줄 재산을 쌓느라고 그렇게 큰 고생을 하며 바다를 건너오다니 말이오. 당신들을 충분히 먹여 살리는 땅이 당신네들 후손들이라고 먹여 살리지 않겠소?

우리에게도 사랑하는 자식들과 후손들이 있소. 그렇지만 우리가 죽은 다음에도 이 땅이 그들을 잘 먹여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편안하게 쉴 수 있고, 힘든 고생을 하지 않는 거요.”(투피남바 족의 노인, 에필로그 중에서)

“당신들은 바보구만…”

브라질을 여행하고 여행기를 남겨 놓은 장 드 레리(1536~1613)란 사람에게 투피남바 족의 노인이 들려준 이야기란다. 유럽은 왜 그랬을까? 유럽의 땅은 정말 그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먹여 살려줄 자애심이 없었을까?

“마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후 온갖 악덕이 세상에 퍼진 것처럼, 한번 대항해시대가 열리자 세계에는 갖가지 흉흉한 일들이 벌어졌다. 이제 더 이상 이전 세계로 되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해졌다.”(주경철, 에필로그 중에서)

저자인 주경철 교수의 말이다. 판도라 상자가 열린 후 형성된 포세이돈의 자식인 근대를 넘어 저자가 제기한 평화의 세계화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우리 땅은 우리를 먹여 살려줄 자애심이 없는 걸까? 그래서 새로운 물길이 필요한 걸까?

백운광 두리미디어 주간

백운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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